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연극 ‘나비 눈’ 만드는 문화예술위 직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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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6.12.29 09:06:29
  • 조회: 410
서울 대학로 한 극장의 연습실. 여느 연습실의 정겨운 풍경처럼 배우 10여명은 허공을 향해 대사를 외치며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고 있자니 뭔가 달랐다. 대사를 읽는 폼새가 어딘가 모르게 영 어색하다.
“맹인역, 무대에서 너무 빨리 지나가요. 천천히 가세요. 노숙녀역, 대사가 없을 때도 뭔가를 끊임없이 해야죠. 그래야 넋이 나간 표정이 제대로 살아나!”
급기야 조연출을 맡은 박혜선 연출가가 배우들의 부족한 점을 소리치며 지적했다. 마치 초등학교 학예회 연습과 같은 모습에 쿡쿡 쏟아지는 웃음과 함께 가벼운 호기심이 일어났다. 알고보니 전문 배우들이 아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직원들이 내년 1월4~6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 올릴 창작극 ‘나비눈’을 위해 난생 처음 배우로 분하고 있었다.
“예전부터 직원들끼리 농담처럼 직접 연극을 해보자는 이야기가 많았어요. 줄곧 말만 해오다가 실제 연출가가 사무처장으로 오시니 정말 실현이 됐어요.”(양효석 예술진흥실장)
아르코예술극장을 운영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과거에 정부 산하 기관이었던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그 전신이다. 지난해 민간지원 기구로 새롭게 탄생됐다. 문예진흥기금·복권기금 등 공공기금으로 주요 사업이 진행되는 만큼 기초예술을 꽃피우고 소외된 계층의 문화활동을 지원하는 것 등이 고유 업무로 자리잡고 있다.
연극 ‘나비눈’은 예술인들을 바라보는 직원들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기획됐다. 직원들이 예술활동을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면 향후 업무 진행에 큰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취지인 것. 실제로 이번 연극에 참여하는 한 직원은 “과거 연극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왜 돈도 안되는 것을 할까’ 하는 의문이 많았는데, 직접 해보니 돈으로는 따질 수 없는 매력을 발견했다”고 토로했다.
연극 연출가 출신의 심재찬 사무처장은 “과거 진흥원 시절에는 관 주도의 행정이 펼쳐졌다면 위원회는 더욱 본질적이고 자율적인 요소가 강하다”며 “설립 취지를 살리고 지원기관으로서의 서비스 정신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 이번 연극을 준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연출은 심재찬 사무처장이 직접 맡았고 극본은 전 아르코 웹진 편집장이자 시인인 신용목씨가 집필했다. 기획은 예술진흥실의 박성은씨, 홍보는 대회협력팀 김성량씨, 조명 및 음향은 아르코예술극장 무대기술팀 등 직원 내부의 역량을 최대한 활용했다. 출연배우 14명은 심처장이 직원들의 끼를 눈여겨 보고 있다가 캐스팅했다.
미혼임에도 50대 전라도 아줌마 역을 걸쭉하게 소화하고 있는 예술진흥실의 정해영씨(30)는 “사투리를 잘 몰라서 전라도 출신인 다른 직원의 말투를 녹음해 듣고 있다”며 작품에 강한 열정을 보였다. 경찰 역의 차주일씨(46·예술진흥실)는 본인이 직접 연극 참여에 자원했다. 틈틈이 시와 희곡을 쓰며 문단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는 그는 “향후 작가로서 미래에 올릴 내 작품을 위해 직접 배우 체험을 해보고 싶었다”며 “대학교 2학년생인 딸도 내 연기를 보러 올 것”이라고 말했다.
시각장애인 역의 윤혜성씨(25·혁신성과팀)는 첫 출근 전날 참석한 회식 자리에서 심처장에 의해 전격 캐스팅된 경우다. 윤씨는 “할수록 연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며 “대학에서 전공한 해금을 연극 음악에 활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노숙자들의 상처받은 삶을 내용으로 하는 이 연극은 여느 작품과 다르게 배역에 ‘이름’이 없다. 그냥 여자, 남자, 아줌마, 노숙자 1·2·3 등으로 역할 구분이 돼 있을 뿐이다. 2년 전 우연히 노숙자의 삶을 취재한 뒤 이 작품을 쓴 작가 신씨는 “이름 없는 노숙자들을 통해 그들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극중 노숙녀는 “내 이름은 김수진”이라고 외치지만 아무도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이름도 없고, 인간적인 대우도 받지 못하는 노숙자들이지만 그들의 세상에도 사랑은 존재하고 아픔이 있다. 다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노숙자 취재를 할 때 눈이 내리는 모습이 ‘나비’와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지하도에서 질병 등으로 하나 둘씩 사라져가는 노숙자들이 눈이 돼 돌아올 것 같았죠. 땅에 내린 눈이 녹는 것처럼 노숙자도 사라지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부재하는 건 아닙니다.”(작가 신씨)
이처럼 연극 ‘나비눈’은 예술인들에 대한 이해를 넘어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바라는 마음에서 준비되고 있었다. 관람료는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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