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싱글맘’ 신현림과 딸 서윤이의 한옥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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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6.10.02 09: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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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사진작가인 신현림씨(45)의 한옥 마당에는 생수병과 사과봉지가 여기저기 놓여있었다. 생수는 지난달 열렸던 두번째 사진전 ‘작아지고 멀어지고 사라지는 것들’의 전시장에다 설치했던 설치작품, ‘시수(詩水)’의 흔적이고 사과는 내년 사진전을 위해 경북 봉화의 과수원에 촬영을 갔다가 새콤달콤한 맛에 반해 사온 홍월이다. 봉화에서 찍는 사진들의 주제는 사시사철 변하는 사과나무에서 딸 서윤이(5)와 함께 인생을 배운다는 것이다.
대문에서 볼 때 ㄱ자로 앉은 한옥은 책들을 보관한 문간방, 욕실, 다락방이 있는 침실이 나란히 있고, 아래로 꺾이면서 거실과 서재, 주방을 겸한 두칸짜리 긴 방이 있다. 초가을의 어스름이 내리고 거실에 틀어놓은 음악소리가 흘러나오자 실내보다 서너단 얕은 마당의 테이블에 촛불이 켜지고 집안은 색다른 분위기로 변했다.
그러나 그의 집은 예술만큼이나 일상이 지배하고 있었다. 서윤이와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쌍둥이친구 지현·지숙이 놀러오는 바람에 제대로 말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시끄러웠다. 신씨는 방송사의 추석특집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가 부산하게 들어온 길이었고 오후 7시면 문을 닫는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딸과 엄마가 외출한 딸친구들까지 맡아서 늦은 저녁을 먹기 전 요기할 식빵을 챙겨주랴, 크레파스를 갖다주랴, 아이들의 말다툼을 중재하랴 아주 바빴다.
“집 이야기요? 돈 없어도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 살 수 있는 게 가장 좋아요.”
서윤이를 낳기 전부터 수원의 한 아파트에 살았던 그는 정독도서관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기 위해 가회동·원서동 일대를 돌아다녔으나 너무 비싸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택시를 탔다가 기사가 옥인동·체부동 쪽을 보라고 했고, 때마침 아주 예쁜 한옥이 전세입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서울 종로구 체부동의 현재 집으로 이사온 건 지난 4월 중순이다.
지하철 경복궁역에서 자하문 터널로 올라가는 큰 길의 왼쪽 골목 속에 들어있는 그의 집은 시인 이상이 살았다는 낡은 한옥의 바로 앞집이다. 큰 길에서 그 골목으로 접어드는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20~30년을 훌쩍 뒤로 물러선 것 같다. 양품점 식료품점 수선집 미용실 꽃가게 등이 한집 건너 하나씩 골목에 들어서있고, 그 사이로 빼꼼하게 신씨의 집 대문이 얼굴을 내민다.
작가가 이 집에서 제일 아끼는 것은 지붕위 기와 사이로 삐쭉하게 피어난 풀들과 처마밑 제비집이다. 주인이 지난 봄에 어미와 새끼제비를 봤다는데 내년에도 찾아올지 기다리고 있다. 마당 한구석에 널린 빨래, 담장 밑에 올망졸망 놓인 화분, 재봉틀 다리에다 유리판을 얹은 작은 테이블, 흰색으로 칠한 나무책상 등은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다.
“이곳에 이사온 뒤 정말 호사를 하지요. 저녁마다 경복궁 산책로에서 운동을 하고요. 중국차를 파는 연화정에 가면 공짜로 보이차를 마실 수 있어요. 인왕산 올라가는 길이 집에서 바로 이어져 있지요.”
그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시간은 정독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선재아트센터의 찻집에서 글을 쓸 때이다. 어머니가 편찮으신 것만 빼면 충만한 일상. 무엇보다 딸 서윤이가 이 골목에 적응하고 친구들을 많이 사귄 게 가장 기쁘다. 20대 시절, 욕망과 좌절에서 비롯된 불면과 두통, 신경증을 도발적이고 솔직한 시쓰기로 벗어났던 그는 이혼의 아픔을 딛고 어린 딸과 함께 싱글맘의 삶을 꾸리고 있다. 첫 시집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에서 최근 에세이 ‘싱글맘 스토리’까지 일련의 책들에는 그의 삶이 들어있다.
이곳에 이사온 뒤 신씨는 ‘내 서른살은 어디로 갔나’(민음사 출간 예정)란 원고를 탈고했다. 육체나이가 아닌 감성나이 서른살은 ‘아직 예민한 감성이 살아있으면서도 자신을 다스리는 나이, 삶과 죽음이 함께 보이는 나이’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집을 나와 살면서 밥벌이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게 서른이었고, 가장 외로웠지만 가장 많은 것을 탐구했던 시기”라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보면 글쓰기는 자기치료를 위한 조촐한 시도란 말이 있습니다. 그동안 제 글쓰기와 사진작업은 욕망을 승화하거나 삶 속에서 겪은 고통이나 슬픔, 외로움, 권태, 그리움 등의 절실한 감정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도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거지요.”
그의 생각과 삶, 예술이 갖는 거리는 무척 가까운 듯 보였다. 이 땅에서 전업작가로, 그리고 싱글맘으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는 “예술가로서 무엇인가를 한창 할 수 있는 2년동안 돈 생각 하지 않고 지내기로 하자고 마음 먹었고 그 첫단추를 잘 뀄는지 생각지도 않게 좋은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어느덧 저녁 8시가 넘어선 시간. 아이들이 배가 고플 거란 생각에 자꾸 마음이 바빠져 수첩을 접었다.
인터뷰 도중 조용히 하면 맛있는 거 사주기로 약속했던 그는 아이들의 손목을 잡고 골목을 벗어나 큰 길가의 국수집으로 들어간다. “다음에는 연화정에서 꼭 맛있는 차 한잔 해요.” 시인과 공짜 차를 마시고 싶다면 지금 체부동으로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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