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김치는 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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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6.11.17 09:04:56
  • 조회: 294
김치맛은 참 오묘합니다. 매콤한 기운이 혀끝을 아리게 하는가 하면, 아삭아삭 개운하기도 하지요. 한겨울 살얼음이 얇게 깔린 동치미 국물은 톡 쏘는 사이다와 견주기가 아깝고, 갓지은 맨밥에 올린 오이소박이는 다른 반찬들을 물리치게 만듭니다. 말은 짧고 맛은 깊어 그 어떤 말로도 김치의 참맛을 담아내기에 부족하게만 들리지요. 그저 맛있다, 맛좋다만 되뇌게 만듭니다.
때로는 쓰고, 때로는 짜며, 때로는 울컥하게 매운 그 맛이 꼭 사람 사는 맛 같기도 합니다. 같은 밭에서 난 배추, 같은 젓갈로 담근 김치라도 같은 맛은 하나도 없습니다. 계량컵으로 양념을 똑같이 맞추고 김치 명인들이 비법을 전수해도 손맛, 마음맛에 따라 김치맛은 달라집니다. 사람 사는 모양이 다 그런 것 같습니다. 한 부모에서 나와 같은 하늘 아래 살아도 똑같은 인생은 없습니다.
사는 모양이 다르듯 계절따라 재료따라 사람따라 다른 것이 김치맛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각 고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가장 튼실한 재료들에 따라 수십, 수백가지들의 김치가 있습니다. 돌산갓김치, 통얼갈이김치, 죽염김치, 석류김치, 달래김치, 머루 나박김치…. 흔하디 흔한 채소들로 만든다지만 건강에 더없이 좋은 식품이라는 것이 고맙고 신기합니다.
김치는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 꼽힙니다. 김치가 숙성하면서 만들어지는 젖산균은 맛을 더할 뿐 아니라 항균작용까지 한다지요. 소화를 돕는 것은 물론 노화를 억제하고 항암효과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소 13가지 이상의 재료가 들어가는 김치는 가장 조화로운 식품이라는 평도 듣습니다.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재료가 없습니다. 갖가지 재료들이 서로 잘 섞이지 않으면 원하는 맛이 나올 수 없습니다. 네가 있어야 나도 맛을 낼 수 있으니 김치 재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고마운 존재들입니다. 재료만 서로에게 어울리는 것이 아닙니다. 김치는 갖가지 음식과 궁합을 척척 맞출 줄 아는, 넉넉한 심성을 지녔습니다. 최근에는 김치의 묘미를 깨달은 서양 사람들도 김치를 응용해 먹고 있습니다. 와인을 마시며 즐기는 김치, 치즈를 돌돌 말아 먹는 김치…. 묘한 조합이지만 독특한 맛과 맛이 꽤 어울립니다.
미워하는 마음마저도 미운 정(情)이라고 표현하는 우리네 깊은 마음을 외국인들에게 설명하기 힘든 것처럼, 깊고 오묘한 김치맛을 어떻게 알릴까 싶었는데 따로 비법이 있을 리 없습니다. 김치맛은 먹어보고 느껴본 이들만이 알 수 있지요. 청주과학대 식품과학과 황종현 교수는 “일본에서는 신맛이 나면 부패한 것으로 생각해 신김치를 싫어하지만, 대만에서는 신김치로 김치찌개를 끓여 먹을 줄 알고, 미국에서는 김치의 신맛을 새콤달콤한 것으로 알고 즐긴다”고 했습니다. 세계인의 입맛에 따라 다양한 변신을 할 수 있는 것도 김치의 매력입니다.
김치의 가치는 이제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지만 국내의 관심은 오히려 줄어드는 게 사실입니다. 일곱살 때부터 어머니 곁에서 김치를 담갔다는 김치요리 연구가 이하연씨는 “김치냉장고는 갈수록 화려해지는데 그 안에 담긴 김치는 갈수록 초라해진다”며 우리의 김치 푸대접을 아쉬워 했습니다. 중국 김치, 일본 김치가 들어와 섞여도 맛 구분을 못하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김치 담그는 일을 피곤하고 어려운 일로 여기는 이들도 많지요. 이러다 몇년 후엔 김장 담그는 풍경이 사라지는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탁닛한 스님은 “화가 모든 마음의 병이라 하여 화가 든 재료를 먹으면 먹은 이도 마음의 화를 입는다”고 했습니다. 곱고 정갈한 마음을 담기 위해 김장 전에는 시어머니도 며느리를 다독였다는 옛 어머니들의 정성도 이와 닿아 있겠지요. 음식은 먹는 이나 만드는 이나 아끼는 마음이 반이라 했습니다. 한번도 밥상의 주인 노릇을 한 적 없지만, 수백년 동안 우리네 밥상을 든든하게 지켜온 김치. 이제 우리가 주인대접 좀 해주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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