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한국인보다 한옥을 더 사랑하는 필립 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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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6.11.14 08:5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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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가회동 북촌마을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다. 고층 빌딩과 주상복합 건물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서울 4대문의 한복판이지만 구불구불한 골목으로 한발짝 발걸음을 옮기면 즐비하게 서있는 전통 한옥의 모습에 시선이 저절로 멈춘다. 이제는 한국 사람들조차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한옥을 신기하게 바라본다.
서울의 역사와 정취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곳에서 한옥 생활에 푹 빠진 한 외국인을 만났다. 헤드헌팅 회사인 콘페리 인터내셔널의 부사장 필립 티로(47)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한국 사람들조차 한옥을 외면하는 요즘 그는 왜 한옥을 선택했을까.
“전통 가옥은 곧 그 나라의 문화입니다. 한옥을 사랑하고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는 것, 그것은 외국인으로서 제가 한국을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프랑스인 티로가 29평짜리 이곳 한옥으로 이사 온 것은 지난 6월이었다. 알고보니 그는 인근에 한옥 한 채를 더 가지고 있었다. 평소 한옥과 한국 미술품, 고가구 등에 관심이 많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매물로 나와 있는 가회동의 한옥을 매입했다. 그 한옥을 수리해 2년가량 살았다. 지금의 집은 1년 전 구입해 보수공사를 한 뒤 입주했다. 두 집 모두 29평형으로 크기가 같고 집구조도 ㄱ자형으로 똑같단다. 첫번째 한옥은 친구·친지들이 놀러오면 빌려주는 게스트하우스로 이용하고 있다.
“북촌마을로 오기 전 성북동의 180평짜리 양옥집에 살았습니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와 친구들을 초대했을 때 농담처럼 제게 ‘망했냐’고 묻더군요(웃음). 그런데 저는 한옥이 고즈넉하고 조용해 너무 좋습니다. 덕분에 마음까지 편안해졌죠. 집이 아담하니까 관리도 편합니다.”
언뜻 보기에 그의 집은 여느 한옥과는 많이 달랐다. 겉모양과 틀은 전통 한옥을 유지했지만 실내 공간은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그만의 맞춤형으로 만들었다. 거실에는 햇빛이 가득 들어오도록 통으로 창을 냈고 전통 한지를 붙인 문과 창문에는 방음·방풍 등을 위해 모두 유리를 덧댔다.
입식 부엌이 있는 식당, 자쿠지 욕조를 설치한 욕실, 천장의 서까래가 훤히 보이는 침실 등 동서양의 조화가 절묘하게 이뤄진 내부였다. 옷장·부엌·TV장·선반 등 웬만한 가구들은 붙박이로 짜넣고 그 위에 창호지 문을 달아 깔끔함을 더했다. 특히 그가 한국 생활 내내 모은 고가구와 한국 미술품은 한옥의 멋을 배가시켰다.
“한국 사람들은 한옥에 대한 추억이 좋지 않더군요. 한옥하면 ‘추운 겨울, 모기 많은 여름, 무서운 할아버지, 냄새나는 화장실’ 등 가난하고 배고팠던 시절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오래된 집은 그 나라의 정체성이죠. 불편한 한옥도 조금만 개조하면 현대식 생활을 즐길 수 있어요.”
티로는 아파트만을 찾는 한국인들이 안타깝다. 요즘에서야 한옥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그것으로는 안된다. 그에 따르면 한옥을 살리는 길은 직접 한옥에서 사는 것이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이웃간의 정이 살아나는 한옥 문화를 재탄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틈만 나면 수백년 전통을 이어온 구옥을 밀어버리고 뉴타운을 건설하는 우리의 못된 ‘싹쓸이 문화’가 부끄러워졌다.
“북촌마을에 부자들이 많다보니 간혹 이곳 한옥을 비워놓고 그냥 별장처럼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한옥생활을 여전히 기피해요.”
티로가 한국에 온 지는 올해로 22년째다. 처음 한국에 온 건 군복무 때문이었다. 당시 프랑스 남성들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의무적으로 군대를 가야 했다. 그는 현역으로 군복무하는 것 대신 16개월간의 해외지사 근무를 택했다. 우리 식으로 치면 일종의 방위산업체 근무와 비슷한 제도였다. 군복무를 마친 후 다시 한국으로 건너와 1987년부터 헤드헌팅 사무실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한국은 변화의 흐름 속에 있었고 기회가 많은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왔어요. 부지런하고 항상 긴장감 도는 한국이 개인적으로 저 자신을 발전시키는 데도 큰 도움이 됐죠.”
다시 한옥 이야기로 돌아갔다. 서울의 비싼 땅에서 한옥을 두 채나 갖고 있는데 매입 비용은 얼마였을까, 공사비가 많지는 않았을까 궁금해졌다. 그는 “한옥 두 채를 합하더라도 강남의 30평대 아파트 한 채 가격보다 싸다”고 명쾌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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