• [꿈/이야기] “기교보다 인간” 손가락이 읊다[재즈 기타리스트 정재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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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3.19 09:2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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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유명 기타리스트들을 모두 살펴봐도 피크를 쓰지 않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엄지로 줄을 퉁기는 독특한 기법을 선보였던 웨스 몽고메리, 50대까지 피크를 쓰다가 손가락으로 ‘전향’한 존 애버크롬비 정도다.
한국의 재즈 기타리스트 정재열(39)도 5년전부터 피크 대신 검지, 중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13세부터 기타를 쳤으니, 20여년 사용한 피크를 포기한 셈이다.
정재열은 “피크를 쓰면 기술적으로 우월하고 타이트한 연주를 들려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본격적으로 손가락을 쓰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머리 속에서 흘러가는 음표들을 손으로 따라잡지 못하는 때가 많다. 그런데 왜 굳이 손가락을 쓸까. 그는 “손가락 연주는 부드럽고 자극이 없다. 편하고 인간적”이라고 말했다. ‘기술’보다 ‘인간’이라는 설명이다.
다섯 번째 음반 ‘모래놀이’는 정재열의 작품 세계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증표다. 누구보다 화려한 테크닉을 보여주는 그는 지금까지 난해한 연주로 유명했다. ‘해체와 재구성을 반복하는 포스트모던 느낌의 프리 밥’이 그의 작품 세계를 요약한 말이다. 드러머 벤 볼과의 실험적인 듀오 작품 ‘더 인 로(the In-Law)’에선 드럼, 기타로만 음반을 채우기도 했다.
‘모래놀이’는 다르다. 재즈 초심자가 접해도 쉽게 귀에 들어온다. 화려한 연주력보다 작곡자의 정서가 먼저 느껴진다.
‘모래놀이’는 전곡을 통해 하나의 주제를 다룬 일종의 ‘컨셉트 음반’이다. 음악에 가사는 없지만 제목을 연상하면서 음악을 들으면 창작자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정재열이 듣는 사람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건 ‘기러기 아빠’의 마음이다.
정재열은 1년 반 전 사랑하는 아내와 4명의 아이를 캐나다로 떠나보냈다. 아이 교육과 자신의 창작 활동을 위해서였다. 비행기로 18시간 가야 하는 머나먼 곳. 하루에도 수차례 전화 통화를 하고, 1년에 두 차례쯤 만났다가 헤어질 때면 아이들은 아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고불고 난리다. 음반 타이틀과 동명의 곡 ‘모래놀이’는 큰 아이의 모습을 전해듣고 만든 노래다.
활발하게 학교에 다닌다는 말에 아무 문제 없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점심 시간마다 홀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고 한다. 말이 통하지 않아 친구를 사귀지 못해 혼자 놀이터에서 모래 장난을 하는 아이의 모습. 정재열 자신도 이민을 갔다가 외롭게 보낸 시절이 있었기에 국제전화를 통해 전해진 큰 아이의 모습은 더욱 가슴아팠다. 그래서인지 천천히 한 줄 한 줄 뜯어내는 어쿠스틱 기타 소리에는 혼자 노는 아이의 외로움이 묻어나는 듯하다.
‘이별’은 공항에서 아이들과 작별하는 순간을 표현한 곡이다. 장사익의 소리와 김애라의 해금이 애절함을 더한다. 곧 다가올 아빠와의 이별을 모른 채 번잡스럽게 공항을 헤젓는 아이들이 떠오른다. ‘가을 여행’은 가족과 이별하기 전 함께 나섰던 여행의 추억에 관한 곡이다. 즐거워야 할 여행이지만 다시 떨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마냥 들뜨지만은 않는다.
8년째 재직 중인 백제예술대 실용음악과에선 400여명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과장이다. 캐나다에서 귀국한 1995년엔 각 악기마다 괜찮은 연주자가 2~3명 정도밖에 없었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실용음악과가 60군데 이상이라 저변이 넓어졌다. “외국은 음악학교의 역사가 길기 때문에 선생과 학생의 격차가 크지만, 우리나라 학생은 2~3년만 배우면 금세 훌륭한 연주인이 된다”는 설명이다. 단지 음악인들에게 두고두고 모범이 될 만한 ‘레전드급 연주자’가 아직은 없다는 것이 정재열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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