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자연이 속삭이네 좀 쉬었다 가볼까[조용헌 교수의 집 ‘휴휴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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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6.08.04 09:08:22
  • 조회: 768
얼 마전 재미있는 집 이야기를 들었다. ‘고수(高手)가 지은 집에 고수(高手)가 산다’는 것이다. 대체 어떤 집이기에…. 궁금했지만 선뜻 남의 집을 보여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궁금증을 견딜 수가 없었다. 고수가 지은 집은 도대체 어떤 집일까?
지난주 폭우를 뚫고 고수의 집을 구경하기 위해 전남 장성군 축령산 자락으로 향했다. 서울 언저리를 맴돌던 비구름도 함께 길을 나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빗줄기가 굵고 사나워지기 시작했다.
우중(雨中)에 웬 집 구경? 돌아서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어렵게 한 약속이기도 하고 장마철에 어느 날이 해가 ‘빤’할지 장담하기 어려워 무조건 강행을 결심했다. 호남고속도로 장성IC를 지나 24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상무대 방면에서 다시 8번 국도로 진입해 축령산 초입에 이르렀다. 저수지 공사장을 지나 산길을 한참 올라가다 보니 묘현사가 나온다. 묘현사 아래 흙집이 ‘고수의 집’이란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언덕배기를 올려다보니 풀과 나무에 가려 집의 몸체는 보이지 않고 무덤덤한 슬라브 지붕만 보인다. 비에 젖은 사립문을 밀고 들어섰다. 묵은 텃밭처럼 마당에는 아무렇게나 자란 풀과 나무들이 무성했다. 예쁜 전원주택이나 예술가의 정취가 느껴지는 집을 상상했는데 실망이었다.
인기척에 쪽마루 미닫이문이 열리더니 인상좋은 아저씨 한 분이 “주인은 안적 안 왔는디, 좀 있으면 올껴”라며 들어오라고 권한다. 안방, 마루, 작은 방이 일렬로 나란히 붙어있는 17평 작은 흙집. 한 발만 옮겨 놓아도 마루고 건넌방이다. 몇 안되는 사람들끼리도 쉽게 부딪칠 듯 협소함이 느껴진다.
‘대체 이런 집이 뭐가 좋다는 거야.’ 25년 전, 탱화를 그리는 일지(一止) 스님이 이 터를 점찍어 놓고 5년 전 집을 짓기까지 전 과정을 보아왔다는 장성 읍내 표구사 아저씨는 생각이 달랐다.
“이 집이야말로 작품이죠. 일지 스님이 한 획, 한 획 그림을 그리듯 공들여 지은 집이죠. 이 벽을 보세요. 두께가 70㎝나 돼요.”
시멘트 한 줌 섞지 않고 100% 황토와 돌, 나무로만 지은 집이라고 했다. ‘자연 그대로’라는 설명이다. 밖에는 여전히 안개비가 흩뿌려 눅눅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실내는 삶아서 말린 행주처럼 뽀송뽀송했다. 황토와 바닥에 깐 숯이 항균과 습도 조절을 하기 때문이란다.
그때 집주인이 돌아왔다. ‘휴휴산방(休休山房)’이라고 이름 붙인 이 집의 주인은 원광대 동양학과 조용헌 교수다. 지난 ○○○ 동안 한·중·일 3국의 600여개 사찰과 고택을 찾아다녔다는 ‘집의 고수’다. 그는 ‘사찰기행’ ‘사주 명리학 이야기’ ‘청소년을 위한 명문가 이야기’ ‘방외지사’ ‘고수기행’ 등 베스트셀러의 저자이자 일간지에 칼럼을 연재하는 문필가이기도 하다. 그가 한 눈에 알아보고 집을 사고 싶다고 얘기했고, 일지 스님은 그 자리에서 비로소 주인을 만났다며 건넸다는 집이다.
주인과 함께 마루에서 안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른 방과 달리 안방은 편백나무로 바닥을 깔았다. 편백 특유의 상쾌하면서도 달짝지근한 향이 코를 찔렀다. 동쪽으로 난 창으로는 문필봉의 비스듬한 능선과 장마철의 운무, 창가에 심어놓은 노송 가지가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출했다.
“앉아서 보면 한 폭의 동양화지만 서서 보면 느낌이 다를 겁니다.”
조교수의 말대로 일어서서 창으로 다가가 밖을 보았다. 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운무들. 앉아서는 정물화였다면, 서서 보는 경치는 잘 찍은 영화 장면이었다.
조교수가 이 집을 알게 된 건 지난해였다. 가슴 속에서 불기둥이 치솟는 것만 같은 느낌의 이상한 병(?)에 시달릴 때 우연히 이 집을 발견했다. 휴양 삼아 머물면서 이 집에 반했다. 창 밖으로 해가 뜨고 달이 지는 모습을 보면서, 사립문을 밀고 나와 쭉 뻗은 편백나무 산책로를 걸으면서 몸과 마음은 자연스럽게 치유됐다.
“문명은 결코 사람을 위로하지 못합니다. 자연과 하나가 된 이 집에서 흙냄새, 나무냄새, 바람냄새를 맡으며 위로를 받죠. 이보다 더한 평온이 없어요.”
조교수는 ‘휴거헐거(休去歇去) 철목개화(鐵木開化)-쉬고 쉬고 또 쉬어, 쉬고 있는 그 마음도 쉬어버리면 쇠로 된 나무에도 꽃을 피운다’는 선담(仙談)까지 들먹였다.
거창한 집구경을 예상했다가 안방과 마루에 앉아있는 것으로 집구경을 끝냈다. 그러나 무릎을 치며, 좋은 집과 터는 자연과 가장 가깝거나 자연 그대로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갈수록 문명의 휘황찬란함에 만취되어 사는 도시인들에게 ‘휴휴산방’은 “이제 좀 쉬거라”라고 말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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