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내가 ‘악플러’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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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2.05 09:09:08
  • 조회: 328
경제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김모씨(21)는 올 4월 군입대를 앞두고 휴학중이다. 입대 전의 동년배들처럼 그도 친구 만나 소일하고, 밤에는 술도 마시며 하루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현재의 평화로운 나날과 달리 수개월 전만 해도 김씨는 형사 피의자 신세였다. ‘악플러’(인터넷 게시판에 악성 댓글을 올리는 사람)였기 때문이다.
지난달 26일 만난 김씨는 말 그대로 ‘신체 건강한 청년’이었다. 인터뷰 내내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을 만큼 성격도 밝았지만, 법정에 선 경험에 대해 묻자 “솔직히 잊고 싶다”며 한숨을 쉬었다.
김씨는 고교 3학년 때인 2005년 ‘디시 인사이드’ 게시판에서 한창 이름을 날렸다. 그의 ID는 아직도 사이트 이용자들에게 전설적인 악플러로 기억된다. 그는 게시판에 욕설과 혐오스러운 사진이 잔뜩 담긴 글을 올리거나, 특정 게시물에 같은 유의 댓글을 계속 달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려나갔다. 자신에게 항의글이라도 올라오면 해당 누리꾼과 ‘배틀’(서로 악플을 달며 말싸움하는 것)을 벌이기 일쑤였다.
“왜냐고요? 그냥 재미있었거든요. 배틀을 붙더라도 상대방이 정말 죽기를 원해서 저주를 퍼부은 건 아니었어요. 단지 장난이었죠. 수험생 스트레스도 작용했을 겁니다.”
김씨의 잇따른 ‘장난’에 운영사측은 처음에는 경고 및 게시글 삭제, 그후엔 IP 차단으로 대응했다. 이에 반발한 김씨는 더 심한 악플을 달았고, 결국 그해 11월 업무방해 혐의로 피소되고 말았다. 김씨는 “고소했다”는 회사측의 연락을 받고서도 ‘겁주려나 보네’ 정도로만 생각했다고 한다. 피소 직후 인터넷 게시판을 떠난 그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적어도 이듬해인 지난해 7월까지는.
“그런데 지난해 여름방학 때였어요. 친구들과 놀다가 집에 와보니 어머니가 ‘도대체 무슨 일이냐’며 법원 소환장을 보여줬죠. 그런 걸 처음 본 터라 당장 실감은 못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전과자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눈앞이 캄캄해지더군요.”
형법은 업무방해죄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씨는 사회에 나가보기도 전에 ‘빨간 줄’부터 그어질 신세가 돼버린 것이다. 처음에 그는 고소인측을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죄값을 받기로 했다. 내가 하는 장난일지언정 당하는 사람에게는 그 이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결국 내 장난이 도가 심했다는 걸 인정하게 됐어요. ‘남들 다하는 악플인데 왜 나만 걸고 넘어지나’ 하는 식의 핑계가 무죄 사유는 될 수 없죠. 이런 자세로 판사님 앞에 섰죠.”
다행히 김씨는 20세 이전이었다. 같이 피소된 다른 ‘성인’들은 형법을 적용받아 최대 수백만원의 벌금형을 받았지만, 김씨는 ‘소년법’ 상의 보호조치를 받는 데 그쳤다. 아슬아슬하게 전과자 신세를 면한 것이다.
지난해 8월 내려진 김씨에 대한 판결은 보호관찰 6개월에 사회봉사 40시간이었다. 사회봉사 명령에 따라 오전 9시~오후 5시 우편 집중국에서 우편물 정리하는 일을 2주일간 했다. 보호관찰 명령대로 매달 한번씩 형사가 김씨 집에 찾아와 뭐하고 있나 보고 갔다. 김씨도 몇달에 한번씩 보호관찰소에 출두해 보고서를 쓰곤 했다. 성실히 이행한 덕인지 예정보다 1개월 이상 단축된 지난달 초 보호관찰이 종료됐다.
김씨는 “지금은 악플의 세계를 떠났다”며 자신의 지갑을 열어 당시의 법원 소환장을 꺼내 보였다. “가끔씩 꺼내 보면서 반성도 하고 악플 욕구를 자제한다”는 설명이다.
“요새는 ‘눈팅’(남의 게시글을 읽기만 하는 것)만 하고 있어요. 온라인 생활의 대안으로 오프라인 인간관계도 많이 넓혀가고 있죠. 또 걸리면 가중처벌되는 걸 알기 때문에 댓글을 남기더라도 최대한 격식을 차리는 편입니다.”
한때 악플러로 이름을 날렸던 김씨조차도 악플을 사회적 문제로 보고 있었다. 전국을 아우르는 인터넷망, 누구나 쉽게 접촉할 수 있도록 개방된 인터넷 환경, 누리꾼 스스로의 ‘가벼운’ 사용행태 등이 복합되어 악플현상을 키우고 있다는 구조적 설명까지 덧붙였다.
“우리나라는 인터넷 기반이 발달해 있지만 이에 비해 이용 문화는 성숙하지 못한 거죠. 따지고 보면 청소년은 친구들과 욕설 섞어 대화하고 있고, 성인들도 눈앞에 보이지 않는 대상에게 쉽게 욕설을 퍼붓고 있잖아요. 오프라인 언어생활이 과격한 상황에서 온라인 토론 문화가 밝아지길 바랄 수는 없을 것 같기도 해요.”
김씨는 ‘왕년의 악플러’로 남을까, 아니면 ‘잠재적 악플러’로 잠시 악플 세계를 떠나 있는 걸까. 그는 과거와 같은 상습 악플러는 전혀 아니지만, 현재의 모습에 대한 혼란을 살짝 내비치기도 했다. “사실 제가 좀 욱하는 성격이라, 엉터리 인터넷 기사나 눈꼴 시린 자랑 글을 보면 욕해주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요. 뭐, 최근에 딱 한번 포털 뉴스 댓글에 욕설은 아니지만 반말 등 과한 표현을 쓴 적이 있어요. 공론장에 악의적으로 거짓 정보를 올린 사람을 비난한 건데, 그것도 악플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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