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흙과 불, 장인의 혼이 만나는 땅[도예가 박순관씨 작업장 ‘거칠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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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6.09.28 09: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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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박순관씨(51)의 자택이자 작업장인 ‘거칠뫼’ 마당에 연기가 피어오른다. 12번째 개인전(20일~9월3일 서울 인사동 갤러리 나눔)에 내놓을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사흘째 장작가마에다 소나무 불을 때고 있다. 화력이 낮은 소나무로 1,250도까지 온도를 높여야 하니 잠시라도 가마에 장작 넣는 손길을 쉴 수 없는 터. ‘미쳐야만 할 수 있는’ 고단한 노동이지만 그의 눈은 맑게 빛난다.
16대조부터 살았고 자신이 태어나기도 한 경기 하남시의 황산(荒山) 마을에서 이름을 따온 ‘거칠뫼’는 1989년부터 작업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박화백의 생애만큼이나 오랜 연륜을 갖고 있다. 그가 세살때 하남에서 서울 천호동으로 이사한 아버지는 당시 천호동에 많던 벽돌공장을 본 뒤 고향에다가 벽돌공장을 차렸다. 그후 은퇴할 때까지 빨간 벽돌, 검정 기와를 만들고 구웠는데 현재 박씨의 작업장은 바로 그 벽돌공장 한쪽에 지은 것이다. 아직 빨간 벽돌로 지은 높은 굴뚝은 남아있지만 공장은 가마에 굽지 않고 쉽게 쪄서 만들 수 있는 시멘트벽돌로 바뀌어 임대업자가 사용하고 있다.
“어렸을 때 장작가마 옆에서 흙이나 벽돌 조각을 갖고 놀았어요. 그러니 공대에 입학했다가 도예과(단국대)로 옮겨간 건 운명이지요. 아버지는 ‘예술하면 배고프다’고 계속 만류하셨지만요.”
질박하고 자연스러운 전통옹기 방식을 재현한 그의 작품은 1994년 영국 대영박물관과 벨기에 마리몽 왕립박물관에 소장됐다. 지난해 작고한 아버지가 그의 예술을 인정하고 옹호한 건 이때부터다. 미국 뉴욕의 롱하우스 리저브와 브루클린 뮤지엄, 그리스 볼러스민속도자 뮤지엄(이상 2003년)에도 그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이처럼 그의 작품에 대해 해외에서 찬사가 쏟아지는 건 물레를 사용하지 않고 흙가래를 쌓아올려 수레로 두들겨서 만든 둥근 항아리의 자연스러운 모양, 유약을 바르는 대신 장작재에서 날아온 나트륨 성분이 흙의 규석과 만나서 천연유약이 만들어지는 과정 때문이다. 울퉁불퉁한 표면과 비대칭의 실루엣, 오랜 세월이 지나서 유약이 벗겨진 것처럼 보이는 시각효과가 매끈한 도자기와 다른 정감을 자아낸다.
이런 ‘박순관표 옹기’가 만들어지기까지는 도예가로서의 정규훈련 이외에 두가지 요소가 더해졌다. 그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도자기에 관한 전문서적이 부족해 고고학이나 역사학 학술대회를 찾아다니면서 도자기와 토기·옹기에 대한 지식을 얻었다. 또 도예에 대한 갈증이 심하던 군대시절, 우연히 옹기공장을 발견하고 그곳의 장인들에게 옹기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일찌감치 자신의 갈 길을 정한 그는 제대후부터 각양각색의 옹기와 토기, 관련서적을 모으기 시작했다. 어느덧 500여점에 이른 옹기가 ‘거칠뫼’ 마당을 둘러싸고 있고, 토기·사발·청자 300여점과 2,000여권의 도자기 전문서는 살림집에 덧대어 지은 작은 전시실 선반에 놓여있다. 정작 자신의 작품은 달라는 대로 다 팔아치워 별로 없다.
“옛날부터 한강변 천호동·암사동·풍납동·뚝섬 일대가 모두 벽돌·기와 공장이었어요. 그런데 개발되면서 모두 사라졌지요. 지금 제 작업장도 바로 코앞까지 아파트가 들어왔어요. 아마 3년을 못버틸 거예요.”
그의 집 앞에는 아버지가 쓰던 방 두 칸 크기의 벽돌가마가 있다. 옛날에는 빨간 벽돌을 빚어 구울 때 유약 대신 소금을 뿌렸는데 그 소금이 가마 내부에 들러붙어 반들반들 유약을 칠한 것 같다. 그의 살림집은 옛날 벽돌공장 직공 여섯가족이 사택으로 쓰던 곳이다. 장작가마의 낮은 굴뚝과 당시 집 세 채를 지을 벽돌이 들어갔다는 벽돌공장 굴뚝도 다정한 부자지간 같다.
그러나 그린벨트에 묶여있는 이곳에서 도자기 전시관을 지으려면 건설비는 차치하고 훼손부담금만 1억원을 내야 한다. 예술가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돈이다. “지역에서 문화를 지키기란 아직 어려운 일”이라는 그의 말에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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