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혁명 성공한 첫 ‘노예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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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2.15 08:56:23
  • 조회: 311
블랙 자코뱅
C.L.R. 제임스 ㅣ 필맥

고대 로마의 스파르타쿠스, 고려시대 만적을 비롯해 수많은 노예들이 세상을 뒤집으려다가 실패한 뒤 목이 잘렸다. 미국의 노예 해방도 흑인들의 봉기가 아니라 남북전쟁이라는 외생 변수에 의해 이뤄졌다.
‘블랙 자코뱅’은 세계 역사상 유일하게 성공한 노예혁명인 아이티혁명을 이끈 투생 루베르튀르(1743~1803·사진)의 별명이다. 유럽의 제국은 17세기 중반부터 경쟁적으로 서인도제도를 식민지로 삼았다. 건강한 원시 상태였던 서인도제도를 무대로 프랑스, 영국, 스페인의 모험가, 범죄자, 채무자들은 서로를 잡아 죽였다. 비교적 질서가 잡힌 뒤 제국은 사탕수수, 커피, 코코아 등의 플랜테이션을 시작했다.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수백만명의 아프리카 노예들이 ‘수입’됐다.
이들은 알몸으로 채찍을 맞고, 끔찍하게 고문당하고, ‘우리’ 속에서 잠들었다. 이국의 노예들이 흘린 피와 땀의 대가로 제국은 번영을 누렸지만, 노예들의 긴장과 불안과 분노는 어느덧 한계치에서 넘실거리고 있었다.
1789년, 대서양을 건너온 프랑스 혁명의 소식은 하나의 불씨였다. 왕이 단두대에 서고 세상이 뒤집혔다는 믿을 수 없는 소문은 노예들의 감정을 폭발시켰다. 1791년, 프랑스령 산도밍고의 노예들은 폭동을 일으켰다. 그간 백인 주인에게 받았던 수모는 약탈, 살육, 강간으로 되갚았다. 끔찍한 복수전을 3년간 묵묵히 지켜보던 투생 루베르튀르는 혁명에 가담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다른 노예와 달리 기초적인 읽기, 쓰기 능력이 있었고, 카이사르의 전쟁 기록을 알았으며, 유럽 열강의 경제와 정치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는 탁월한 지도력과 전략으로 반란 노예들을 모은 뒤, 스페인군, 영국군, 프랑스군의 침략을 잇달아 막아냈다. 프랑스 혁명 이후 혼란기를 정리한 나폴레옹의 군대가 산도밍고에 상륙해 투생 루베르튀르를 프랑스로 압송하기까지, 그는 혁명에 성공한 최초의 노예 지도자였다. 그는 프랑스의 감옥에서 사망했지만, 그의 후계자 데살린은 1804년 산도밍고를 아이티공화국으로 이름짓고 독립을 선언한다.
투생 루베르튀르만큼 흥미로운 건 저자 C L R 제임스의 삶이다. 묻혀있던 아이티혁명의 의미와 투생 루베르튀르의 극적인 삶을 되살린 건 온전히 1938년 출간된 ‘블랙 자코뱅’의 공이었다. 트리니다드토바고 출신인 제임스는 런던에서 크리켓 취재기자로 활동하다가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한다. 그는 멕시코에서 망명생활 중이던 트로츠키와 만났고, 가명을 쓰며 ‘직업 혁명가’로 생활했으며, 매카시즘의 광기가 판을 치던 미국 활동중에는 FBI에 의해 ‘국가전복적이고 탐탁지 않은 이방인’으로 지목돼 추방당했다. 그는 런던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만났고, 미국 대학가에 변혁의 바람이 불던 1960년대 이후 다시 미국으로 들어가 컬럼비아 대학의 교수로 임명된다. 그는 89년 루베르튀르를 닮았던 생을 마감했다.
아이티의 오늘은 어떤가. 부두교와 좀비의 나라로 알려진 아이티는 현재 세계 최빈국 중 하나다. 내란, 독재, 쿠데타의 악순환 속에 민중의 삶은 피폐해졌다. ‘아직 프랑스의 식민지였다면, 행복한 노예였다면’이라고 되뇌는 사람이 그곳에 있을까. 부질없는 질문이다. 역사는 이미 투생 루베르튀르를 선택했고, 바라봐야 할 곳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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