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태풍에 견디는 ‘새’ … 집을 감싸다[제주도 전통 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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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6.08.16 09:41:35
  • 조회: 405
장마의 끝 제주. 길을 잃어 들어간 화훼마을에 익숙한 돌담길이 보였다. 초행길, 도시에서만 자란 눈에 익숙한 돌담길이라니. 차 한대 들어서기도 버거울 만큼 좁은 골목이었다. 윤동주 시인이 시상을 떠올렸을까 싶게 구불구불 돌담이 이어졌다.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어버렸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윤동주의 ‘길’.
길 안자락으로 오래된 집 두 채가 보였다. 말로만 듣던 제주도 초집이었다.
대리석보다 더 단단하지만 깎아놓으면 아무렇게나 주워 쌓아놓은 듯 정겨워 보인다는 화강암이 비를 맞아 더욱 번질거렸다. 그림책 보듯 짚으로 덮인 지붕을 이리 저리 살폈다. 멀리서 보았을 땐 그저 정겨운 초가지붕으로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층층이 쌓인 짚과 일정한 간격으로 엮인 띠가 정교해보였다. 할머니 한 분이 부엌에서 바가지를 들고 나왔다. 어쩜 그렇게도 생각했던 그대로인지, 할머니는 등장시간을 기가막히게 아는 배우처럼 걸어나왔다.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왔는데요. 집이 멋있어서….” 그제서야 할머니에게는 생활의 터전인 곳에 마음대로 사진기를 들이댔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답 대신 소리없는 웃음이 돌아왔다. “마음껏 구경하라”는 뜻으로 알아듣고 다시 무례함을 발동해 집안 이곳 저곳을 둘러봤다.
“여기 언제부터 사셨어요?” 허락도 받지 않은 인터뷰에 할머니는 어색해하지도 않고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놓으신다. “언제부터는 뭐… 시집와서부터 쭉 살았지. 내 나이가 올해 일흔이니까 그게 얼마야. 숫자는 정확히 몰라. 오십년 됐나….” 그렇다면 이 집의 나이도 쉰살이 넘은 셈. 얄팍한 계산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할머니는 “오십년보다는 훨씬 더 됐지. 한 칠십년…정확히는 나도 몰라. 여기 원래 계속 있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제주도 집은 ‘원래 여기 있었던 것들’의 집합이다. 길가 아무데서나 주워왔을 것 같은 돌들과 돌 사이를 메운 흙, 농촌 어디라도 있을 것 같은 짚(제주도 말로 ‘새’)과 나무토막 묶음들. 돌담이고 흙담이고 지붕이고 있는 자연 그대로의 것들이 재료다. 앞마당에 파랗게 돋아난 잔디들도 제 집에 앉아있는 듯 편한 모양새다.
하나, 그 역시 이방인의 단견일 뿐. 할머니는 지붕관리하기가 점점 더 힘들다고 얘기한다. 1년에 한번씩 지붕갈이를 하는데, ‘새’를 구하기가 힘들어 ‘새밭’까지 가서 ‘구입’해야 한단다. 서귀포시청에서 농사를 짓지 않는 밭을 이용해 ‘띠밭’으로 관리하고 있다. 재료만 있으면 끝나는 게 아니다. ‘띠잇기’도, ‘새갈이’도 아무나 못하는 일이 되어 ‘전문가’가 따로 있다. 물론 30~40년 이웃으로 마음 맞춰 살아온 동네 주민이다. 아무리 아는 사이라도 인건비는 필요하고 재료비까지 더하면 한번 지붕을 잇는데 60만원은 족히 든다. 지붕관리뿐이 아니다. 나무도 전보다 쉽게 썩고 부식한다. 불을 피워 연기가 스며야 나무가 오래 가는데 요즘은 통 불피워 연기낼 일이 없으니 문제다.
흔한 것들은 이제 귀한 것들이 됐다. 이런 옛집을 찾은 것도 행운이었다. 성읍민속마을로 지정해 문화재로 돌보고 있는 250여채의 집들을 제외하면 이제 제주에서도 전통 초집을 찾기가 쉽지 않다. 있어도 벽은 시멘트로 다시 올리고 지붕만 남은 반쪽짜리 옛집이다.
해마다 지붕관리에 돈들고 귀찮지만, 오랜 세월 덮이고 덮여 두툼해진 지붕은 이제 비 한방울 새지 않는다. 20여년 전 태풍으로 무너져 새로 올린 옆동을 두고 할머니는 꼭 옛집에서 주무신다. 흙집이 비에 슬려갈지는 몰라도,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해 이만한 집이 없단다. “정 많이 드셨죠”라는 물음에 “정은 무슨 정…그런거 없어” 하면서도 사진기를 둘러 멘 이방인에게 차근차근 집을 설명하는 목소리엔 애정이 묻어있다.
제주도는 하늘이 길다. 담도 건물도 낮은 까닭이다. 까치발을 하거나 고개를 젖히지 않아도 쉽게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걱정 많은 도시인의 눈길로 한번 더 물었다. “태풍을 견디기에 돌담이 너무 약하지 않나요?” “무너지면 또 쌓으면 되지. 얼마나 높이 쌓는다고 바람을 이겨….” 자연을 이기려고도 거스르려고도 하지 않고 함께 살아온 제주의 지혜가 이 한마디에 담긴 듯하다. 체념이 아니라 이해, 이해보다는 어울림이다. 집 이야기를 한창 하는 동안 어느새 가족들이 모여든다. 그야말로 ‘아들, 손자, 며느리’다. “다복하시다”며 사진 한 장 찍어드리겠다하니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도망가신다. “시골 할망 찍어다 뭐하려고.”
짧은 대화를 나누고 집을 나오면서야 ‘대문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깥의 이야기가 쉬이 들어와 하나가 되는 이유를 알겠다. 기자 역시 바람결에 실려와 흘러나가듯 초집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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