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추석이 서러운 사람들[그러나 다시… 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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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6.09.29 09: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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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현씨(가명·42)에게는 몇 년째 추석이 없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지만 가족을 만나러 가지 못한다. 명절 때마다 ‘내년에는 꼭’ 하며 주먹을 불끈 쥐어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들 얼굴이 어른거린다. 그러나 아비로서 해줄 게 없어 참고 또 참는다. 부모, 형제와도 연락을 끊었다. 자괴감에 스스로 등을 졌다.
추락은 순식간이었다. 남의 일처럼 여기던 실직과 이혼.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인생 막장’에 있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모든 것을 앗아갔다.
10년 전만 해도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김씨는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대기업 계열 의류회사 직원이었다. 하청업체 수백개를 도맡아 관리할 만큼 실력도 인정받았다.
일찍 결혼해 20살 차이밖에 안 나는 아들과 6살 터울 딸을 보며 힘든 줄 모르고 일했다. 쉬는 날이면 아들을 데리고 회사로 갔다. 김씨는 26일 “큼지막한 사무실을 보고 놀라던 녀석을 보며 자부심을 가졌다”고 회고했다.
1998년 IMF사태가 터졌다. 악몽의 시작이었다. 담당하고 있던 의류브랜드가 공중분해됐다. 큰 회사였지만 10명 중 2명이 그만둬야 했다. ‘설마 갈 데 없을까’ 하는 생각에 호기롭게 사표를 던졌다. 3개월 뒤 다시 직장을 잡았지만 이곳도 무너졌다. 그때까지도 앞날을 예상하지 못했다.
경제 파탄은 가정마저 무너뜨렸다. 2000년 가을, 아내가 남의 꾐에 빠져 술집을 하겠다고 나선 게 화근이었다. 꼭 6개월 만에 빚 6천만원이 생겼다. 가슴을 쳤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2001년 6월 이혼했다.
퀵서비스 일을 하며 재기를 꿈꿨다. 이번에는 도박이 영혼을 갉아먹었다. 2003년 성인오락실에 한 번 발을 들여놓았다가 중독이 됐다. 하루 10만원을 벌면 11만원을 갖다바쳤다. 아이들도 엄마에게 보냈다. 신용불량자 명단에 오르고, 노숙자가 됐다.
“2005년 5월13일이에요. 주머니에 딱 300원이 있었죠. 인천에 일자리 구하러 갔다가 지하철을 훔쳐 타고 서울역으로 돌아오긴 했는데 잘 데가 없더라고요.” 김씨는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아니 평생 잊지 않기로 다짐했다.
노숙자 생활은 늪과 같았다. 공짜로 먹고 잘 수 있는 방법을 금세 터득했다. 돈이 생기면 오락실로 가 탕진했고, 추우면 쉼터를 찾았다. 하지만 아이들 얼굴을 지울 수 없었다. 지난해 ‘다시서기 지원센터’에서 자활프로그램을 이수하면서 김씨는 자신을 얻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지난 날을 돌아보게 됐다. 남 탓만 하고 살았는데 모두 자기 잘못이란 생각이 들었다. 석달 전에는 쉼터에서 고시원으로 ‘독립’했다. 매일 아침 7시부터 4시간 동안 공공근로를 하며 월 35만원을 번다. 월세 18만원을 내면 빠듯하다. 하지만 남들처럼 사는 것 같아 힘든 줄 모른다. 내년 추석엔 아이들과 함께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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