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외모차별 논란 핵심은 ‘미의 규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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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1.05 09:14:13
  • 조회: 422
“어느날 불을 뿜는 무서운 용이 나타나 왕자를 잡아갔습니다. 공주는 왕자를 구하기 위해 험한 산을 오르고, 강을 건너야 했죠. 공주는 힘겹게 용을 물리친 뒤 왕자와 감격스러운 재회를 하게 됐지요. 그런데 왕자는 공주에게 마구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재투성이 얼굴과 더러운 옷은 도대체 뭐야? 날 맞이하려면 공주처럼 차려입고 다시 찾아와’라고 했지요. 자, 여러분이 공주였다면 왕자에게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지난 21일 서울 백운중학교에서 열린 여성민우회의 ‘외모지상주의 인식개선’ 특강 현장. 강사의 질문에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왕자는 용에게 뜨거운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린다”며 다들 자기가 겪은 일인양 분개했다. 그러나 조별토론 끝에 나온 몇몇 학생의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만약 저라면 ‘너는 내 외모만 보고 좋아했던 거였구나, 헤어져’라고 말했겠지만…. 그러나 제가 공주였다면 아마도 ‘미안해, 다시 단장하고 올게’라고 대답했을 것 같아요.”
여성민우회 정은지 간사는 거리캠페인을 하면서 외모와 관련된 사람들의 태도가 이중적이란 사실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 사회는 외모차별이 너무 심하다”고 말하지만, 막상 자신들이 겪은 외모차별 사례를 말해달라고 하면 “나는 없었던 것 같다”고 한다는 것이다. 자신과 공주를 분리시켜 전혀 다른 두가지 대답을 내놓은 한 학생처럼 말이다.
외모차별에 당당할 수 있으려면 먼저 사회에서 정해놓은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은 넘고봐야 한다. 외모도 능력인 사회에서 이른바 ‘못생긴 것’들의 항변은 패배자의 푸념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많은 사람들은 ‘외모 지상주의’를 비판하면서도, 남들과 같아지기 위해 보이지 않는 노력을 기울인다.
지난달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113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성형수술을 받고 싶은 이유로 ‘취업이나 이직을 위해’(29.5%), ‘직업적으로 꼭 필요해서’(19.2%)라고 답했다. 사회활동을 위해 성형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사회활동을 하면서 외모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거나 남들이 외모차별을 당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외모 지상주의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란 명제 뒤에 숨어 명백한 ‘차별’의 영역으로 분류되지는 않고 있다. 이로 인해 “능력이 똑같다면 예쁜 사람을 뽑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는 얘기가 거리낌없이 나온다.
외모 차별을 둘러싼 논란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름다움의 기준이 ‘규격화’돼 있다는 데 있다. 마치 공장에서 똑같은 제품을 찍어내는 것과 다름없다. 작은 눈은 답답함으로 인식되고, 똥배는 게으름의 상징이 되며, 숏다리는 조롱의 대상이 된다.
이날 특강 도중 쉬는 시간에 4~5명의 여중생들에게 ‘예쁘다’는 것의 기준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져봤다. 여중생들의 입에서는 특정 연예인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키는 165㎝ 이상이어야 하고, 코는 한가인처럼 오똑해야 해요. 몸매는 전지현처럼 날씬해야 하고, 눈은 임수정처럼 커야죠.”
이들은 또 “유행에 뒤처지면 안되기 때문에 인터넷에 들어가서 최근 트렌드를 체크해 보곤 한다”고 말했다.
정은지 간사는 “외모에 관한 청소년들의 인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TV 쇼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TV 쇼프로그램은 외모가 떨어지는 연예인들을 등장시켜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연출하고, 스타급 연예인에 대해서는 외모에 대한 과도한 칭송을 늘어놓는 등 외모차별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네티즌들의 글을 번역해 올리는 인터넷 사이트에는 “한국 여자 연예인들은 얼굴이 비슷비슷해서 누가 누군지 구분하기 힘들다”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그도 그럴 것이 탤런트 김태희가 뜨면 그와 비슷한 얼굴의 여자 연예인이 ‘제2의 김태희’란 이름 아래 활동을 시작한다. 가수 이효리의 인기가 절정이었을 때는 자칭타칭 ‘제2의 이효리’라는 연예인이 여러 명 등장했다. 미의 규격화와 획일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신응철 숭실대 교수(철학)는 “20세기 초 독일의 나치즘이 인종 차별주의의 토대가 됐다면 21세기 한국사회는 외모 제일주의라는 망령에 사로잡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흑인과 백인, 황색인의 피부색 차이를 인정하지 않아 빚어졌던 비극이 우리 사회에서는 외모의 우열을 가리는 것으로 변질돼 차별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교수는 “얼굴이든 몸매든, 신분이든 학력이든 그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은 ‘같음’을 강요하지 않을 때 진정성이 확보된다”며 “모두가 잘 생기고 예쁜 얼굴을 갖기 원한다면 사회는 획일화되고 경직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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