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평생 단한번이라도 행복해지고 싶었죠”[이종욱씨 ‘헤이리에 헌책방카페 연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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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2.05 0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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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무익하다고, 책 읽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냐고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다. 군사 독재정권 때였다. 독재 권력에 의해 100명도 넘는 동료와 함께 신문사에서 강제로 쫓겨났다. 그해 여름, 오랜만에 밤새워 시를 썼고, 가을에 ‘시인’이라는 직함을 얻었다. ‘광주 학살’을 현장에서 지켜본 뒤 버거운 그 직함을 슬며시 내려놓았고, 몇해 뒤 새 신문 창간에 참여한 때부터 글쓰기와 업무에 요긴한 것들만 골라 읽는 ‘절름발이 독서’를 했었다. 서울을 떠나 여기 헤이리에 와서 시와 책읽기를 온전히 되찾았다.
단편집 ‘만년’을 흥미롭게 읽고 별러왔던 ‘인간 실격’과 ‘사양’을 다시 읽고 있다. ‘인간 실격’의 주인공은 “겁쟁이는 행복조차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목화솜에도 상처를 입습니다. 행복에 상처 입을 수도 있는 겁니다”라고 생각하면서도 “만약에 하느님이 나 같은 자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면, 한번만, 평생에 단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행복해지고 싶다”고 독백한다.
그렇다면 나는 겁쟁이가 아니고, ‘인간 합격’인가? 아니면, 새로운 유형의 ‘속물’이 된 것인가?
가족들이 보던 책들, 어떤 때는 꽤나 성가신 짐이 되던 책들로 헌책방 개념의 명실상부한 북카페를 꾸미면 어떨까, 라는 결론을 내리고 실행에 옮긴 뒤 네번째 겨울을 맞고 있다. 몇 십년간 도시에서 살면서 해마다 같은 겨울을 보냈는데, 이곳에서는 해마다 다른 겨울이다. 가장 큰 차이는 그곳에서는 행복하다는, 꽤 싱싱하게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가진 적이 없었는데 이곳에서는 이따금씩 그런 느낌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밖에도 ‘부록’으로 얻는 것들이 적지 않다.
가끔 메뉴와 방명록을 겸하는 공책을 뒤적이다가 그것이 나만의 느낌이 아니라 이곳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각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제일 반가운 것은 “집에 있는 기분”, “따뜻한 느낌”이라거나 “행복을 담고 간다”는 글을 대할 때이다. “몸과 마음을 편히 쉴 수 있는 곳이기에 너무 행복합니다”라는 구절도 반갑지만, “이 순간이 내 인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닐까요?”라는 구절은 과분하다. 이 방명록에서 새삼스레 삶의 자세를 배우고 깨달음을 얻는 기쁨도 누린다.
그 다음으로 반가운 말은 “언젠가는 나도 이곳처럼 음악과 책향기가 가득한 곳에서 살고 싶다”거나 “나중에 꼭 이같은 헌책방 카페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이다. 물론 그들의 꿈이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속마음으로 빈다. 썩 부러워하는 언론계 후배나 글쓰는 선후배를 만날 때마다, 장소와 시기는 상관없으니 꼭 해보라고 부추긴다.
책냄새를 반기고, 책향기에 흠뻑 빠지는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을 만나면, 북카페를 시작한 보람을 듬뿍 느낀다. 헌책방을 두루 뒤졌는데도 못 찾았던 책을 발견하고 사뭇 기뻐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예전의 나의 모습’을 만나 미소를 짓는다. 미처 읽지 못한 책, 절판된 책을 족집게처럼 뽑아갈 때면 아쉽지만 양보(?)한다. 애초에 ‘응접실’ ‘공동 서재’ ‘마을의 작은 도서관’이라는 개념으로 시작한 북카페가 아닌가. “응접실이라 생각하고 편히 쉬었다 가세요.” 잠시 들른 이웃이나 손님들에게 아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물론 헤이리에 헌책방 카페를 시작한 바탕에는 이제부터라도 ‘무소유’와 ‘나눔’을 연습해야겠다는 뜻도 있었다. 서울 생활을 마감하며 살림살이를 3분의 1가량 줄였고, 책들도 죽을 때까지 끌어안고 있느니 ‘공유’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손님들이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잘 정리된 책방이 아니라 책들이 다소 어지럽게 널려 있지만 손닿는 대로 읽을 수 있는 ‘내 집 같은 쉼터’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가끔 언론계에 첫발을 내디딘 그 신문사에서 정년까지 맞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아무래도 헌책방 카페 같은 것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어린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이 땅의 원래 주인인 갖가지 풀과 나무, 새들, 한밤의 정적과 친근히 여생을 보낼 것 같다.
◇글쓴이 이종욱씨(61)
언론인 출신. 30여년간 동아일보, 한겨레, 창작과비평사, 한길사 등 언론사와 출판사에서 일했다. 2003년 경기 파주시 헤이리 아트밸리에 소장도서 4000여권으로 헌책방 북카페를 연 그는 나뭇잎을 닮은 북카페 ‘반디’에서 시도 쓰고 번역도 하며 행복한 ‘인생 2막’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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