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뜰정보] 우리시대 달콤한 껍데기 ‘허영’을 들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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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6.12.01 09:13:26
  • 조회: 289
대체 ‘뉴요커의 휴일’이 무엇이기에, 온갖 광고와 드라마는 한국인에게 뉴요커의 삶을 동경하라고 부추길까.
도회적이고 늘씬한 모델이 등장하는 김치냉장고 CF의 한 장면. 김치냉장고 안의 야채로 브런치를 만들어 친구들과 실컷 먹고 떠들면서 ‘뉴요커의 휴일이 따로 없다’는 카피가 나온다. 이제 김치냉장고의 용도는 김치 보관이 아니라 브런치 재료 보관이다.
부동산 광풍 한가운데서 대중의 욕망을 부채질하는 아파트 광고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한다’는 요지의 카피 아래, 미국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의 한 장면인지 광고인지 알 수 없는 CF가 나온다. 뉴욕 고급 아파트 분위기를 따라하는데 그치지 않고 아예 미국 동부 상류층 저택을 칭하는 말을 자신의 아파트 브랜드로 삼은 회사도 있다. 한국유학생들 중에는 미국 대학에서 장학금을 신청했다가 ‘캐슬’(성)과 ‘팰리스’(궁전) 등의 이름이 붙은 주소 때문에 거부당했다는 웃지 못할 일화도 있다.
한국의 CF와 드라마에 비쳐지는 것처럼 뉴욕은 멋지고 아름다운 도시일까. ‘섹스 앤드 더 시티’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낮이면 전문직에 종사하며 수억원의 연봉을 받고, 저녁이면 멋진 옷을 갈아입고 화려한 파티에 들락거리는 사람만 있을까. 결혼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연애를 즐길 만큼 ‘쿨’하고, 예술적 감수성과 지적 교양을 동시에 가진 ‘댄디’한 사람만 있을까.
휴직하고 1년 가까이 뉴욕에 살다 최근 귀국한 디자이너 이모씨(31). 그는 “뉴욕은 유행을 주도하는 도시이긴 하지만 오래된 도시이니만큼 서울보다 전체적으로는 더 지저분한 편”이라며 “드라마나 CF속의 깔끔하고 화려한 뉴욕 이미지는 명품가로 유명한 핍스 애비뉴(5th Avenue)에 한정된다”고 말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한 지역의 문물이 다른 지역에 가면 그 성질이 달라짐을 이르는 말이다. 뉴욕 이미지도 마찬가지다. 명품과 전문직 종사자뿐 아니라 싸구려 상품과 노숙자, 범죄자도 많은 도시 뉴욕은 한국에선 부와 유행의 상징으로 격상돼 유통된다.
19세기 프랑스 사실주의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을 떠올려보자. 무미건조한 시골 의사와 결혼한 엠마는 낭만적 소설 속에서 느꼈던 달콤한 연애와 화려한 시의 세계를 미치도록 그리워한다. 시골의 보바리 부인이 파리를 동경했듯이, 21세기 한국인들은 상상 속의 뉴욕을 동경하고 있다. 상상 속의 자신을 꿈꾸며 현실의 자신을 대체하는 ‘보바리즘’이다.
뉴욕뿐 아니다. ‘브랙퍼스트’와 ‘런치’를 합한 ‘브런치’, 우리나라에서 ‘아점’(아침 겸 점심)을 뜻하는 이 식사는 한국에서 멋진 의상을 차려입고 강남이나 이태원에서 먹어야 하는 고급 음식이 돼버렸다.
원산지에서도 흔치 않은 21년산 위스키가 한국인의 폭탄주를 위해 소비되고, 미국에선 할아버지부터 젊은이들까지 편한 옷차림으로 즐기는 골프는 한국에선 정관계 실력자들의 사교 수단이 됐다.
일단 실제와 이미지가 괴리되자, 이미지는 스스로를 부풀리기 시작했다. 왕성한 식욕의 자본주의는 거대해진 이미지를 이용해 있지도 않았던 실제를 확대재생산해 팔아치우고 있다.
19세기말 자본주의가 움트던 미국 사회를 냉소적으로 관찰한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은 가격이 비싼 물건이라도 일부 계층의 허영심, 과시욕으로 인해 수요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베블런 효과’를 지적했다. 그의 지적처럼 이제 시장의 가격은 고전적인 수요, 공급 곡선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이 명백하다.
좋은 사람이 가진 물건을 가지면 나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이런 소비심리를 추동한다. 비싼 브런치를 먹으면 뉴요커처럼 휴일을 즐길 수 있고, 비싼 아파트에 살면 비싼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사회를 규정하는 한 키워드로 ‘허영’을 꼽아보면 어떨까. 실제와 괴리된 호사스러운 이미지에 취해 자신의 설 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 연못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움에 홀려 자리를 뜨지 못한 채 죽어버린 나르시스가 허영의 상징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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