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넷/통신] 인간성 훼손 ‘공공의 적’[인터넷세상의 병폐 ‘악플’]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2.07 09:21:41
  • 조회: 282
인터넷이 처음 도입됐을 때 학자들은 일방적이고 폐쇄적인 의사소통 구조가 쌍방향 소통으로 변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들의 예상은 실현됐지만 그 결과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악성 댓글, 이른바 ‘악플’로 인한 병폐다. 2005년 임수경씨가 불의의 사고로 아들을 잃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 언론의 인터넷 사이트를 중심으로 ‘천벌을 받았다’ ‘쌤통이다’는 식의 악플이 달렸다. 임씨는 악플러들을 고소하기에 이르렀고, 검찰에 소환된 25명의 악플러들은 3~4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혹을 넘긴 중년이었다. 이들 악플러 중에는 대학교수, 금융기관 간부, 공무원도 있었다.
악플은 허위 사실 유포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탤런트 김태희씨는 지난해 누리꾼 33명을 고소했다. 이들은 재벌과의 결혼설 등 미확인된 소문을 유포한 혐의를 받았다. 당시 김태희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얼토당토 않은 소문들이 인터넷을 떠돌고 시간이 지나가도 사그라들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진짜로 믿는 것 같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악플러들은 이미 고인이 된 사람도 가리지 않는다. 교통사고로 병상에 있다가 최근 유명을 달리한 개그우먼 김형은씨의 미니홈피에도 악플이 달려 가족과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신보 발매를 앞두고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수 유니씨도 생전 악플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악플을 다는 사람은 누리꾼 중에서도 소수라고 하지만 이들의 행태에는 우리 사회의 부정적 측면들이 일그러진 거울처럼 비친다. 우선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식의 합리적 토론문화 부재다. 미학자 진중권씨는 최근 저서 ‘호모 코레아니쿠스’에서 과도하게 압축적으로 진행된 근대화 과정 속 한국인의 모습을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이성보다는 ‘정념’, 합리성보다는 ‘주술성’에 의존하는 현대 한국인의 모습은 합리적인 문자문화와 정념적인 구술문화가 뒤섞인 결과다. 근대화 지체로 인한 조급증 탓에 외형적으론 정보화사회에 들어섰지만, 이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여전히 과거의 정념이라는 것이다.
사형제에 대한 인터넷 논쟁을 예로 들어보자. 독일이라면 “누가 당신에게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권리를 주었는가”라는 주장에 “누가 당신에게 사람을 잡아 가둘 권리를 주었는가”라는 논리적 반박이 이어지지만, 한국에서는 “네 가족이 살해당했다고 생각해봐라. 그런 놈은 쳐죽여야 된다”는 식의 감정적 언사가 난무한다.
‘빨리 빨리’로 표현되는 속도지상주의도 악플의 한 원인이다. 하나의 게시물에 대해서도 ‘등수 놀이’라는 빨리 댓글 달기 경쟁이 벌어진다. ‘등수 놀이’ 자체는 순수한 유희에 가깝지만, 문제는 게시물을 제대로 읽지 않고 일단 댓글을 다는 속도전에 있다. 악플의 상당수가 인터넷 기사나 게시물의 내용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제목만으로 내용을 미루어 짐작하고 서둘러 작성된다. 일단 마음에 들지 않는 연예인이나 유명인사에 관한 글에는 내용 불문하고 악플을 단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늘어난 인터넷 사용자들 사이에서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픈 욕구도 악플을 부른다. 인기있는 기사의 경우 댓글이 몇 페이지에 걸쳐 달리곤 하는데, 이들 사이에서 10~100자의 글로 돋보이기는 쉽지 않다. 수많은 익명의 누리꾼들 사이에서 눈에 띄기 위해선 자극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전략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
한국은 전국을 연결하는 초고속 통신망의 발달에 힘입어 ‘IT강국’의 반열에 올라섰지만, 그에 걸맞은 윤리적 태도는 채 갖추지 못했다. 악플 문화를 비롯해 불법 다운로드로 인한 오프라인 음원시장 및 영상물 부가판권 시장 붕괴 등이 IT강국 한국의 그늘이다. ‘앞서가는 테크놀로지, 뒤따라가는 예절과 법규’의 양상이 21세기에도 여전하다.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글수정
  • 글삭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