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여성파워 빛과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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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6.08.25 09:18:32
  • 조회: 258
‘여성’이 한국 파워엘리트의 ‘블루오션’으로 떠올랐다.
지난 16일 전효숙 헌법재판관이 차기 헌법재판소장에 지명됨으로써 지난 4월 취임한 한명숙 국무총리와 더불어 최고 권력기관의 수장이 됐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국민적 지지 속에 내년 대권고지를 향해 순항을 계속하는 것도 주목거리다. 입법·사법·행정에 걸쳐 최고 파워엘리트 자리에 여성이 포진한, ‘여성리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들의 부상은 우리 사회가 새로운 리더십을 열망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권력을 기반으로 밀어붙이고 강제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포용하고 화합하며 소통하는 리더십이 이 시대에 필요하다는 방증이다. 파워엘리트 계층에 여성이 진출하는 것을 놓고 ‘얼굴마담’이니, ‘국면돌파용 깜짝인사’니 하는 비난이 뒤따르지만 왜 여성인가, 나아가 어떤 종류의 리더십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현재 권력 피라미드의 정점에 오른 여성들은 여성 프리미엄 이외에 고유의 장점을 가졌다. 한명숙 총리는 오랫동안 민주화에 투신하면서 여성운동을 해온 여성계의 대모라는 도덕성이 강하다. 그의 리더십은 포용과 화해, 대화와 교류의 리더십으로 평가된다. 전효숙 헌재소장 지명자는 정통 법관으로서 쌓아온 실력이 뒷받침된 가운데 진보적 시각과 소수자의 입장 대변이라는 면이 강점이다. 박근혜 전 대표의 경우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만으로 평가하기는 힘든, 계보정치를 떠난 원칙주의자의 면모가 돋보이는 경우다.
이들 외에 최근 여성파워의 지형도가 크게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지표는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정계에서는 정개개편의 주요 축으로 주목받는 추미애 전 민주당 대표, 최초로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정당 최초의 여성 정책위원장인 한나라당 전재희 의원이 눈에 띈다. 관계에서는 김선욱 법제처 장관이 장하진 여성가족부 장관과 더불어 내각을 구성한다. 법조계도 김영란 전수안 등 2명의 대법관을 탄생시켰다. 김영순 서울 송파구청장, 이에리사 태릉선수촌장, 신선희 국립극장장, 이성남 금융통화위원 등도 최근 여성계의 개가로 꼽힌다.
첫 여성 중수부 수사관, 첫 여성 비뇨기과 의사, 첫 여성 철도기관사, 첫 여성 바둑기사, 첫 여성 전투기조종사 등 금녀의 벽을 뛰어넘은 여성들의 이야기는 늘 눈길을 끌 망정, 이제 새로운 뉴스는 아니다. 이 시대의 새로움은 여성들이 유리천장이라는 한계를 뚫고 지도력을 발휘해 우리 사회의 갈등을 조정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의 자리로 올라가고 있다는 데서 발견된다.
여성 파워엘리트의 약진은 여성이 우리 사회의 블루오션으로 떠올랐음을 보여준다. 경영학 용어인 블루오션은 경쟁이 치열한 기존시장인 레드오션과 대비해 경쟁이 거의 없는 새로운 시장을 의미한다. 여성이 블루오션이라고 할 때 이는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훨씬 윤리적인 엘리트로 채워진 인재풀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그렇고, 한편으로는 여성들이 지도자의 위치에 섰을 때 기존 남성들이 해내지 못한 새로운 시대적 과업을 해낸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박길성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규모 피라미드형 조직의 관리형 엘리트 시대가 가고 정보와 자원을 적절히 배분, 연결하는 허브형 네트워크 엘리트 시대가 열린다”며 “21세기가 여성 중심의, 문화로 다듬어진 산업을 근간으로 한, 유연한 방식에 의해 구성되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여성의 권한강화는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의 특성은 여성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과거의 스타가 사회적 부, 재능, 대중적 인기를 기반으로 했다면 현재의 명사(celebrity)는 여기에다 신뢰·윤리·검약·봉사라는 덕목을 갖춰야 한다. 여성의 직관적 문제해결 능력, 다중역할 수행능력, 탈권위적 업무 스타일과 더불어 배려와 관계에 기반을 둔 윤리성은 새로운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함께 여성 특유의 가시성도 이미지 시대를 맞아 여성 엘리트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한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뛰어난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이자 베스트 드레서란 사실은 그의 능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이런 ‘이미지의 승리’는 연예인 못지않게 대중적 관심을 모았던 강금실 전 법무장관에게서도 보여졌다. 그의 서울시장 진출은 ‘똑똑하고 튀는 여성’을 대하는 관습적 시각으로 인해 좌절됐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젠더정치의 파급효과는 섬세한 여성적 이미지를 가진 오세훈 서울시장이 그의 유일한 적수로 상정됐다는 데서 우회적으로 증명된다.
우리 사회의 파워엘리트 여성들이 남성사회에 의해 선택된 ‘토크니즘’의 알리바이 여성이냐, 아니면 진정한 여성세력 성장의 결과냐 하는 것은 이 시기에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토크니즘이란 성별이나 인종 같은 사회적 범주의 측면에서 심한 불균형을 보이는 직무환경에 소수의 대표로 진입하는 사람들이 가짜 진보의 ‘토큰’(징표)으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우리 사회는, 여성이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는 현상의 이면을 꼼꼼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파워엘리트 계층에서 나타나는 여성의 가시성으로 인해 보통여성들이 겪는 사회적 고통이 오히려 더욱 가려진다는 문제의식은 여성계에서 절박하다. 김기선미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최고권력의 자리에 여성이 진출하더라도 하부구조가 그들의 새로운 시각을 받쳐주지 못하는 남성조직사회인 한 쉽게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면서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자리에 여성을 30% 할당하라는 여성계의 주장을 거듭 확인했다. 또 “여성 지도자의 배출보다 더욱 진지하게 다뤄져야 할 것은 여성이 빈곤의 위험에 남성보다 훨씬 더 많이 노출돼 있는 ‘빈곤의 여성화’ 문제”라고 지적했다.
오늘날 여성주의는 남성과의 대결을 전제한 여성의 집단적 이익관철이 아니라 성·계급·소수자 등 우리 사회의 여러가지 경계에 대한 질문이다. 여성적 리더십이 가져다주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변화를 앞당기려면 여성 파워엘리트 시대에 샴페인을 터뜨리기보다는 차분하게 새로움을 향하는 노력, 내용상의 블루오션을 찾아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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