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두번째 삶 ‘호기심 많은’ 요리사[앗 뜨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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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2.12 08:49:33
  • 조회: 330
빌 버포드. 40대 후반. 배가 꽤 나왔다. 미 주간지 ‘뉴요커’에서 8년 동안 문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기자 경력만 23년째다. 그런데 이 분, 어느날 펜 대신 칼을 잡았다. 멀쩡한 직장을 때려치우고 요리사 견습생으로 들어간 것이다.
기껏해야 요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 그러니까 “자신감이 실력을 앞지르는 사람”이었다. 마리오 바탈리를 우연히 만난 게 화근이었다. 그는 뉴욕 맨해튼에서 ‘밥보’(Babbo)라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최고의 요리사로 군림하고 있었다. 바탈리는 “주방에 요리를 배우는 왕도가 있다”고 했고, 그 왕도를 걸어보고 싶었다. “바탈리의 노예가 되어 그의 주방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왜 ‘주방의 노예’를 자처했을까. “23년이나 기자로 일했으면 할 만큼 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언어 위주의 도회적 삶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동경했는지도 모른다. 음식을 만드는 ‘순수한 즐거움’을 원했다. 간단한 가구나 예술작품을 완성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 “이 수공예 예술품은 심지어 먹을 수도 있다.” 나중에 그는 “정확하고도 근사한 요리를 만들 때면 조용한 짜릿함이 일곤 했다”면서 “더없이 진실된 순간이었고, 도시에 사는 현대인의 삶에서 이만큼 순수한 즐거움을 안겨주는 경험은 많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2002년 1월26일 ‘안’에 들어갔다. 재료준비팀에 배치돼 처음 한 일은 오리의 뼈를 발라내는 것. ‘토마호크’ 수준의 칼을 받아들고 우아한 동작으로 왼손 검지의 끝부분을 쓱 훑었다. “그러니까 내가 했다고 생각하는 짓을 정말로 한 거 맞아? 응, 맞아. 그리고 손끝에서 피가 콸콸 솟구쳤다.”
오리만 그랬을까. 당근은 “마음에 상처를 남겼다.” 꽁다리까지 남김없이 1㎜ 정육면체로 제대로 써는 데 성공한 건 한 달 뒤. 불완전한 것들은 몰래 집어먹었지만. 소갈비를 튀기다가 뜨거운 기름에 손가락을 데기도 했다. ‘그릴 요리사’로 승진했어도 사정은 마찬가지. 팔뚝의 털은 불에 그을리기 일쑤. 고기가 잘 익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쇠꼬챙이로 찔렀다가 그걸 입술에 댔다. 책 제목처럼 “앗 뜨거워”의 연속이었다.
계속 할 것인가, 아니면 물러설 것인가. 그러나 이미 묘한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반복하고 또 반복했고, 냄새를 맡았다. 어느 순간 그게 무슨 음식이라는 건 물론 지금 어떤 상태인지까지 알아차릴 수 있게 됐다. 소변이 샛노랗게 나올 정도로 탈진 상태였지만 “유쾌함, 두려움, 불가해함, 몸에 엔도르핀이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팬에다 허브를 뿌릴 때 터져나오는 향기에 빠져드는 ‘백일몽’의 순간을 사랑하게 됐다.
1년3개월을 ‘밥보’에서 일했고, 인정도 받았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런던으로 날아가 바탈리의 스승 마르코 피에르 화이트를 만났다. 바탈리가 도제생활을 한 이탈리아의 산골마을 레스토랑에서 수제 파스타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이탈리아에서 제일 유서깊은 푸줏간에서 7개월간 일하면서 ‘고기의 영혼’에 대해 듣고 허벅지 살 다듬는 법을 배웠다. 물론 여전히 사고를 쳤다. 부딪히고, 베이고, 넘어지고, 머리를 깨고, 살을 태웠다.
가끔 1000년을 이어온 거대한 흐름을 느꼈다. “낯선 곳에서 문득 모퉁이를 돌다 지평선 가득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보게 됐을 때”와 비슷한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 ‘작음의 논리’라는 것도 깨달았다. 손으로 만든 것이고, 손에 손을 거쳐 이어지는 것들이다. 그건 이제 비록 덧없이 스러지고 있지만 “저항의 행위이며, 현대인의 삶을 이루는 모든 것에 역행”한다. “그것을 찾아서 그것을 먹는다면 그것은 지속될 것이다.”
‘구경꾼’이었던 그는 어느새 주방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바탈리는 레스토랑을 열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그럴 생각이 없었다. 주방장이 아니라 그냥 요리사가 되고 싶었다. “그저 좀더 인간적이고 싶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직 끝마치지 못한 일이 있다. 프랑스로 가야겠다. 16세기 프랑스 왕비가 된 카트리나 데 메디치가 이탈리아 요리 비법을 함께 가져가 프랑스 요리의 르네상스를 열었다는 그곳으로.
‘앗 뜨거워’(원제 Heat)는 무턱대고 요리의 세계로 뛰어든 저자가 쓸 만한 요리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경쾌한 문장으로 그려낸 책이다. 저자는 넘치는 호기심으로 뉴욕과 이탈리아의 주방 ‘안’으로 뛰어들어 우리가 몰랐던 세계와 그 세계를 이루는 인물들의 열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아울러 음식을 매개로 삶과 문화에 대한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성찰을 담아냈다. 라구, 랑귀니, 토르텔리니, 브란치노, 폴렌타, 소프레사타, 아리스타 등 낯선 이탈리아 요리를 맛보는 기쁨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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