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뜰정보] 오동통 속살 푸짐한 인심[제철 맛여행 … 홍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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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2.28 09:2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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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식군은 교복을 입은 채 포장마차를 기웃거렸다. 어른들이 잔으로 파는 소주에 갯장어(곰장어) 구이를 안주로 한잔 하고들 계셨다. 주인 아주머니가 영식군을 보더니 반가운 척 말을 건다. “왜그래? 춥쟈? 홍합 국물 한 그릇 먹고 가라.” 아주머니는 커다란 국자로 홍합 국물을 두어번 양푼에 담고 홍합 몇 마리를 넣어주신다. 영식군은 꾸벅 인사를 하고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며 마시기 시작한다. 국물은 금세 식는다. 때는 1988년 2월이었고, 지금은 사라진 잠원동 한신포차의 한 포장마차에서 볼 수 있었던 풍경이다.
예전에 포장마차에서 가장 인심 좋았던 서비스 메뉴는 홍합이었다. 지나가던 학생이 얼쩡거려도 한그릇 퍼 줄 정도로 홍합은 우리 겨울의 넉넉한 인심의 대명사였다. 술 한잔 하러 포장마차에 들어가면 묻지도 않고 내주던 기본 안주 역시 홍합탕이었다. 그 국물을 두어번 들이켜고 나면 속이 개운해지고, 이윽고 몸은 소주 한잔을 원한다는 신호를 보낸다. 홍합 인심이 그렇게 좋았던 이유는 첫째, 홍합의 가격이 쌌기 때문이다. 홍합은 지금도 여수 등 양식 산지 가격으로 30㎏ 한 망에 1만원 정도면 살 수 있다. 둘째, 조리법이 워낙 간편했기 때문이다. 홍합을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으면서 삐죽삐죽 나온 털을 없앤 다음, 들통에 넣어 물을 붓고 소금을 조금 넣은 후 씻은 홍합과 듬성듬성 썬 대파, 마늘, 양파를 넣고 홍합의 입이 벌어질 때까지 삶는다. 국물이 뽀얗게 오르면 입맛에 따라 청양초, 실고추 등을 넣고 소금으로 간하면 훌륭한 홍합탕이 완성된다.
속살의 때깔이 빨개 홍합(紅蛤)이라 명명된 이것은, 경상도에서는 ‘합자’나 ‘열합’으로 불린다. 강원도에서는 ‘합’이라 하며 속살을 삶아 말린 것은 ‘각채(殼采)’라 한다. 주채(珠采) 또는 동해부인이라 불리기도 한다. 홍합의 특이한 맛은, 그 주요 성분인 유리아미노산과 유기산에서 비롯되며, 비타민D가 많이 들어있는 게 영양의 특징이다. 비타민D가 몸에 들어오면 간장에 가장 많이 저장되며 피부, 폐 등에도 남게 된다. 따라서 피로회복에 좋고, 피부미용에도 효과가 있다. 물론 다량의 술과 함께 먹는다면 저장되기도 전에 영양소는 파괴되겠지만….
예전에 그저 간편한 홍합탕 정도로만 조리되거나, 말려서 한약재로 이용되던 홍합이 이제는 많은 요리의 재료로 사용되고 있다. 홍합죽, 홍합밥, 홍합찜, 홍합조림, 홍합꼬치 등 다양한 조리법이 개발되었으며 포장마차에서나 먹던 홍합을 이제는 최고 수준의 레스토랑에서도 스페셜 메뉴로 판매하고 있다. 특히 홍합찜은 우리나라보다 벨기에 프랑스 등 유럽에서 즐겨먹는 음식이며 중국음식에도 홍합은 빼놓을 수 없는 겨울철 식재료이다.
말린 홍합을 물에 불려 프라이팬에 볶다가, 버섯을 넣어 조금 더 볶은 다음, 간장양념 소스를 부어 조린 뒤 녹말가루를 뿌려 먹는 홍합버섯간장조림은 입맛을 잃기 시작하는 2월의 훌륭한 찬거리로 손색없다. 삶은 홍합을 양념장과 함께 프라이팬에 구워 반찬이나 술안주로 먹어도 맛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인기있는 홍합 요리로는 단연 홍합찜을 들 수 있다. 깨끗이 씻어 소금물에 삶아낸 홍합을 껍데기째 준비해 놓은 뒤, 기본 재료로 만든 양념장을 프라이팬에 올려 팔팔 끓을 때 홍합을 넣어 양념이 제대로 배도록 익힌다. 그리고 기름을 살짝 뿌려 먹으면 된다. 이런 기본 조리법에, 매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청양초나 멕시코고추와 마늘을 먼저 볶다가 매운 양념장을 끓여내면 매운 홍합찜이 되고, 순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파슬리를 포도씨 기름에 볶다가 순한 양념장과 함께 익혀내면 순한 홍합찜이 된다. 여기에 살짝 구운 두부를 넣으면 홍합두부찜이 되는 것이고, 취향에 따라 화이트와인, 올리브오일 등을 첨가함으로써 개성에 맞는 무궁무진한 퓨전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홍합을 주제로 하는 전문식당은 없다. 굳이 말하자면 삼청동의 청수정(02-738-8288) 정도를 들 수 있다. 청수정은 홍합밥으로 유명한 집이다. 삼청동 총리공관 삼거리 입구 왼쪽에 있는 청수정은 홍합과 함께 지은 밥을 정갈하고 많은 반찬과 함께 내는데, 도심에서 흔히 맛볼 수 없는 메뉴라서 많은 사람들이 줄 서서 먹는 음식이다. 그러나 홍합밥을 영양솥밥 정도로 생각하여 쌀밥 반, 홍합 반을 기대하고 간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작은 것’을 표방하는 집으로 밥도 조금, 홍합도 조금이다.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마늘을 주재료로 한 매운맛 메뉴로 많은 단골과 지점(압구정-여의도-광화문-삼성동-테헤란로)을 운영하고 있는 매드포갈릭(02-546-8117)에서는 매콤한 맛의 화이트 소테 프레시 머슬, 소테 프레시 머슬 등 독특한 홍합요리를 맛볼 수 있다. 이촌동의 이트리(02-798-0289)에 가면 와인, 양파, 샐러리와 함께 조리하는 뉴욕 스타일의 홍합찜을 맛볼 수 있다. 이태원 해밀톤 호텔 뒷골목에 있는 미뇽테라스(02-793-3070)는 벨기에 스타일 레스토랑이다. 이곳에는 유럽여행 시 벨기에나 프랑스에서나 맛볼 만한 벨기에식 홍합요리를 먹을 수 있다. 벨기에 전통식 홍합요리, 베이컨과 마늘이 들어간 크림소스 홍합요리, 프로방스 소스 홍합, 매운 토마토 소스 홍합, 카레홍합, 블루치즈 소스 홍합 등이 그것이다. 홍대앞 홍가(02-3143-0104)는 홍합탕을 무제한 리필해주는 집으로 근처 술꾼이나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집이다.
홍합은 겨울이 제철이다. 다른 식품들은 계절이 조금 지나거나 전혀 다른 계절에 먹어도 큰 탈이 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홍합은 그렇지 않다. 꼭 겨울에 먹어야 한다. 냉동 식품을 먹을 수도 있지만, 홍합 특유의 제 맛을 보려면 일단 겨울이어야 하고, 특히 5월에서 9월 사이에 채취한 홍합은 절대 먹지 말 것을 권한다. 바다의 수온이 올라가는 봄부터 늦가을까지는 패류에 독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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