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한해를 보내는 준비… [달력 한장으로 남은 병술년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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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6.12.11 09: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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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 아름다운 꽃을 많이도 피운 나무가 있다. / 해마다 가지가 휠 만큼 탐스런 열매를 맺은 나무도 있고 / 평생 번들거리는 잎새들로 몸단장만 한 나무도 있다. / 가시로 서슬을 세워 끝내 아무한테도 곁을 주지 않은 / 나무도 있지만, 모두들 산비알에 똑같이 서서 / 햇살과 바람에 하얗게 바래가고 있다. // 지나간 모든 날들을 스스로 장밋빛 노을로 덧칠하면서 / 제각기 무슨 흔적을 남기려고 안간힘을 다하면서.’-신경림의 ‘흔적’
사랑하는 이여. 올 한해도 한 장의 달력으로 남았습니다. 매양 그랬듯이 다이어리엔 매일같이 동창회와 송년회 스케줄로 빡빡합니다. 때로는 겹쳐지는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내달려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한편으로는 오래 만나지 못했던 동창생들의 얼굴도 그리워집니다. 그러나 올 연말도 또 분주하게 보내야 할까, 회의도 듭니다.
그럴테지요. 동창회에 나가면 김광규의 시처럼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다시 만나겠지요. 그리고는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은 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하면서 ‘또 한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기는 것으로 끝맺겠지요.
사실, 매년 그런 풍경으로 연말을 보냈습니다. 그러는 동안 내 사랑하는 가족들은 성탄절 이브도 잊은 채 밤늦도록 들어오지 않는 가장을 기다리다가 지쳐 잠들었을 겁니다.
소주잔을 부딪히며 2차와 3차로 이어지는 송년회가 있는 한 이땅엔 아빠를 기다리는 딸과, 누이를 기다리는 동생, 엄마를 기다리다 할머니 등에 업혀 잠든 아이들로 넘쳐날 겁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은사님이나 가까운 친지에게 흔한 크리스마스 카드 한 장 못보냈습니다. 문자메시지나 e메일을 보내면서 습관처럼 한 해를 보내곤 했지요. 연말연시에 밀려드는 문자메시지가 정체되어 신년 새벽에야 밤새 삑삑거리는 휴대폰을 꺼버린 기억도 있는데도 말이죠. 올해엔 작은 케이크를 사들고 일찍 집에 들어가 가족과 둘러앉아 올 한 해를 반성하고, 새해를 계획하는 가장이 되고 싶습니다. 예쁜 시 한편을 담은 엽서를 써서 고마웠던 분들에게 보내고 싶습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오늘, 이땅은 분명 ‘우울모드’입니다. 치솟는 집값과 살인적인 구직난, 텔레비전 광고엔 행복한 사람들로 넘쳐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나보다 나은 사람을 부러워하기보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보듬고 사는 게 행복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왜 몰랐을까요. 하나를 비우면 또 하나의 행복이 그 자리를 채워준다는 말, 그냥 흘려보내고 마음 가득 욕망만을 채워온 게지요.
사랑하는 이여. 좀 색다르게 한 해를 마감해보면 어떨까요?. 사진첩을 정리하면서 한 해를 추억해도 좋겠지요. 혼자서 겨울바다로 짧은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을 겁니다. 사랑하는 연인이나 가족이 옆에 있다면 더욱 좋겠지요. 연극 ‘염쟁이 유씨’를 보면서 죽음의 의미를 생각해봐도 좋고, 동창생들과 ‘조용필 콘서트’에 가서 저 1980년대를 추억해보는 건 어떨까요. 한해동안 고마웠던 분들과 더불어 포트럭 파티를 여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흔적을 남깁니다. 올 한해 어떤 흔적을 남기셨는지요. 누군가는 진흙탕 속에 수레바퀴 자국을 남겼고, 또 누군가는 붉은 양탄자 위에 구두 발자국을 남겼겠지요. 분명한 것은 이땅에 태어났다면 ‘아름다운 흔적’을 남겨야 한다는 거지요.
달력 한 장으로 남은 병술년의 끝, 다시는 오지 않을 그 시간 위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입니다. 자, 이왕이면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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