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잠시 빌린 육신 깨끗이 살다 가야지”[백양사 방장 수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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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3.08 09: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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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보리가 파랗게 물오른 남도 들녘을 따라 영광 불갑사를 찾아간다. 계곡 물소리 깊어지고, 새싹 움트는 봄날의 만산만야가 그대로 자연의 법문을 펼쳐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선방 스님네들의 겨울 안거도 어느새 해제가 내일(4일)이다. 그들의 한철 공부는 또 얼마나 단단히 여물었을까. 흔들리는 말머리(話頭)를 딱 붙잡아 틀어쥐고 벼락 같은 한소식은 얻어냈을까. 불갑산 자락 산문에 늘어선 옛 부처들의 부도탑 뒤로 동백이 선혈처럼 붉다.
고불총림(古佛叢林) 백양사 방장 수산(壽山) 지종(知宗·85) 스님이 주석하는 불갑사 무각선원 염화실은 차향이 그윽했다. 스님은 ‘맑고 고요하여 벌거벗고 속을 다 드러냈구나(淸淨廖廖 赤條條)/물이 능히 빠뜨리지 못하고 불도 능히 태우지 못하는도다(水不能漂 火不能燒)’로 시작되는 해제법어를 써내려가고 있었다. 내일이면 백양사 운문선원, 고불선원, 비구니 동천선원에서 한 마음을 내 용맹정진했던 수좌들은 노스님의 해제 법어를 가슴에 품고 또다시 걸망을 지고 만행에 나설 것이다. 멀고도 아득한 깨달음, 그 길 없는 길(無路之路)로.
수산스님은 만암(1876~1956)·서옹(1912~2003) 선사의 엄중한 법맥을 이은 백양사 문중의 큰어른이다. 그동안 백양사 말사인 이곳 불갑사와 장성 큰절을 수시로 오가며 몸과 마음으로 백양사 승풍을 북돋우느라 목이 쉬어버렸다.
“만암스님의 가르침은 ‘언행일치(言行一致)’ 네 글자에 고스란히 압축돼 있어. 말만 앞세우고 실행이 없으면 부처님의 법이 아니거든. 서옹스님은 ‘참사람’이 되라고 가르쳤지. 참사람은 신분·지위·남녀·나이의 차별을 초월한 무위진인(無爲眞人)이야. 고불총림의 고불도 옛 부처, 즉 본래의 참사람을 의미하지.”
수산스님은 쉽게 파격의 선기를 내보이지는 않는다. 출가본분을 지키면서도 누구에게나 항상 따뜻하고 정감있게 대한다. 스님은 선차(禪茶)의 명인답게 온화하고 맑은 미소 속에 손수 제조한 작설차를 따르며 부처님 말씀을 들려준다.
“우리는 인연 따라 사람의 몸을 얻어 잠깐 이 세상에 온 거야. 그 인연으로 밝게 살다가 좋게 가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해. 어둡게 살다가 어둡게 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 내가 가는 곳을 똑바로 알려면 항상 마음자리를 돌이켜 봐야해.”
스님은 먼저 탐(貪·탐내는 마음), 진(嗔·성내는 마음), 치(癡·어리석은 마음)의 삼독(三毒)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세상이 시끄러운 것은 세상사람들이 삼독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무엇이 옳고 선하고 바른지는 누구나 다 알고 있잖아. 개혁이다, 정화다 하지만 내 마음부터 정화해야 세상이 깨끗해지지. 저녁마다 하루를 자꾸 돌이켜 보고 자신을 반성하면 그것이 바로 생활 속의 선(禪)이고 화두야.”
스님의 법명은 지종. 그러나 세간에는 법호인 수산스님으로 더 친근하게 알려져 있다. 속가의 형과 부모가 잇달아 세상을 떠나는 우환을 겪은 뒤 열아홉살 때 만암스님의 상좌였던 법안스님의 위패상좌로 백양사에서 출가해 67년간 절집을 지켰다. 이미 입적한 스님의 상좌였던 탓에 젊어서 어렵게 공부했다. 만암스님을 오랫동안 곁에서 모시며 백양사의 가풍을 몸에 익혔다.
스님은 늘 선방에서 참선수행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만암스님이 꼼꼼하고 성실한 스님을 항상 곁에 두기를 원해 선방공부를 중단하고 돌아와야 했다. 만암스님이 열반한 후에는 완도 신흥사, 부산 개암사, 백양사 주지를 맡아 도량을 새롭게 일구느라 공부할 틈이 없었다고 안타까워 했다.
