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大海를 거닐다[경북 봉화 축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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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6.08.11 09:05:04
  • 조회: 317
앞이 하나도 안 보일 때가 있다. 장마철 안개처럼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앞으로 나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것 같은 그런 날들이 있다. 누구에게 하소연이라도 해볼까 싶지만 사실 그 누구도 내게 딱 맞는 해답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기에 더욱더 답답하고 괴롭다. 그럴 때는 덜렁 바랑 하나 메고서 ‘짧은 출가’를 결심해보자. 템플스테이 같은 정해진 행사가 아니라, 그냥 절집에서 하루 이틀 묵으며 조용히 ‘나’를 화두로 삼아 내가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생각하는 것이다. 친척에게 꾸어주고 아직 못 받은 돈,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는 회사일, 시름시름 앓고 계신 시골의 부모님, 취직이 아직 안된 나이 찬 동생…. 그 모든 걱정거리들은 놓아두고 바랑 하나 달랑 메고 절집 일주문 안으로 들어오자.
보기만 해도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은 전국 제일의 ‘자연풍광’을 괘불처럼 항상 내걸고 있는 봉화 축서사 같은 곳이면 더욱 좋다. 축서사의 풍광이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서 보는 소백산맥 줄기보다 더 호쾌한 장관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스타일리스트’였던 것이 분명한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답다. 의상이 창건한 양양 낙산사, 영주 부석사, 울진 불영사도 모두 절집의 위치 자체가 그림이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와 스멀거리는 안개가 뒤덮인 해발 1,206m의 문수산 중턱. 사람의 앞날처럼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장마철의 어느날 오후, 경북 봉화군 물야면의 축서사도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보통 종무소에서는 방만 있으면 길손에게 하루를 묵고 가게 해준다. 보통 남녀로 나뉘어 큰 방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방을 쓰게 되는데, 부부라 해도 절에 오면 각방을 쓰는 것이 법도다. TV는 물론 없고, 절집에서는 크게 웃거나 떠들면 안된다. 사찰에 따라서는 묵언을 요구하는 곳도 있다. 축서사는 주지 무여스님이 20년 가까이 하고 있는 불사 덕분에 길손들은 묵기가 편하다. 샤워실, 세탁실, 화장실이 아주 깔끔하게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다른 절집들에선 이런 편리함을 기대하기 어렵다.
오후 6시30분 저녁공양(식사)이 끝나고 9시 소등까지 두시간 동안 산책을 하면서 대웅전 앞에서 보는 소백산맥의 저녁 노을은 어떤 아이맥스 영화관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 그 자체다. 하지만 요즘처럼 비가 흩뿌리는 장마에 그 광경은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 ‘개봉박두’의 예고편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673년 신라의 의상대사가 창건한 이 절에는 예전에 대웅전이었던 현재의 보광전과 그 안에 모셔진 불상과 좌대, 광배, 그리고 괘불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전 옆 보광전에 들러 1,000년도 더 된 불상을 바라보면 불심과 상관없이 그저 세월의 무상함에 빠져 숙연해진다.
절집의 소등시간 9시를 지키기란 쉽지 않다. 평소 같으면 막 퇴근해 저녁을 먹거나, 친구들과 만나 맥주를 한 잔 한다든지, 아니면 미니 시리즈 드라마를 기다리며 밤 9시 뉴스를 보고 있을 때이다. 하지만 절집에서는 속세의 시간과는 다른 시간의 질서가 존재한다.
억지로 뒤척이다 잠이 들었는가 싶은데, ‘탁 탁’ 목탁소리와 함께 염불소리가 창호지 문밖에서 들린다. 시계는 새벽 3시. 스님들이 새벽예불을 알리는 도량석 시간이다. 3시30분부터 대웅전에서 시작되는 새벽예불에 참가하는 것은 절집에서 하룻밤을 지낸 길손의 예의다. 대웅전에서는 주지 무여스님이 벌써 간절하고도 공손하게 예불을 시작했다. 다른 대중들과 일반인들도 졸린 눈을 비비며 부처님께 새벽인사를 한다. 절집은 ‘새벽형’ 인간을 만든다.
1시간가량의 예불이 끝나도 아직 캄캄한 새벽. 이때 다시 잠이 들면 소백산맥이 기지개를 켜면서 깨어나는 모습을 보지 못한다.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탑을 돌거나 도량을 산책하면서 ‘나’에 대한 화두를 들고 있기에 좋은 시간이다. 희뿌연 새벽이 열리자, 공양간 앞에서는 행자스님이 태극권을 수행한다. 절에서 키우는 풍산개 ‘수오’도 스님의 태극권을 따라한다. 바로 그때, 구름은 소백산맥을 들어올려 장엄한 화엄의 망망대해를 펼쳐 놓는다. 아! 그저 아무런 말이 필요치 않은 장관은 그대로 하나의 불교 경전이다. 순간과 영원이 이 장관 속에서 합쳐지고, 나와 세계가 하나가 되는 듯한 그 순간의 경이가 소백산맥의 굽이치는 장관을 품은 축서사의 새벽에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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