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편집의 힘[블로그 시대… 재가공하여 문화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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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6.08.28 09:42:11
  • 조회: 485
뉴스는 인터넷으로 본다. 신문으로 길게 읽을 필요도, 시간에 맞춰 TV 앞에 앉을 필요도 없다. 주제별로 보기 좋게 편집돼 있는 인터넷판 뉴스를 훑어보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웬만큼 알 수 있다. 음악을 들을 땐?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해 인터넷 플레이어에 내 마음대로 골라 둔 음악을 듣거나, MP3 플레이어에 다운받은 파일을 실행시키면 된다. 비 오는 날엔 1번 파일을, 왠지 우울해 분위기를 띄우고 싶다면 클럽댄스용 음악이 저장된 2번 파일을 골라 듣는다. 요즘 뜨는 노래들을 배우고 싶다면 신곡 모음 3번 파일을 실행한다. 1천만 관객을 모은 영화 ‘괴물’도 재밌지만, ‘고물’ ‘뇌물’ ‘속물’로 변신한 패러디의 재미도 만만치 않다.
원본을 재치있게 비튼 패러디는 ‘인기의 증거’이기도 하다. 블로그는 내가 선택한 소스들을 모아놓은 편집의 집합체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선택한 배경음악과 어디에선가 스크랩해온 멋진 글과 사진들, 서평과 영화 리뷰, 심심할 때 유용한 심리테스트까지 다 모여 있다. 원본보다 더 사랑받는 2차 창작물들. 최종 소비자의 입맛에 맞게 선택되고 재구성된 1차 창작물들의 변신들이 우리의 생활을 깊숙이 파고든 지금은, 바야흐로 편집의 시대다. 그 명암(明暗)을 돌아봤다.
1인 미디어인 블로그(blog)는 개인적 취향과 선택에 따른 편집의 집합체다. 이용자는 자신이 직접 작곡한 노래나 직접 쓴 글, 직접 찍은 사진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선택’하고 ‘편집’해서 블로그를 꾸밀 수 있다. 편집시대의 강한 특징 중 하나는 이렇듯 이용자 중심의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원하는 노래를 선택해 배경음악으로 쓸 수 있고, 유용하거나 재미있는 정보와 글, 유머, 사진 등을 ‘스크랩’할 수 있다. 싸이월드의 베스트히트홈피(방문자 수가 많은 홈피)의 특징 중 하나는 스크랩하기 좋은 글과 사진이 많다는 것이다.
2003년부터 미니홈피를 운영하고 있는 직장인 박주영씨(27)는 ‘블로그마저 내 생각이 아닌 남의 생각으로 채우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스크랩할 때도 아무것이나 하지 않는다”며 “블로거들은 각자 취향과 생각에 맞는 글이나 사진을 스크랩해 친구들과 공유한다”고 말했다. 개인이 아닌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우리 문화 속에서, 블로그 역시 함께 나누는 속성이 강하다. 유행을 민감하게 반영하는 스크랩 게시물은 이런 정서적 공감대를 유지시켜 주는 기능을 하고 있는 셈이다. ‘패러디 문화’는 네티즌들의 가장 활발한 편집활동 중 하나다. 원본에 바탕을 두고 있긴 하지만, ‘창작자’의 재치와 아이디어를 뽐내는 2차 창작물로 인정받고 있다. 시사현상을 재치있게 비꼰 아마추어 패러디물은 프로들의 시사만평만큼이나 화제를 모은다. 최근에는 영화 ‘괴물’과 ‘된장녀’, ‘청와대 인사 파문’과 ‘바다이야기’ 의혹 등이 요릿감으로 올라왔다.
패러디 게시물은 상업적 목적이 아니라, 다른 이용자들과 생각을 함께 나눈다는 데에도 의의가 있다. 두 컷 만화 ‘조삼모사’는 월드컵 기간, 말풍선의 내용만 바꿔 편집돼 수십가지가 넘는 버전으로 재편집되면서 인기를 끌었다. 특정한 사람의 주도가 아니라, 다수의 네티즌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 다양한 소재로 패러디를 즐겼다. 고사성어를 패러디한 만화가 고병규씨의 첫 만화는 어느새 원본이 됐다. 고씨는 네티즌들의 재패러디에 대해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편집과 재가공의 힘은 2차, 3차 창작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드라마로 만들어진 원수연씨의 만화 ‘풀하우스’와 박소희씨의 ‘궁’은 제작과정에서 만화팬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원작의 작품성을 훼손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캐스팅된 배우들이 원작 캐릭터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었다. 우려와 달리 방영 후 두 작품은 모두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줄거리가 부분적으로 수정되기도 했지만 “더 새롭고 재밌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한류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드라마 ‘대장금’은 만화와 게임에 이어 뮤지컬로도 만들어진다. 최단 기간 1천만 관객을 돌파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은 다음달부터 석정현 작가의 만화 ‘괴물’로 다시 태어날 예정이다. 영화 제작사측은 만화 ‘괴물’을 지켜보며 속편 제작을 고려해 보겠다고 밝혔다. 2차 창작이 거꾸로 1차 창작을 유도해내는 셈이다.
하나의 작품이 이렇듯 다양한 장르로 재창조되는 ‘원소스 멀티유즈’는 편집시대의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재탕’ ‘우려먹기’라는 비난이 무색할 만큼 새로운 매력과 가치를 발견하는 2차, 3차 창조물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원작으로 한 매튜본의 ‘백조의 호수’는 남자 무용수를 주연으로 내세워 새로운 매력을 발산했다. 연극 ‘왕의 남자’와 영화 ‘왕의 남자’도 같은 소재이지만 각각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미국 유니버설 픽처스는 영화를 제작 단계부터 테마파크용 가공을 염두에 두고 만든다.
원본에 뿌리를 두고는 있지만, 2차 창작물 역시 나름의 가치와 작품성을 지닌다. ‘풀하우스’의 작가 원수연씨는 “색다른 매력의 ‘풀하우스’를 만나는 것은 행운”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나의 소스로 다양한 부가 창작이 가능하다는 것은 경제적 효율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초기에 대규모의 투자로 이목을 집중시킨 뒤, 그것을 통해 지속적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해 나가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의 왕국 일본에서도 다양한 캐릭터 사업을 통해 부가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혼성모방과 패러디 등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주된 경향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개인의 자율성이 커지고 산업과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필연적으로 탄생했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는 “창의성은 떨어질 수 있지만, 어떤 관점으로 어떤 소재를 선택해 재가공하느냐 하는 것도 개인의 창의적 선택”이라며 “편집의 시대에 개인이 보다 자유롭고 활발하게 많은 것들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은 긍정적 현상”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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