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넷/통신] 오늘도 비틀스 튼다 왜냐고는 묻지 마라[마니아 모임 ‘페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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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6.09.27 09:3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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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한 것인데, 어찌 홍시라 생각했느냐 하시면….”
한류 열풍을 이끈 드라마 대장금의 한 대목. ‘왜 (음식이) 홍시 맛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당혹해하며 어린 장금이가 내뱉는 대사다. 홍시가 제 맛을 내는 섭리를 사람이 어쩔 수는 없다. 이쯤 되면 홍시에게 직접 ‘왜 홍시 맛을 내느냐’고 물어야 맞다.
지난 17일 홍대 앞의 한 카페에 모인 다음카페 ‘페퍼랜드’ 회원들도 순간 어린 장금이 신세가 됐다. 비틀스 동호인인 이들은 ‘왜 비틀스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좋은 걸 어쩌란 말인가’ 하는 표정을 보였다.
2000년 출범한 페퍼랜드는 1996년 PC통신 나우누리 시절 동명의 동호회를 모태로 인터넷 상에 각개약진한 여러 커뮤니티 가운데 하나다. 초등학생부터 중장년까지 회원수가 5,000명을 넘는다. 운영자 김종현씨(45) 등 골수 회원 6명은 시간이 나는 대로 오프라인 모임을 갖는다.
장석원씨(32)가 “40년 전 유행한 음악을 왜 듣느냐고 묻는 거라면 수백년 전 바흐, 베토벤은 왜 듣는지 반문하겠다”며 정적을 깼다. “비틀스는 제 지금까지의 삶을 반추하는 추억의 매개체입니다. 용돈을 아껴 모으고, 어떤 음반 살까 고민하고, 음반 구하려 시내 곳곳을 누비고 다녔던 여러 추억들 말이죠. 특정 곡을 들으면 각각 당시 모습이 떠올라요.”
장씨는 중학교 진학 뒤 친척 집에 놀러갔다 비틀스의 음반을 접했다. 이후 라디오만 듣던 피동적 감상자에서 음반 수집가 진영으로 전향했다. 최근에는 매년 한 번씩 일본여행을 통해 비틀스 LP 음반을 사들여 지금까지 수백장을 모았다.
김종현씨도 “비틀스가 추억의 이정표라는 점에 동의한다”면서 “비틀스는 고급스럽다고 할까, 다른 팝보다 듣는 이를 끌어당기는 매력이 크다”고 말했다. 김씨는 진공관 앰프와 고액의 수입 스피커까지 갖춘 마니아다.
국내 비틀스 팬 1세대로 자부하는 그는 1981년 이미 비틀스의 ‘정식 앨범 13장 듣기’를 완료했다. 김씨가 보유한 LP 수천장 가운데 비틀스 음반은 정식판 및 백판(정식 라이선스 계약 없이 발행된 국내산) 등 모두 500장을 넘는다. 김씨에게 일부 비틀스 음반은 ‘참고서’다. 참고서 값 핑계로 받은 돈으로 사모았기 때문이다.
“중학교 2년 때인 74년 350원짜리 히트곡 짜깁기 백판을 처음 샀어요. 이듬해에는 국내 최초 라이선스판인 ‘애비로드(Abbey road)’를 1,300원에 구입했죠. 77년 부가가치세 도입 후 장당 1,950원으로 값이 뛰어 걱정도 했어요.”
건축 설계사인 김태훈씨(36)는 모임 장소에 인터넷을 통해 구입했다는 러시아산 ‘불법복제 CD’를 가져왔다. 비틀스의 정식 발매 LP의 수록곡을 똑같이 담고, 사진과 재킷 제작방식 등 외양을 그대로 축소 재현한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때 500원짜리 불법 복제 테이프를 통해 ‘더 롱 앤 와인딩 로드(The long and winding road)’ 등 ‘덜 알려진’ 비틀스 곡부터 듣기 시작한 그는 300장 이상의 비틀스 LP를 보유하고 있다.
김진옥씨(25)가 테이프로 시작한 것을 제외하면 박경수씨(28)나 허주영씨(28·여) 등 20대는 대체로 CD 등 디지털 매체를 통해 비틀스를 만났다. 공동운영자인 박경수씨는 “접한 방식이 무엇이든 비틀스 사랑에는 차이가 없다”며 “2년 전 송년모임에서 열린 비틀스 관련 퀴즈 대회에서 중학생 회원들이 가진 지식이 기성세대보다 월등했던 일도 있다”고 전했다.
비틀스가 전세계를 열광시키던 60년대 당시 경제 사정 등으로 인해 일부 외교관이나 주한미군 종사자 정도를 빼고는 국내에 ‘리얼타임’ 비틀스 팬은 없었다. 동호회의 ‘원로’ 김종현씨조차 비틀스가 공식 해체한 뒤 4년이 지나서야 곡을 처음 접했다. 국내의 비틀스는 80년대 대학가에서부터 점차 대중화된 것으로 파악된다.
김씨는 “국내 팬들이 비틀스를 만날 기회도 없었지만 80년대까지 ‘혁명(Revolution)’ 등 15곡 정도가 금지곡으로 묶이는 등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며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비틀스 음반을 통제한 나라는 전세계에서 한국과 대만뿐이라는 소문이 있었다”고 말했다.
장석원씨도 “70년대에는 비틀스 관련 정보도 얻기 어려웠는데, 당대에 내한한 비틀스의 카피밴드가 진짜 비틀스로 오인돼 서울시가 카퍼레이드를 열어주는 촌극까지 빚어졌다”고 거들었다.
장씨는 “2000년 베스트 앨범이 CD로 나왔을 때 전세계의 10대들이 대거 사들인 점을 보면 비틀스에게는 세대를 초월하는 매력이 있다”며 “비틀스 음악을 매개로 지역과 연령을 떠나 여러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다는 점, 이게 비틀스가 우리 삶에 주는 또 하나의 의미”라고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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