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아름다운 기도 '선물'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6.12.18 09:21:01
  • 조회: 266
선물의 집
사랑할 때 우리 마음은
바닥이 나지 않는 선물의 집
무엇을 줄까
어렵게 궁리하지 않아도
서로를 기쁘게 할 묘안이
끝없이 떠오르네

다른 이의 눈엔 더러
어리석게 보여도 개의치 않고
언어로, 사물로 사랑을 표현한다
마침내는 존재 자체로
선물이 되네, 서로에게

사랑할 때 우리 마음은
괴로움도 달콤한 선물의 집
이 집을 잘 지키라고
하느님은 우리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 준 것이겠지?

시인이기도 한 이해인 수녀님이 보내주신 시 한 편으로 시작합니다. 수녀님은 사랑하는 우리의 마음을 ‘바닥이 나지 않는 선물의 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뒤집어 얘기하자면, 선물하는 마음은 곧 ‘사랑’이라는 얘깁니다.
선물은 사물이 아니라 영혼입니다. 마르셀 모스는 ‘증여론’에서 마오리 원주민들의 믿음을 소개합니다. 그들은 귀중품이 어떤 사람의 손에서 다른 사람에게 이동하면 그와 함께 ‘하우’라는 영력(靈力)도 활동을 개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귀중품을 받은 사람이 그것을 다른 이에게 선물하지 않으면 ‘하우’는 활동을 멈추고, ‘하우’가 멈추면 숲의 생명들도 힘을 잃는다는 것입니다.
현대의 도시인들은 물론 ‘하우’를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물을 주고받는 순간의 기분이 아파트 관리비를 납부할 때의 기분과 다른 것만은 확실히 압니다. 선물을 주는 손이 살짝 스치는 그 순간, 둘 사이에는 미묘한 애정, 우애, 신뢰의 전류가 흐릅니다.
선물은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선물을 주고받을 때 같은 값어치로 교환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날로 드세지는 자본주의 사회가 ‘등가교환’이라는 원리에 의해 움직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물은 오차 없이 완벽해 보이는 자본주의적 삶의 양식을 허무는 작은 실천입니다.
물론 돌아오는 것 없는 선물을 하기에 이 세상은 삭막합니다. ‘모든 선물은 뇌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선물이든 결국 자신의 아량을 받는 이에게 알리거나, 향후 관계를 돈독히 하는 ‘목적’을 가졌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정신분석학자들의 가시돋친 지적은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잠시, 선물을 받았을 때의 기분을 돌이켜봅시다. “저 사람이 내게 왜 이 선물을 줬을까?”라고 의심하기 전에, 그 선물과 함께 이동하는 ‘하우’의 움직임을 살펴봅시다. 산타클로스를 자처하는 누군가가 머리맡에 선물을 두고 갔을 때 밝게 웃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봅시다. 산타클로스는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어린이에게 선물했을까요.
“선물로는 돈이나 상품권이 최고”라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대세를 거스르고 ‘쓸모없는 것’을 선물해 봅시다. 생활 속에서의 쓸모를 고려하는 대신, 내가 그 사람에 대해 가진 마음을 돌이켜봅시다. 아름다운 생각을 하면 아름다운 선물, 아니면 그 반대의 선물이 생각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물을 한다는 건 그 사람과 나의 관계를 새로이 설정한다는 뜻입니다.
수십만원짜리 양주, 1백만원짜리 백화점 상품권이 아니라 풀로 엮은 반지, 마음을 담은 쪽지 하나가 좋은 선물입니다. 양주와 상품권은 ‘사물’이지만, 풀반지와 쪽지는 영혼이고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아직까지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영역에 있습니다. 형태를 띠고 있지만 사물이 아니고, 가격이 있지만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선물을 해봅시다.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글수정
  • 글삭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