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욕망을 버렸다, 시골은 즐겁다[8년전 귀농 소설가 · 교사 이시백씨]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6.12.07 09:19:30
  • 조회: 362
‘아침나절 텃밭에 나가 상추를 심다가, 배가 고프면 코앞에 흐르는 개울바닥에서 가재를 잡아 국수에 끓여 먹고, 달밝은 밤이면 머루로 담근 술에 얼큰히 취하여 마당에 내려앉은 산벗꽃잎을 바라본다는 김대리의 이야기에 빠져 넋을 놓고 듣던 이들은, 기필코 모두 짐을 싸서 산으로 오르자고 다짐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시백 자유 단편집 ‘890만번의 주사위 던지기’(삶이 보이는 창)중에서
사표를 던지고 시골로 간 김대리를 따라 귀향하자고 의기투합한 소설속 동료들은 결국 “인생이라는 게 뜻대로 되지 않더라구”라면서 사직서 대신 야근신청서에 싸인을 한다. 그 동료들은 구조조정의 칼날 아래서 불안한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도시인들의 자화상일는지 모른다.
최근 소설집을 낸 소설가 이시백씨(51·본명 이형덕)는 경기 남양주시 수동의 산골마을에서 8년째 살고 있다. 낮에는 남양주공고 국어교사로 일하면서 시골생활을 하고 있는 반귀농인.
그러나 ‘귀농업계’에서 그의 지명도는 매우 높다. 온라인 동호회인 ‘시골로 가는 마지막 기차’의 시샵이며, 지난해 시골생활의 즐거움을 담아 내놓은 책 ‘시골은 즐겁다’는 시골생활을 꿈꾸는 이들의 유익한 지침서다.
경기도 마석에서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30분쯤 들어가서 만난 그의 집은 잘 지은 팬션도, 황토흙으로 지은 자연친화적인 집도 아니었다. 외진 산골짜기 산그림자 아래 동그마니 자리잡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평범한 집.
“남양주 아파트에 살다가 가족들을 설득해서 이곳으로 들어왔죠. 아무 것도 안 할 수는 없을까, 덜 먹고 좀 뒤처지더라도 달빛 즐기며 느림보처럼 살 수는 없을까, 굶어 죽지 않을 만큼만 일하고 그것으로 즐거워 할 수 있는 마음만 가지고 살 수 없을까, 그런 생각에서 덜컥 시골로 들어왔어요.”
처음 7백만원짜리 농가주택에서 시골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개와 닭을 키우면서 수시로 수달과 멧돼지, 토끼와 고슴도치와도 만난다. 텃밭에 지어놓은 원두막에 앉아 책도 읽고, 배추를 키워 김장도 담글 수 있게 됐다. 마당에는 풍산개인 ‘백두’가 낳은 새끼들이 올망졸망 기어다니고, 토종닭이 낳은 달걀이 현관에 소담스럽게 담겨있다.
“유년과 청년시절을 서울에서 자랐어요. 그러나 마음 저편에 텃밭에서 가꾼 온갖 푸성귀로 저녁상을 차리고, 모깃불 피운 마당에서 가족들과 별을 보고 싶은 꿈이 있었죠. 그러나 시골생활은 도회지에서 가졌던 욕망들을 버리지 못하면 피곤하고 힘든 나날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처음 자녀교육 때문에 반대하던 아내도, 시골학교로 전학가기 싫다던 아들도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이곳에서 보낸 아들은 애니메이션고교를 거쳐 올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수시전형에 합격해 놓은 상태다. 이씨는 영화감독을 꿈꾸는 아들에게 시골생활은 충분한 자양분이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쓴 ‘시골은 즐겁다’에는 텃밭 일구는 법, 이웃과 원만하게 교류하기, 문제없이 시골땅 구입하기 등 초짜 귀농인들이 필요한 정보로 가득하다. 모든 것이 직접 체험하고 겪으면서 터득한 산지식이라는 점에서 귀감이 될만하다. 그의 소설도 풍요로 넘쳐흐른다. 마치 과거 이문구의 걸죽한 입담을 보는 듯한 장편(掌篇)들이 읽는 이를 즐겁게 한다.
나훈아 노래가 좋아서 무료공연을 했다가 풍기문란죄로 삼청교육대에 끌려가고, 부실한 보건소 정관수술 때문에 평생 고개숙인 남자가 되거나, “햇볕정책유? 어디 그 쪽에는 해가 안 뜬대유”라고 말하는 촌로(村老)에 이르기까지. 소설속 주인공들은 시골생활이 아니었다면 만날 수 없는 우리네 장삼이사들이다.
“얼마전 저와 함께 사시던 장인어른이 갑작스레 돌아가셨어요. 올해 김장은 얼마나 할건지도 물으시고, 겨우살이를 위해 이것저것 준비도 하셨는데…. 그래서 요즘 전 ‘다음에 보자’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생각날 때 만나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곧바로 실행에 옮기죠.”
우리는 얼마나 ‘다음에…’를 남발하면서 살고 있는가. 유난히도 빨리 해가 지는 수동마을을 빠져 나오면서 당분간 도회지를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다음에…’라는 말은 하지 않고 살기로 했다.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글수정
  • 글삭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