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팝업북 춤추고 빈티지인형 노래하고 [시인 성미정·배용태씨 부부가 사는 집]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6.09.18 09:08:27
  • 조회: 654
시인 성미정씨(40)와 배용태씨(36) 부부가 사는 광화문 한복판의 작은 아파트에는 오래 된 팝업북(책장을 넘기면 입체적인 그림이 튀어나오는 동화책)과 빈티지 인형이 그득하다. 아들 재경(4)이 태어난 뒤 모으기 시작한 책과 인형이 집안 구석구석에 쌓이기 시작하면서 이 물건들을 사들이고 손질하고 파는 건 세 식구의 생활을 책임지는 생업이 되었다.
지난 1일은 이들 부부가 자신들이 모아온 책과 인형을 판매하는 가게 ‘마이 패이버리트’를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연 지 딱 1년이 되던 날. 때마침 나온 성미정 시인의 세번째 시집 ‘상상 한 상자’(랜덤하우스)의 출간도 자축할 겸 인사동의 갤러리 나눔에서 작은 전시회를 열었던 이들이 책과 인형을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옮겨놓는 중이었다.
“지금까지는 글을 쓰기 위해, 어떤 목적을 위해 책을 읽었어요. 그런데 팝업북을 넘기다 보면 긴장하고 따지기보다 재미있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오래된 책들에는 그것이 만들어진 시대의 문화가 담겨있고요.”(배용태)
“저는 바비인형처럼 예쁘기만 한 인형은 싫어요. 감정적으로 동화될 수 있는 것, 왠지 우수가 느껴지거나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인형이 좋아요. 제 머리는 안 빗어도 인형 머리가 헝클어져 있으면 꼭 쓰다듬어주게 되지요.”(성미정)
남편 배씨가 주로 수집하는 팝업북은 1930년대부터 80년대 사이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중 세인트 루이스 기로드의 ‘데일리 익스프레스 칠드런즈 애뉴얼’이나 해롤드 렌츠의 ‘피노키오’, 줄리언 워의 ‘애니메이티드 서커스 북’ 등 30~40년대 책들은 그가 가장 아끼는 보물이다. 원래 수집가 기질이 강했던 그는 일본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벼룩시장에서 체코 출신의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인 쿠바스타가 만든 ‘신데렐라’를 발견하면서 빈티지 팝업북 수집가가 됐다. 1200년대 이래 서구에서 만들어진 ‘움직이는 책’의 역사를 기록한 로버트 사부다의 컬렉션 북에 소개된 11권 가운데 6권을 갖고 있다. “요즘 페이퍼 엔지니어들이 만든 팝업북은 정말 화려하고 정교하지만 과거 일러스트레이터들이 만든 빈티지 팝업북의 손맛과 정감이 사라졌다”는 게 그의 설명.
아내 성씨의 빈티지 인형도 마찬가지다. 그가 수집한 1950년대 이후 생산된 200여종의 인형 중에는 눈꺼풀이 안 닫히고 팔이 부러진 것도 있고, 색칠이 조악한 싸구려 중국제품도 있다. 그러나 각자마다 만든 사람의 생각과 당대의 고유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일례로 성씨가 가장 좋아하는 인형인 ‘리틀 미스 노네임’은 1965년 미국 하스브로사에서 나온 제품인데 옷핀으로 고정시킨 누더기 원피스를 걸치고 고개를 외로 꼰 채 왼쪽에 파란 눈물 한방울을 달고 있다. ‘저는 춥고 집도 없어요. 이름도 없어요. 저를 사랑해 주세요’란 광고문구와 함께 세상에 태어난 이 인형은 격렬한 호불호 논쟁에 휘말렸으며 결국 1년 만에 단종됐다. 이밖에 익살스럽게 눈을 옆으로 돌린 ‘큐피’ 패밀리, ‘짜리몽땅한’ 배트맨, 동화책에서 금방 튀어나온 것 같은 동물 캐릭터 인형 등도 그의 애장품 목록에 들어있다.
이들 부부는 빈티지 팝업북과 인형 이외에 오리지널 틴토이를 모으고 있다. 주로 1940~70년대 일본이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미국에 팔았던 양철로봇은 ‘로봇트 태권브이’ 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면서 꽤 많은 애호가를 갖고 있다. ‘마이 패이버리트’에서 가장 비싼 상품도 1950년대 노무라사에서 외부배터리 방식으로 만든 3백50만원짜리 레이더 로봇이다.
건축가이기도 한 시인 함성호씨가 광섬유를 이용해 특이하게 디자인해준 이들의 가게에는 사진·광고·잡지계통 종사자와 젊은 디자이너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오늘날과 다른 미감, 빈티지가 주는 특별한 매력으로부터 영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취미에서 비롯된 특별한 공간을 가꾼 이들의 일상은 성시인의 최근 시에 묻어난다.
‘늙어가는 마누라와 빈티지 장난감 중 어느 것이 더 비쌉니까/…/리미티드 에디션 틴토이 NO.1과 배재경 중 어느 것이 더 비쌉니까/…/이상한 질문으로 가득한 시와 신제품이 가득한 장난감 카탈로그 중 어느 것이 더 비쌉니까.’(시 ‘무엇이든 값을 매겨야 하는 장난감 가게 아저씨께’ 중에서)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글수정
  • 글삭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