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뚝딱뚝딱 ‘희망을 짓는다’[‘한옥학교’에 도전하는 미래의 목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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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1.31 09:32:39
  • 조회: 467
“자, 하나 하면 체력, 둘 하면 단련이여. 으으샤!”
양쪽 끝으로 4명씩, 8명이 달라붙었다. 2층을 떠받칠 귀틀용 목재를 번쩍 들어 단번에 제자리에 꽂았다. “너무 잘 들어가는데? 아무래도 처음 해 보는 게 아닌가봐?” “저~기 밑에서 기름칠 좀 했다 아입니까.”
한옥학교 생활 4개월째. 행색은 ‘노숙자’가 따로 없었다. 찬바람에 뺨은 빨갛게 얼어붙었고, 점퍼는 불똥이 튀어 벌집처럼 숭숭 구멍이 뚫렸다. 며칠째 깎지 않았는지, 수염은 텁수룩했다. “잘 보일 사람이 없으니 씻을 필요도 없죠, 뭐.” 6개월 동안, 주 5일, 매일 8시간 수업한다. 학생들은 화천읍 근처 폐교를 개조해 만든 학교와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결석은 불가, 교내에서 술을 마시면 즉각 퇴교다. 25세부터 63세까지, 제주도만 빼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학생들은 굳게 결심했다. 남은 인생은 목수로 살겠다고.
“지금까지 만져본 나무라곤 이쑤시개가 전부였다”는 한경호씨(36)는 지난해까지 섬유 수출회사에 근무했다. “재취업도 생각해봤어요. 하지만 다른 직장으로 옮겨봐야 버틸 수 있는 게 겨우 3~5년이에요. 차라리 영구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우는 게 낫겠더라고요.”
한씨는 오는 3월 한옥학교를 졸업하면 곧장 현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통상 30명 가운데 7~8명이 현장 일거리를 얻는다. 취업은 어렵지 않지만 초임은 일당 8만원 안팎에 불과하다. 숙련 기술자 소리를 들으려면 적어도 3년 정도는 실무 경험을 쌓아야 한다. 한씨의 꿈은 5~8년 후 고건축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것. 학생 절반은 한씨처럼 전업이나 재취업을, 나머지 절반은 귀농해 자기 손으로 집을 짓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전업·재취업은 30대 후반~40대 초반, 귀농은 40대 후반~50대 초반이 많다.
이영현씨(52)는 귀농파다. 30여년간 공무원으로 일하다 지난해 2월 명예퇴직한 그는 고향인 강원 양양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낼 계획이다. “남은 시간 아옹다옹하면서 살 필요 있나요. 내 집 짓고, 여러채 지어 친구들도 재워주고….” 똑같은 숙박업이라도 펜션보다는 한옥이 향후 전망이 밝다는 판단이다.
영하의 날씨 속에서도 뒷짐을 진 학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전동톱과 끌로 문지방을 깎는 지도교수의 손놀림을 유심히 지켜보다 슬그머니 주머니에서 디지털 카메라를 꺼낸다. 오영일씨(38)는 아예 비디오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지금까지 60분짜리 테이프 3개 분량을 찍었다. 오씨는 10여년간 네트워크 엔지니어로 일하다 꼭 1년전 그만뒀다.
“매일 똑같은 회사에 나가 똑같은 일을 하는 게 정말, 신물이 났어요.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더라고요. 목수도 괜찮을 것 같아요. 안되면 나중에 제가 살 집이라도 지을 수 있잖아요? 일종의 ‘보험’이죠.”
그렇게 생각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오는 3월 신학기 수강생 모집은 지난해 12월 접수 시작 30분 만에 마감됐다. 3개월마다 30명씩 모집한다. 월 70만~80만원의 수강료를 내야 하는 타 한옥학교와 달리 입학금 45만원을 제외하면 별도의 수강료가 없다. 화천군이 화천에 한옥을 지으려는 이와 한옥학교를 중개해주는 덕분이다. 실제 주택이 학생들의 실습 대상이 된다. 건축주는 인건비를 내지 않고, 학생들은 수강료를 내지 않는다. 평당 800만원 안팎의 건축비가 500만~600만원으로 내려간다. 2004년 6월 개교 이후 300여명의 학생을 배출했고, 17채의 한옥을 지었다. 한옥학교 이해명 교수는 “교육을 겸하기 때문에 단 1㎜도 실수할 수 없다”며 “4명이서 3개월이면 될 집을 30명이서 4개월이 걸려 짓는다”고 말했다.
화천읍내에서 자동차로 10분. 한옥학교에서는 지난해 12월 입학생 30명이 한창 수업중이었다. 연습용으로 가져온 헌 가구가 곳곳에 놓여있고, 전기톱과 대패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이론 수업은 3주로 끝냈고, 지금은 주문받은 한옥의 목재를 깎는 중. 폐교 교실을 헐어 만든 기숙사를 살짝 엿봤다. 마치 산장처럼 나무 평상이 2층으로 놓여 있고, 빨랫줄마다 양말이며 속옷이 널려 있었다. 목포, 울산처럼 먼 지방에서 올라온 이들에겐 주말도 ‘나머지 학습’ 시간이다.
“군대 훈련소는 겨우 6주지, 우린 6개월이에요. 가족들 너무 보고 싶지.” 왼쪽 새끼손가락에 일회용 밴드를 붙이고 끌을 갈던 유의종씨(54)의 푸념에 황인식씨(52)가 화답했다. “여기 온 사람들은 다 마음 독하게 먹었어요. 다들 나름대로 뭔가 해보겠다는 게 있으니까….” 26년간 섬유회사에서 기계를 운전한 황씨의 두번째 꿈은, 이곳의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목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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