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그래도 난, 내 멋대로 산다”[기행 즐기는 ‘내복남’ 백두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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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1.04 09: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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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과 조금만 달라도 억측이 난무하고 욕설에 손가락질은 예사인 우리 사회의 ‘기준’에서 보면 백두현씨(23)는 ‘정상이 아니다’. 한여름에 내복을 입고 거리를 쏘다니고 네티즌들과의 약속이라며 한겨울에 국회의사당 앞에서 내복 차림으로 모 방송사 개그프로그램에 나오는 ‘마빡이’ 흉내를 낸다.
여자친구나 애인없이 나섰다간 열만 받기 쉬운 크리스마스에는 명동거리 한복판을 친구(김경학씨)와 둘이서 내복차림으로 마냥 기쁜 표정으로 걸었다. 영락없는 ‘기행’(奇行)이다.
내복남 백씨에겐 그러나 이같은 기행이 ‘즐거움’이다. 타인의 시선은 의식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그들의 삶이 있고 백씨에겐 백씨의 삶이 있을 뿐이다. 남 눈치 보느라 자신의 행복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주말에 쏟아진 눈으로 기온이 뚝 떨어진 지난달말 백씨는 친구 김경학씨 등 3명과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찾았다. 싸이월드 게시판을 통해 ‘국회 앞에서 마빡이를 하겠다’고 수많은 네티즌들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물론 빨간 내복에 점퍼만 걸친 상태였다. 내복 사이로 찬바람이 스며들면서 그의 팔과 다리는 부르르 떨렸고 이는 저절로 ‘딸그락’ 소리를 냈다.
백씨 등은 맨발로 눈덮인 국회의사당 잔디밭에서 마빡이 흉내를 냈고 심지어 냉수(얼음) 마찰까지 했다. 국회 정문을 지키던 전경이 달려왔고 주변을 지나던 국회 직원들도 터지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곁눈질을 해댔다.
‘남이 뭐라 하든 내가 하고 싶으면 한다’는 백씨의 행동에도 나름의 원칙은 있었다. 맨발로 눈밭을 사정없이 뒹굴었고 혹시 ‘뜨거운 물 아니냐’는 오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눈뭉치를 잔뜩 집어넣은 ‘얼음물’을 몸에 끼얹었다. 약속은 ‘공언’한 대로 지켜져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백씨 일행의 마빡이 흉내는 해질 무렵까지 2시간 넘도록 계속됐다.
백씨는 이같은 ‘기행’을 지난해 8월부터 시작했다. 한여름에 내복 차림으로 거리로 나섰다. 땀띠가 나 괴로웠지만 무엇보다 힘든 건 주위의 싸늘한 시선이었다. ‘미친 놈 아니냐’는 욕설과 손가락질이 돌아왔고 부모님은 ‘아들 헛키웠다’며 대문부터 걸어잠갔다.
살색 내복 차림의 백씨를 멀리서 보고 ‘알몸 차림’으로 오인한 한 시민의 신고로 파출소 신세를 진 적도 있었다. 그래도 백씨는 멈추지 않았다. 그럴수록 더 용기를 냈고 사람이 많은 곳을 찾았다. 무작정 캠코더를 들고 나가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그런 자신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집에 돌아오면 편집을 거쳐 인터넷에 올렸다.
그러면서 겪은 재미있는 경험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내복 차림으로 지하철을 탄 어느날이었다. 승객들은 백씨를 보며 모두 ‘재수없다’는 시선을 보냈다. 으레 예상한 반응이었다.
잠시후 백씨는 내복 차림도 부족해 큰 소리로 웃는 기행을 마다하지 않았다. 미친 사람 취급받기에 딱 좋은 행동이었다. 그때였다. 지하철 승객들이 하나둘씩 웃음보를 터뜨렸고 지하철 분위기는 이내 화기애애하게 바뀌었다.
백씨는 “모두들 사회가 정해놓은 방식이 아니라 자신만의 삶을 살기를 원하지만 튀는 게 부담스럽고 그로 인해 돌아올 비판이 두려워 먼저 나서기를 꺼리는 것을 그때 느꼈다”고 말했다.
백씨는 현재 한국방송아카데미 개그코미디학과 1학년에 휴학 중이다. 지난해 2월 ‘늦깎이’로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하면 모두 바로 대학교에 진학해야 한다는 것도 ‘고정관념’”이라면서 “대학교에 진학하는 삶도 멋지지만 하고 싶은 일 맘껏 하며 사는 내 삶도 나름대로 값어치있다”고 만족해했다.
그러나 고민도 적지 않다. ‘저 놈들 뜰려고 별 짓을 다한다’는 등의 악성댓글을 접할 때면 다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백씨는 “매일 접하는 한국 사회의 획일성 강요는 무섭다 못해 살벌하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쉰이 돼도 캠코더를 들고 나가 사람들과 어울려 동영상 찍는 일을 계속 하고 싶다는 백두현씨가 한국 사회를 향해 이런 한마디를 던졌다.
“대다수 사회구성원이 인정하는 삶이 꼭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같은 이유로 대다수 사회구성원이 외면하는 삶이라고 해서 ‘오답’이라고 볼 수도 없겠지요. 남과 다름, 즉 차이를 사회 구성원들이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받아들일 때 모두가 행복해지는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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