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행복을 주고받는 선물이 보물[이해인 수녀가 말하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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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6.12.21 09:04:43
  • 조회: 304
나는 12월을 ‘오직 감사만으로 선물의 집을 짓는 달’이라고 이름지어 보았습니다. 12월이 되니 나에게도 여기저기서 감사를 표현하는 선물들이 오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연재해 주신 ‘흰구름 편지’ 고마웠습니다. 보내드리는 것은 멕시코에서 수녀님 생각나 산 것입니다” 하는 메모와 함께 나를 평소에 잘 챙겨주는 출판사 사장님이 보내온 헝겊 주머니, 반짝이 사인펜, 다양한 모양의 스티커들을 보다가 ‘수녀님 생각 나…’하는 구절에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나는 즉시 이 겨울 담 안에서 춥게 지내며 나의 소식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보내려고 몇 개의 고운 스티커는 따로 분류하여 둡니다. 얼마 전 어느 교도소에 가서 특강을 하고 나올 때 어느 수용자가 흰종이에 겹겹이 싸서 건네준 목각으로 만든 새, 울산의 어느 초등학교에 가서 교과서수업을 했을 때 5학년 어린이들이 일일이 장식을 하여 적어 준 편지 모음, 시골에 사는 어느 독자가 손수 농사 지은 것이라며 보내준 찹쌀과 콩, 해외의 독자가 우리 어머니께 전하라며 보내온 고사리, 친지들이 보내온 편지지와 덧버선 등등… 나의 책상에는 송구할 정도로 정성이 깃든 선물들이 가득합니다. 때로는 선물로 받는 물건 자체보다도 선물을 주는 이의 마음과 어떤 표현들이 더 감동을 줄 때가 있습니다.
신분이 수도자여서 그런지 살아갈수록 자신을 위한 선물보다는 이웃에게 주는 선물이 더 필요하고 받는 마음보다 주는 마음이 훨씬 더 자유롭고 행복한 것을 느낍니다. 물론 선물 받는 것도 좋은 일이긴 하지만 때로는 갚아야 할 ‘사랑의 빚’으로 생각되고, 더러는 오해의 여지를 남기기도 하기에 온전히 자유롭진 못한 것 같습니다. 사랑의 선물도 늘상 새롭게 감탄하며 겸손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면 상대를 곧잘 실망시키곤 하지요.
그래서 선물을 받는데도 주는데도 깨어있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오늘은 그동안 내 나름대로 연구해서 실습하는 ‘선물주기 방법’을 몇 가지 소개하고 싶습니다.
1. 먼저 내가 선물 줄 사람을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여 진정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할 것 같은지, 기도 속에 찬찬히 묵상을 해 봅니다.
2. 마땅한 항목이 떠오르면 내 분수에 맞게 이미 갖고 있는 것 중에서 고르기로 하고 새로 사야 하거나 값이 나가는 것은 공동체에 겸손하게 청해서 해결합니다.
3. 선물포장을 되도록 소박하게 하되 물건만 넣지 않고 반드시 마음의 글을 카드나 메모지에 적어 넣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마땅한 표현을 찾지 못할 적엔 좋은 시나 성구를 찾아서 해결합니다.
4. 선물을 줄 때는 너무 호들갑스럽게 생색을 내지 않고 고요하고 겸손한 태도로 전하도록 합니다.
5. 사소한 것일지라도 나의 선물이 부담이 아닌 보물이 되도록, 마음의 지향을 더 맑고 순수하게 갖도록 노력합니다.
6. 꼭 선물을 하고싶은데 마땅한 물건이 곁에 없을 적엔 상대방의 장점을 있는 대로 열거하여 예쁜 종이에 적어 ‘자신을 사랑하는 일’에 도움이 되게 합니다.
7. 아주 가까운 친지에게는 내가 고쳐야 할 결점이나 좋지 못한 생활습성을 어떻게 고치기로 했다는 구체적인 결심을 적어 ‘마음의 선물’로 건네 주기도 합니다.
8.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 자체로 선물이 되게 하기 위해선 믿고 신뢰하는 가운데 시간, 재능, 노력을 함께 나누는 것임을 자주 묵상하며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이야’ 하는 표현을 자주 해 봅니다.
9. 날마다 눈을 뜨면 ‘오늘 또 하루 새로운 시간께서 선물로 오셨군요. 감사합니다!’ 하고 외워봅니다.
10. 늘 당연하게 곁에 있다고 생각했던 주변 사람들-일상의 시간들, 공기, 바람, 바다, 좋은 책들-을 퍽도 새로운 경탄의 감각으로 받아들이며 ‘모든 게 다 선물입니다!’ 하고 노래의 후렴처럼 자주 외우다 보면 이미 주어진 선물 자체로 나 자신이 큰 부자가 된 것 같은 행복을 맛봅니다.
우리가 민감하게 깨어있지 못하고 대충, 건성, 무심히 살기에 놓쳐버리기 쉬운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날마다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일상의 밭에 숨어있는 보물을 찾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창의적으로 만들어 가는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극히 평범하고 사소한 것에서도 “나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놀라운 선물의 발견에 충실해야겠습니다. 우리의 삶이 충실하면 할수록 가족 친지 이웃에게도 무상으로 건네주는 좋은 선물이 될 것입니다.
선물은 기쁨, 사랑, 나눔, 감사, 축제, 기다림, 설렘, 그리움 그리고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12월에는 더욱 바쁘게 그러나 조용히 움직이는 ‘선물의 집’이 되어야지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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