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사물놀이에 빠진 독일인 나리·리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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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6.10.13 09:26:44
  • 조회: 287
벽안의 두 소녀가 장구와 꽹과리를 두들긴다. 장구를 잡는 폼이나 리듬에 맞춰 어깨를 절로 움직이는 폼새가 꽤 진지하다. 이들은 사물놀이라면 눈을 번쩍 뜬다. 고향인 독일에서도 매주 사물놀이 친구들과 함께 장구와 꽹과리, 북, 징 등을 두들겨야 속이 풀린다. 사물놀이에 빠져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마다 몸 속에 숨어있는 한국인의 피와 열정을 새삼 느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다. 우연히 접한 사물놀이. 어릴 적 엄마가 한국 문화를 배워야 한다며 억지로 장구채를 고사리만한 손에 쥐어줬을 때는 장구채를 내동댕이쳤다. 훗날 사물놀이의 신명나는 율동과 리듬을 온몸으로 느꼈을 때 망설임은 끝났다..

◇동쪽 소녀, 서쪽의 소녀를 만나다
셰플링 나리와 베렌트 리리안은 19살 동갑내기다. 나리는 동독의 베를린이 고향이고 리리안은 서독의 프랑크푸르트 출신이다. 결코 만날 수 없었던 나리와 리리안, 이 둘을 운명처럼 연결시켜 준 것은 사물놀이였다.
“2001년 여름 베를린에서 거리축제가 열렸어요. 당시 한국을 포함해 러시아·중국·일본·브라질 등에서 온 예술가들이 민속공연을 선보였었죠. 그 때 한국의 사물놀이를 보러 갔다가 리리안을 만났어요. 리리안도 당시 저처럼 사물놀이팀을 구성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었거든요.”(나리)
“12살 때 우연히 오빠와 오빠 친구들이 사물놀이팀을 결성해 연습하는 걸 보고 반했어요. 매주 오빠의 연습장을 따라가 넋을 잃고 구경했죠. 그리고 14, 15살 즈음 아예 여자친구 한 명과 함께 그 팀에 들어가 단원이 됐고 본격적으로 사물놀이를 시작했어요.”(리리안)
이후 두 소녀는 연락을 주고받았다. 독일에서 열리는 사물놀이 워크숍에 함께 신청해 참가하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어머니의 나라’ 한국을 찾았다.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지난 25일부터 학기가 시작된 연세대 한국어어학당에 다니게 된 것이다.
“신기했어요. 한국에 온 후 독일에 있는 친구로부터 리리안도 여기서 공부하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너무 기뻤죠. 독일에서 사물놀이하는 친구들까지 서울로 불러서 급작스레 ‘팀 가이스트’라는 프로젝트 팀을 결성했죠. 총 10명인데 그 중 저는 장구를 치고, 리리안은 장구와 북을 잡아요.”(나리)
나리는 한국에서 열리는 사물놀이대회 출전이 처음은 아니다. 2003년에도 같은 대회에 참가해 외국인 부문의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12살 때부터 어머니는 제가 알아서 제 인생을 살도록 키우셨어요. 사물놀이도,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서울에 온 것도 다 제 뜻이에요.”(리리안)

◇독일인 아버지, 한국인 어머니
나리와 리리안은 공통점이 많다. 실은 출생 환경부터 비슷하다. 두 소녀의 한국인 어머니들은 모두 간호사로 1980년대 독일에 왔다. 나리의 어머니는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바로 베를린의 한 병원에 취직을 했다. 그곳에서 사귄 독일인 친구의 소개로 나리의 아버지를 만났다. 리리안의 어머니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안착한 경우다. 독일인과 결혼한 한국 친구의 결혼식장에 갔다 리리안의 아버지를 알게 됐고 결혼했다. 백인의 외모에 더 가까운 이들은 다행스럽게도 이 땅의 혼혈인들이 겪기 쉬운 정체성의 혼란을 크게 느끼지는 않았다고 한다. “어릴 적에는 제 외모가 지금보다는 매우 동양인스러웠다. 하지만 그걸 가지고 학교 친구들이나 이웃들이 놀리지도 않았고 저도 크게 신경쓴 적은 없다”고 말하는 나리와 “제가 남들과 다르다는 걸 안다. 그게 바로 제가 한국에 온 이유”라고 밝히는 리리안. 질문 자체가 우문이었다.
“혼혈인이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싶었고, 한국 문화와 사회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양국의 전통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8살때부터 매주 금요일 한글학교에 다녔어요. 이 때부터 한국의 무용과 사물놀이와 같은 것들을 알게 됐어요.”(나리)
두 소녀에게 한국어와 사물놀이는 어머니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자 세상을 배우는 창인 셈이다. 때문에 나리는 기회가 될 때마다 한국을 방문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본다. 2001년과 2003년 여름방학 기간에도 김덕수 선생님의 부여 사물놀이 학교를 다녀갔다. 리리안은 2살 즈음 가족들과 함께 한국에 온 기억이 있다. 6개월 정도 머물렀던 당시 기억나는 건 자신을 귀엽다고 연신 쓰다듬은 아줌마들뿐이다. 그는 “한국 어른들이 꼬마애가 예쁘다고 막 만지는데 그게 너무 싫었던 게 지금도 선하다”며 웃어댔다. 리리안 역시 한국어를 잊어버리면 안된다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어릴 적부터 매주 토요일 어머니가 원장으로 계시는 한글학교에 다녔다. 덕분에 두 소녀의 한국어 실력은 유창하지는 않더라도 일상 대화를 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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