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21세기 신여성’을 비틀다[된장녀 논쟁의 본질]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6.08.24 09:08:49
  • 조회: 361
2030 여성들의 새로운 생활방식에 대한 왜곡과 폄하의 극단에 된장녀, 된장아줌마가 존재한다. 인터넷 상에서 널리 유포된 이들의 캐릭터는 한 편의 CF를 연출하듯 현실감이 떨어지는 데다 소비주의에 물들어 있고 자기주장만 하며 상대남성을 착취하는 허영과 이기심의 화신으로 그려져 있다.
먼저 된장녀의 하루. “아침 7시30분, 휴대전화 알람소리에 기상한다. 졸린 눈으로 머리 감으러 욕실로 향한다. 전지현 같은 멋진 머릿결을 위해 싸구려 샴푸나 린스는 안쓴다. 왜? 난 소중하니까. 학교에 도착해 학교앞 던킨도너츠로 향한다. 모닝커피와 도너츠를 먹으며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창밖으로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이 마치 뉴요커인 것만 같다. 학교수업을 마치니 오후 4시다. 롯데백화점 명품점을 배회하면서 훗날 만날 결혼상대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3,000이상의 그랜저를 몰고 다니는 키 크고 옷 잘 입고 유머 있는 의사’ 정도면 나한테 충분하다며 농담반 진담반으로 그녀들의 대화는 계속된다….”
다음은 된장아줌마의 하루다. “아침 7시20분, 탁상시계소리에 기상한다. 졸린 눈으로 주방을 향한다. 콘프레이크와 저지방 우유로 대강 아침식사 준비를 한다. 황신혜 같은 몸매를 위해 일반우유는 마시지 않는다. 설거지는 식기세척기로 돌리고 그동안에 세수와 양치를 한다. 옷장을 열고 남편카드로 그은 루이뷔통 멀티 스피디 30을 꺼내 거울에 모습을 비춰본다. 시슬리 향수를 귀밑에 뿌린 다음, 지난주에 구입한 마놀로 블라닉 구두를 신고 자동차 키를 들고 현관문을 잠근다. (몇미터 갔다가 도로 와서 다시 확인한다.) 백화점에 도착했다. 남편카드가 한도초과된 것을 투덜거리면서 딴 아줌마가 옷 사는 것을 실실 샘내기 시작한다….”
이들에게 이용되고 갈취당하는 고추장남과 된장아저씨의 하루는 처량하고 빈곤하기 짝이 없다. 300원 아끼려고 시내버스 대신 마을버스를 타고 구내식당 갈 돈마저 아까워 학교 밖 편의점을 향하는 고추장남. 이들은 결혼하면 3년 지난 양복을 입고 꾸벅꾸벅 졸면서 출근해 부하 된장녀들에게 밥값을 뜯긴 뒤 씁쓸한 마음을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로 달래는 된장아저씨가 된다.
자칫 성대결의 양상마저 띠는 된장녀와 된장아줌마 논쟁의 본질은 무엇일까. 어설프게 뉴요커 흉내를 내고 자신의 경제형편에 아랑곳없이 명품만을 추구하는 속물 여성의 모습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는 사회적 불만과 불안을 여성에게 투사해 눈앞에 보이는 적, 즉 희생양을 만들어내려는 사회심리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김정운 명지대 교수(여가경영)는 “자신의 삶이 행복하지 못하면 적개심에 가득차고 가상의 적을 설정해 공격하게 된다”고 지적하는데 이 과정에서 2030 여성들의 자기행복추구와 코스모폴리탄적 성향 등 새로운 생활방식이 비난과 패러디의 대상이 된다. 군복무와 취업난, 정리해고 공포에 시달리는 남성들이 정부와 대기업에 돌려야 할 화살끝을 주변 여자들에게 돌리고 있다.
정박미경씨(전 이프 편집장)는 “된장녀 논쟁에는 20세기 초반 신여성에게 가해졌던 낙후된 비판의 시선이 들어있다”고 말한다. 당시 한국사회가 일본에서 신학문과 함께 자유연애사상을 배워온 신여성에 대해 외세를 끌어들이고 가부장제의 근간을 흔들어 놓는다는 심리적 위협을 느꼈듯이 21세기 신여성도 기존 사회질서에 이질적인 존재로 작용하는 것이다.
비단 신여성뿐 아니다. 식민지배와 전쟁의 와중에 몰락한 어머니와 누이, 미군에게 몸을 파는 기지촌 여성, 그들을 보면서 분노와 무력감을 느끼는 남성이라는 구도는 외세에 희생되거나 영합하는 여성상을 보여줌으로써 내부의 결속을 담보하려는 가부장적 민족주의의 전형적인 전략으로 자리매김돼 왔다. 이런 측면에서 된장녀 논쟁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으로 국민들의 불안이 고조된 시기에 불거져 나왔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권명아씨(한양대 연구교수·국문학)는 “젊은 여성, 개방적인 여성에게 외세와의 영합 혐의를 씌우고 추궁하는 것은 불경기 때마다 나타나는 매우 오래된 전통”이라고 지적한다. “거대한 외국자본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다스리거나 대응할 수 없는 반면, 외국바람이 든 여성은 비판하고 다잡음으로써 불안을 대리 해소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20세기 신여성이 자신의 자유연애사상과 가부장제 내부가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경제적 토대 사이에서 불행한 최후를 마치면서 당시의 이데올로기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했다면, 21세기 신여성은 다르다. 그들은 된장녀 논쟁에 코웃음을 치면서 자신이 원하는 바 욕망을 떳떳이 추구한다. 이전 세대의 여성들과 달리 사회의 중심 축으로서 역할을 찾아가면서 ‘이유없는 폄훼’에 당당히 맞서고 있다.
왜? 그녀들에게는 경제적, 심리적으로 독립된 삶이 가능해졌으니까. 무엇보다 그녀들은 자신을 소중히 여길 줄 아니까.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글수정
  • 글삭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