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역귀성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2.16 09:03:58
  • 조회: 316
할머니는 툇마루에 앉아 계셨다. 문설주엔 시계가, 기둥엔 파리채와 모자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댓돌 옆에선 늙은 호박이 졸았고, 물기를 짜낸 수건은 비튼 자국 그대로 수돗가 빨간색 호스 옆에 놓여 있었다. 바람이 불면 빨랫줄의 수건과 양말과 함께 못에 걸어 말려둔 시래기도 흔들렸다. 김자반이 가득 든 쌀자루 크기의 비닐봉지를 묶으며 할머니가 말했다. “이건 안 무거운께 서울 들고 갈라요. 허리가 아파서 농사를 못 지은께 자석들한테 빈 손으로 가네.”
전남 해남군 송지면 미야리에 사는 이행심 할머니(77·오른쪽 사진 아래)와 정양민 할아버지(78·위) 내외는 올 설에도 명절을 쇠러 서울 자식 곁으로 올라간다. 땅끝 해남에서 서울까지 450㎞. 꼬박 한나절 길이지만 지난 10년간 설·추석마다 다녀왔다. 할머니는 가족 사진을 모자이크처럼 모아놓은 액자를 가리켰다.
“애기들 결혼사진, 돌사진이여. 저건 둘째가 대학 졸업할 때고. 지금은 거제도에 있제. 큰아들은 안산, 딸들은 서울, 부산에 있고만. 팔도강산이여. 수대로 오느니 우리가 둘인께 가볍게 가야제.”
2남3녀에 손자가 10명이니, 명절이면 20명이 움직여야 했다. 일찌감치 ‘역귀성’을 택했다. 이미 큰아들네가 신위를 모셔갔기 때문에 제사에 대한 부담도 적었다. 할머니는 열아홉살 때 20리 떨어진 현산면에서 이곳으로 시집왔다. 맏이 아내로 동생 7남매를 결혼시키고, 아들딸 5명을 공부시키고 결혼시켰다. 큰일 다 끝냈다 싶었더니 10여년 전 허리 디스크를 얻었다. 아픈 시어머니를 대신해 큰며느리가 제사를 가져갔다. “자식 다 여의고(결혼시키고) 마음 좀 편할라고 한께 몸이 병들어.” 노인회장인 김상표 할아버지(73)가 한마디 보탰다. “저런 게 농사병이여. 자식들 가르칠라고 농사하다가 든 병이여.”
설·추석엔 할아버지 할머니가 ‘귀성’하고, 자식들은 휴가 때 내려온다. 한번 올라가면 서울 딸네 갔다가, 안산 아들네 갔다가 열흘씩, 보름씩 머문다. 아침 7시에 집을 나서 오전 9시 차로 서울 가면 오후 2시. 딸 집에 도착하면 3시다. “올 설에는 군대 간 손자가 오려나. 얼마나 춥겄냐. 테레비에 군인만 나와도 니 생각이 난다.”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둔 노인회관도 제법 명절 이야기로 흥성거렸다. 미야리 110여가구 가운데 역귀성 가구는 4집. 용종희 이장(70)은 “미야리뿐 아니라 어느 마을이나 너댓집은 명절 쇠러 자식에게 간다”고 말했다. 천영순 할아버지(73) 내외도 경기 안산 큰아들네에 갈 계획이다.
“아그들 내려오려면 24시간도 더 걸리요. 그믐날 와야 하는데, 초하룻날이 돼도 못와. 우리가 가믄 5시간 반이면 되제. 애기들 데불고 오는데 길에 눈이나 오고 하믄 안 좋응게, ‘인자 나가 올라갈란다’ 했지. 날 좋은 추석땐 아그들이 오고.”
천할아버지의 설날 역귀성은 올해로 5년째다. 아들딸 5남매에 손자가 9명. 서울과 안산에 흩어져 있는 자녀들은 설날 큰아들네로 모인다. 손자도 한번에 볼 수 있다. 다만 올망졸망 싼 보따리를 들고 차 타는 것이 좀 걱정스럽다. 꼬박 하룻길인데.
“농사 지은 거 갖다주제. 쌀농사 한 걸로 떡국 떡 뽑아가고, 참기름, 고춧가루 가져가고, 김 한 톳 사가고. 도시는 해물이 비싼께 삼치, 낙지, 조개… 옳지, 꼬막. 매스콤 보니까 애기들 사 먹는 게 다 수입산이랴. 우리 손으로 지은 건 무공해니까. 숫자로 셀라믄 10가지도 넘을 거요.”
천할아버지처럼 명절날 자식을 찾아가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해남 버스터미널은 2년 전 추석부터 명절마다 서울행 임시버스를 편성하고 있다. 이원명 금호터미널 해남사무소장은 “평소 절반도 차지 않는 서울행 버스가 명절 때면 노인분들로 자리가 없다”면서 “자식들 줄 보따리 때문에 짐칸에 자리가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소장은 또 “노인분들은 우등 버스 대신 1만원 정도 싼 일반 버스만 타신다”고 덧붙였다.
자식들 편하게 해 주려고 역귀성을 택했지만 당신 마음도 편한 것은 아니다. 이른 아침 출발해 꼬박 한나절을 가야 한다. 혹시라도 애들이 터미널에 안 나오면 어떡하나. 날은 춥고 길은 모르는데. 성묘는 또 어떻게 하나. 천할아버지는 “서울 가기 전에 내가 성묘 가서 신고하면 된다”면서도 “애기들이 성묘도 하믄 좋은디…”라고 말끝을 흐렸다. 갑자기 먼 곳으로 제사를 옮기면 조상들이 찾아올 수나 있을까. 이연재 할아버지(69)가 어깨를 툭 쳤다. “조상도 첨에 길 잘 알려드리면 다 찾아오시게 돼 있어. 인자 세상이 변했응께.”
역귀성 명절이라고 특별할 건 없다. 서울 간 김에 청계천이며 궁궐도 구경하고 싶지만 일 바쁘고 형편 빠듯할 자식들에게 부담 주고 싶지 않다. “괜찮여. 지들 보고 싶은 것 보고 먹고 싶은 것 먹제.” 정양민 할아버지의 말에 다른 할아버지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아녀, 요즘은 개성시대여. 롯데월든가도 한번 가보고 싶구만.” “음마, 뉴스 못 봤소? 문 닫았당께” “63빌딩은 고로코롬 성냥개비 같응께 어찌 올라간디야” “아따 근디 우리 며느리는 어째 엄니만 챙기냐. 기자양반, 시아부지 좋아하시는 거 포켓에 한주먹 가만히 넣어 드리요” “암, 많은 것 필요없제. 그게 다 정잉께”….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글수정
  • 글삭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