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난 준비된 ‘대역’ 주연의 그날 오겠지 [뮤지컬무대 긴급 대타 ‘커버’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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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6.08.21 08:5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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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별을 따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뮤지컬 ‘커버(Cover)’에서 주연으로 무대에 선 사람들이다. 뮤지컬계에서 ‘커버가 무대에 오르기는 하늘의 별따기’로 통한다. 그만큼 기회를 잡기 힘들다는 얘기다. 커버는 주요 배역을 맡은 메인 배우가 불가피한 일로 무대에 서지 못할 경우 긴급히 그 배역을 해내는 연기자를 말한다. 중견 배우로 활약하고 있는 뮤지컬 스타들 중에서 커버의 서러움을 겪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로 한번씩 거치는 통과의례이기도 하다.
그러나 커버는 무대에 발을 내딛기 전까지는 ‘유령’ 같은 존재다. 관객은 고사하고 메인 배우들과 작품을 완성하기 바쁜 제작진에게도 ‘사건’이 생기기 전에는 거의 존재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
뮤지컬 경력 5년차인 김소향(26)은 커버의 제일 조건으로 ‘눈치’를 꼽았다. 대부분의 커버는 1인 5~6역의 앙상블 역도 함께 맡는다. 본래의 앙상블 역을 연습하는 틈틈이 눈칫밥으로 커버 역을 익혀야 한다는 것. 국내 제작 여건상 주연 배우들도 무대에서 가질 수 있는 리허설은 불과 공연시작 하루 이틀 전이 고작이다. 커버가 무대에서 조명이나 테크니컬팀과 호흡을 맞춰보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김소향은 ‘아이다’에서 옥주현이 위경련을 일으키는 바람에 무대에 서는 등 8개월 공연 기간 중 총 11번 아이다 커버로 연기했다. 그는 “남들 모르게 대본과 악보에 메인의 역할에 관한 메모를 해뒀다”며 “커버는 눈치가 없으면 하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가장 큰 서러움은 대놓고 연습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 공연이 끝나기 전에 관객과 만날 수 있을까, 마냥 기다리며 겪는 마음 고생도 크단다. “기쁨도 크지만 등·퇴장 등 동선이 달라 다른 배우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무대에 올라서도 무척 신경이 쓰였다”며 “오디션 때 막상 응시한 배역이 아닌 그 배역의 커버로 캐스팅됐을 때는 자존심이 상해 거절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커버이기 때문에 기회도 잡을 수 있다. ‘지킬 앤 하이드’에서 조승우, 류정한의 커버를 맡은 김우형(24)의 경우다. 김우형은 커버로 캐스팅됐지만 풍부한 성량과 안정된 연기력으로 연출자의 눈에 띄어 재공연 때는 커버가 아닌 주역으로 조승우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는 “혹시나 연습에 방해가 될까봐 주연이 연습하고 있을 때는 근처에 서 있지도 못하며 소품 한번 만져보질 못했다”며 “그러나 커버를 맡았기 때문에 행운도 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중후한 매력으로 ‘맘마미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샘 역의 성기윤도 8~9년간의 커버 생활을 거쳤다. 1998년 첫 공연된 ‘갬블러’에서 탤런트 허준호의 커버 역을 맡은 그는 이후 많은 작품에서 커버를 도맡았다. 지금은 손꼽히는 중견 남자 배우로 활약하고 있다. 이번 ‘맘마미아’ 공연 때는 영국 제작진이 실력을 인정해 유일하게 오디션 없이 바로 캐스팅한 배우이기도 하다. 배해선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는 한창 탤런트로 인기를 모았던 박상아의 커버 역을 했다.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커버였던 최종원도 뒤늦게 스타가 됐다.
그렇다고 모든 커버에게 기회가 오는 법은 아니다. 뮤지컬 ‘김종욱찾기’에서 주연으로 열연 중인 오나라는 일본에서 2년간 커버만 맡았다. 단 한번도 무대에 서지 못했다. 오나라는 “나름대로 꿈을 갖고 일본에 진출했는데 2년 동안 무대에 설 수 없어 나중에는 슬럼프에 빠졌다”고 털어놨다.
커버를 맡는 배우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만년 커버’. 한번 커버를 맡는 배우는 작품을 달리하며 커버가 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신인은 경험을 쌓는 심정으로 커버를 맡지만 중견 배우일 경우 자존심 문제나 누군가의 커버를 했다는 이력이 붙을까봐 꺼린다. 이름이 꽤 알려진 한 남자배우는 ‘미스사이공’에서 엔지니어 커버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하는 바람에 행운을 놓치고 말았다.
커버에도 ‘퍼스트 커버’ ‘세컨드 커버’ 등 등급이 있다. 앙상블 커버는 따로 ‘스윙(Swing)’이라고 부른다. ‘얼터니트(Alternate)’는 주8회 공연의 경우 2~3회 메인으로 무대에 서는 배우로 커버와는 다르다. 신시뮤지컬 정소애 실장은 “외국에서는 커버를 공지하지 않지만 국내에서는 주연 배우가 건강상의 이유로 무대에 서지 못해도 항의가 빗발쳐 커버를 미리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은 커버의 중요성이 점점 부각되고 있어 장기 공연의 경우 커버들로만 리허설을 해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커버에도 따로 조건이 있을까. 커버의 오디션이 따로 있지는 않다. 앙상블 중에서 주연 캐릭터의 음색과 이미지에 맞는 커버감을 점지한다. 한 관계자는 “주연을 맡은 배우와 모습이나 음색이 닮을 필요는 없지만 앙상블 중에서 외모가 훤칠하고 개성있는 배우들이 주로 뽑힌다”고 말했다. 오디션 때 주연이 아닌 앙상블인데도 면접관이 여러차례 노래와 연기를 반복시킨다면 커버를 맡을 확률이 높다. 개런티는 제작사마다 다르긴 하지만 ‘커버 수당’이 따로 주어진다.
커버들이 안타까워하는 것은 커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다. 커버는 단순한 ‘대타’가 아니라 언제라도 본 무대에서 작품의 완성도를 유지시키며 손색없이 주연을 호연하는 실력파들이다. 그러나 무대에 섰을 경우 일반 관객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게 사실이다. 커버들은 그들만의 “희열이 있다”고 당당히 말한다. 무대 뒤에서 주연의 연기를 지켜보며 자신만의 또다른 이미지를 창조하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 물론 가장 큰 기쁨은 무대에 섰을 때다. 커버의 다른 이름은 ‘끊임없이 노력하며 언제가 무대에 설 날을 기다리면서 외롭게 싸우는 사람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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