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옛사람들 ‘운치있는 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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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3.19 09:21:48
  • 조회: 256
민속학자 주강현씨는 “봄은 완숙한 때보다 다가오는 그때가 제일”이라고 했다. 그는 “새로운 생명이 막 깨어나려는 기분 좋은 예감이 봄의 정수”라고 말했다. 지금이 그 때다. 땅 속 깊은 곳부터 가지 끝까지 나무마다 맑은 수액이 차올랐다. 태안반도에는 주꾸미가 알을 배기 시작했고 논에서는 가래질 소리가 들려온다. 집집마다 흙벽을 새로 바르고, 봄맞이를 준비한다. 야생 달래의 향긋함도 코끝을 간지럽게 한다. 옛사람들은 자연의 변화를 보고 계절을 깨우쳤다. 우리도 옛사람들의 정취를 따라 보면 어떨까. 조상들이 즐긴 봄놀이를 소개한다.
◇유상곡수연(流상曲水宴)
굽이굽이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워놓고 시 한 수, 노래 한 가락 읊조리는 것을 말한다. 생각만으로도 향긋하고 달뜬 봄의 정취가 느껴진다. 곡수연은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설화 중 ‘흐르는 물가에서 상서롭지 못한 액운을 말끔히 씻어내는 푸닥거리 행사’의 일종으로 기록됐다. 그 후 신라시대를 지나 고려, 조선시대까지 곡수연의 기록이 남아있다. 고려 때 이규보가 지은 동국이상국집에는 “날씨가 포근하고 햇볕은 따사로운데 산들바람 가볍게 불어와 푸른 소나무에 몸을 기대고 두건을 젖혀 쓰고 흐르는 물에 둘러 앉아 술잔을 띄우며 난정의 봄 수계를 그리워하고 하삭(河朔·황하의 이북땅)에 피서하던 술잔을 상상하리라”는 대목이 나온다. 사적 1호로 지정돼 있는 ‘포석정’도 신라 때 곡수연이 벌어지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화전(花煎)놀이
삼월 삼짇날이 되면 집안에만 갇혀 있던 여인들도 밖으로 나와 봄볕을 즐겼다. 화전놀이는 조선시대 여성들이 볕이 좋은 개울가나 산에 올라 즐기던 봄놀이다. 찹쌀을 동그랗게 빚은 위에 진달래(참꽃)를 올려 부친 참꽃부침뿐 아니라 벚꽃, 배꽃, 매화 등 여러 꽃으로 화전을 만들어 먹었다. 오미자 국물로 만든 화채인 화면(花麵)도 만들었다. 오미자를 우려낸 국물에 녹두가루를 반죽해 익힌 것을 썰어 꿀을 타고 잣과 진달래 꽃잎 등을 띄워 만들었다. 조선시대 문인인 백호 임제는 화전놀이에 대한 시조를 남기기도 했다. ‘작은 시냇가 돌로 받친 솥뚜겅에서/ 흰 가루 맑은 기름 진달래꽃을 지져내네/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자 향기 가득하고/ 한해의 봄빛이 뱃속으로 전해오는구나’
◇매화음(梅花飮)
조선후기 서화가, 우봉 조희룡이 쓴 ‘호산외사’에는 매화에 얽힌 단원 김홍도의 일화가 나와있다. 끼니를 잇기도 힘들 정도로 가난했던 단원은 시장을 지나다 매화에 마음을 빼앗긴다. 주머니가 비었던 그는 3000냥에 그림을 팔고 2000냥으로 매화 화분을, 200냥으로는 땔감과 식량을, 800냥으로는 친구들과 술잔치를 벌였다. 술값으로 생계비를 날렸다는 것보다는 매화가 전한 봄향에 흠뻑 취한 시인의 마음을 이해해봄이 어떨까.
◇창경궁 벚꽃놀이
‘봄의 창경원은 모던걸과 모던보이의 사랑이 무르익는 곳이다. 창경원의 밤벚꽃놀이가 시작되면 제일 먼저 모던걸과 모던보이가 이곳으로 달려온다. 그들의 관심은 꽃이 아닌, 꽃을 보러 온 사람들이다.’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의 모습을 담은 신명직의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현실문화연구)’에는 봄을 맞아 벚꽃놀이를 나온 이들에 대한 묘사가 있다. 어린아이도 아이의 아버지도 벚꽃놀이의 시큰둥한 룸펜까지 밤벚꽃놀이를 위해 창경궁으로 몰려들었다고 전한다. 책은 일제가 천황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조선왕조의 궁궐을 오락장으로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시도야 어쨌든, 그 시절 벚꽃놀이가 움츠려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설레게 했던 낭만적인 놀이였음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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