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돈·출세위해 배운다 옛 선비도 그랬을까[공부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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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3.08 09: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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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라’는 권유 혹은 명령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학생들은 하루에도 수십번씩 부모, 교사로부터 이 말을 듣고, 사회에 나선 성인들도 공부하지 않고는 혹독한 경쟁 속에서 배겨낼 도리가 없다. 마지못해 책을 들고 눈을 고정해보지만 고통스럽고 지루할 따름이다. 그런데 왜 공부해야 하는지 진지한 표정으로 자문해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대학에 가기 위해’ ‘승진하기 위해’ ‘돈벌기 위해’는 좋은 대답이 아니다. 이런 목적을 위한 공부는 괴로울 수밖에 없고, ‘목적을 향한 과정을 즐긴다’는 명분도 괴로움을 잊기 위한 자기위안일 뿐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인 저자는 조선조 유학자들의 삶에서 공부의 목적과 방법을 찾는다. 일단 저자는 현대 한국사회의 교육현장이 ‘죄수 아닌 죄수’를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자본주의의 탐식성과 게걸스러움에 질식당한 교육’은 야스퍼스의 말대로 ‘기술을 가진 네안데르탈인’을 길러낼 뿐이다.
조선시대에도 배움에 대한 욕구가 컸지만 이는 ‘교육열’이라기보다는 ‘학습열’ 혹은 ‘호학성’(好學性)이라고 칭해야 옳다. 일본의 통감부가 설치되면서 ‘교육열’이라는 어휘가 나타났는데, 문제는 이 교육열이 적자생존, 약육강식을 모태로 하는 일종의 사회진화론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점이다. ‘지식이 힘이다’라는 산업자본주의 체제의 지식관이 사회를 장악했고, 교육은 국가 발전을 위한 도구적 수단으로 전락했다. 학력에 의한 서열화가 조장되고, 교육은 개인 인권, 집단 민권의 확대에 기여하지 못했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공부라는 주제를 놓고 인식론과 수양론을 함께 논했다. 이들은 ‘안다는 것의 총량과 인격의 성숙이 비례해야 한다’고 믿었고, ‘지식으로부터의 인격의 소외를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구 학자들은 지식과 덕성이 결합된 조선의 지식 체계를 ‘인격적 지식(Personal Knowledge)’이라고 개념화했다.
당시 대부분의 가정에선 ‘삼감’(愼)과 ‘두려움’(畏)의 정서를 가르쳤다. 교육을 통해 입신양명하려는 욕구는 과거제도가 정착된 조선시대를 지배했지만, 유가 교육에는 이같은 ‘나아감’의 철학을 억제하는 ‘물러남’의 철학이 함께 있었다.
“조선의 교육이 천박한 출세주의에 함몰되지 않고, 맹목적인 교육열에 들뜨지 않을 수 있던 것도 이러한 양가적 가치를 함께 지녔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퇴계 이황은 하루 24시간을 나눠 매 순간 공부하며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꿈꿨다. 일기에는 매화 향기 가득한 도의 세계를 펼쳤지만,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선 농토와 노비를 걱정한 현실주의자였다.
‘목이 빳빳한 선비’였던 남명 조식은 세상과 한 발 거리를 두면서도 세상에 대한 고민을 그친 적이 없었다. “천 가지 백 가지 하늘의 재앙과 억만 갈래의 인심(人心)을 무엇으로 감당해 내며 무엇으로 수습하겠습니까?”라고 격렬한 상소를 올렸다.
저자의 고민이 진부하고 고리타분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수양 없는 지식, 물러남 없는 나아감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황우석 사태와 최근 대학가의 표절 논란을 통해 뒤늦게 깨우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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