스님은 1975년 불갑사와 인연을 맺었다. 불갑사는 인도스님 마라난타 존자가 영광 법성포로 들어와 백제에 불교를 전하면서 처음 지은 도량이라고 전해진다. 그래서 법성포(法聖浦)와 불갑사(佛甲寺)란 이름이 붙었다. 스님은 30여년간 조선의 억불정책과 정유재란, 한국전쟁 등으로 폐사가 되다시피한 도량을 옛모습대로 복원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백제불교 초전지’ 성역화 불사를 마쳤다.
스님은 불교의 전통의식과 불사에 관한 한 현존하는 원로스님 가운데 일인자로 꼽힌다. 사찰에서 불상과 범종 조성, 복장불사 등이 있을 때면 스님을 찾아 자문을 구하곤 한다. 또 사찰음식에도 해박해 간장, 된장, 고추장과 밑반찬 마련까지 하나하나 자상하게 챙긴다. 스님은 제자들에게 늘 “열심히 수행하고, 개인적인 욕심을 버리고, 게으르지 말고, 조석예불과 대중공양에 빠지지 말고 참석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스스로 그 가르침을 실천한다.
스님은 젊어서는 관절염, 담석증 등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으로 불릴 정도로 병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철저한 수행과 자기관리로 이제는 세수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하다. 스님은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염화실에 모셔놓은 원불에 예불을 올린다. 두 시간 정도 참선을 한 뒤 스스로 만들어낸 요가체조로 건강을 다진다.
스님 방 한쪽에는 자그맣고 정감이 가는 부처 세분이 모셔져 있다. 한 분은 손으로 눈을 가리고, 한 분은 귀를 덮고, 한 분은 입을 막고 있는 모습이다. 스님은 보지 않고, 말하지 않고, 듣지 않는 부처님에게서 ‘참사람’ 찾아보라는 뜻이라고 말한다. 듣는 즉시 말하고, 보는 즉시 말하는 것을 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이 그렇듯이 사람도 꼭 있어야 할 자리가 있어. 본분을 팽개치고 과도한 욕심을 부리거나 남의 자리를 탐하니까 탈이 나는 거지. 육신은 공하지만 마음자리는 공하지 않아. 우리가 죽을 때 가져가는 것은 육신이나 돈, 명예, 권력 같은 것들이 아니라 몸뚱이 있을 때 지은 업과 공덕이야. 열심히 공덕 지어야 밝은 마음자리를 가져갈 수 있지.”
스님은 “세상에 내 것이라 집착할 것이 없다”면서 “본분을 지키고 소욕지족(少欲知足) 하는 생활을 하면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스님은 또 “나를 다스릴 줄 모르고 인과도 모르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니 세상이 시끄럽다”며 요즘의 정치인들을 걱정했다.
“무슨 일을 하든 내가 제일이라는 아집과 사심을 버리고, 오직 공심(公心)으로 추진하면 다 수긍하고 따르게 되어 있어. 저절로 화합이 되는 거지. 그런데도 사람들의 욕심으로 인해 정신뿐 아니라 자연까지 오염되고 있어. 요즘 지구온난화나 잦은 태풍피해는 업력(業力)으로 인해 사람과 자연이 자꾸 변동되기 때문이지. 그러나 성주괴공(成住壞空·우주가 생성과 파괴를 반복하는 작용)이 돌고 돌더라도 근본 자성(自性)은 변하지 않아. 바로 그 자성자리를 찾아내 옳게 길들여야 해. 욕심을 부리려거든 부처님같이 크나 큰 욕심을 부려야지.”
스님은 요즘 힘이 부쳐 그만뒀지만 몇년 전까지만 해도 절 주위 야생차밭에서 찻잎을 따다 직접 차를 만들었다. 스님은 특별한 제다법을 알고 있다. 손이 많이 가고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잘못하면 타버리거나 덜 말라 제맛이 나지 않는다.
“차선일여(茶禪一如), 선차일미(禪茶一味)라고 하지. 차를 마시는 일도 수행의 방편이야. 평상심을 유지해야 진향을 느낄 수 있지. 차도 선에서 나오고, 차마시는 것도 선에서 나오니 차와 선이 둘이 아니지. 자, 차 한잔 드시게”
스님은 조용한 목소리로 ‘끽다거(喫茶去)’의 화두를 내놓는다. 그윽한 차 한잔에 선(禪)의 향기가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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