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붉은 언덕’ 의 주인은 누구일까[사하라…]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6.08.02 09:28:46
  • 조회: 261
사하라의 블루맨 모하메드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첫눈에 알아보았다. 그곳을 다녀온 후 가끔 들여다보던 사진 속에 그의 모습이 담겨 있었기에 나는 그의 순한 눈 빛과 붉은 모래를 배경으로 펄럭이던 푸른 옷자락, 그리고 낙타의 줄을 잡고 걸어가던 그의 맨발까지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내 머리에 터번을 고쳐 매어주며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하고 다시 찾아와 준 것을 고마워했다.
사하라…. 내 어찌 그곳을 다시 찾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떠나 올 때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뇌리에 박아두었지만, 생각해낼 때마다 너무나 선명하고 강렬한 이미지들이 날카로운 것으로 콕콕 찌르듯 마음까지 아프게 했다. 메마른 바람이 불어대던 황량한 땅,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붉은 모래바다. 두 눈으로만 바라보기엔 너무나도 광활하여 머리의 옆에도 뒤에도 눈이 있었으면 싶었다. 푸르디 푸른 하늘 아래 바람이 그린 황금빛 모랫결이 새털처럼 부드럽게 줄지어 달렸다. 석양이 지면 온 천지 붉은 모래언덕들이 짙은 그들을 품고 그 위에 낙타의 긴 다리가 더 긴 그림자를 남기고…. 사하라는 너무 아름다웠다.
사실 사하라는 말로 표현될 수도 설명될 수도 없다고 한다. 그냥 살아봐야 하는 곳이란다. 그러니 몇 번 발을 디뎌봤다고 감히 그냥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는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그랬다. 사하라는 나를 부끄럽게 했고 또 겸허하게 했다. 나의 짧은 지식과 경험은 아무 소용 없었고 거리조차 가늠할 수 없어서 눈앞에 바로 보이는 것 같은 모래언덕을 오르다 오르다 끝도 없이 보여 그냥 내려왔다. 어느 곳 하나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아니 닿을 수도 없는 그 땅은 나는 아무것도 아니며,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 알게 했다.
사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노마드(nomad)라고 불리는 그 유목민들은 천년 전 조상들이 처음으로 사하라를 건넌 뒤 지금까지 그 사막의 삶을 지켜가고 있다. 세상이 아무리 급하게 변해왔어도 그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온 그들의 사는 모양새는 예나 지금이나 그리 다르지 않을 듯싶다. 사하라엔 시간도 정지해버린 것일까. 인류가 아무리 놀랍고 훌륭한 것들을 발견하고 발명하고 생산해왔어도 노마드에겐 여전히 물과 가축만이 생명처럼 소중하다. 인디고로 물들인 푸른 터번을 머리 위에 틀어올려 살인적인 태양을 가리고 그 끝자락으로 입을 가려 모래바람을 걸러내며 낙타와 함께 소금길을 걷고 모래바다를 건너며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 중 한 무리로 살아내고 있다.
그렇게 거칠고 잔인한 땅에서 살아온 그들은 놀랍도록 순했다. 일찍이 그 거대한 상대에 복종하고 또 겸손해지는 자세를 배운 것일까. 모하메드와 그의 두 친구들은 다른 도시의 젊은이들보다 과묵하고 점잖았다. 학교 문앞에도 못 가보았지만 아랍어와 베르베르어를 포함해서 5개국어를 무리없이 구사했다. 밤하늘에서 별이 쏟아지는 모래 위 텐트 옆에서 불러주던 그들의 부드러운 노래 소리와 베르베르 위스키라며 끓여주던 민트차의 향기는 잊을 수가 없다. 모래 위를 아무런 어려움 없이 옷자락을 날리며 걸어가던 모습이 얼마나 근사하던지…. 딸아이를 낙타 여섯 마리와 바꾸자고 농담을 해왔을 때 열 마리쯤 준다면 생각해보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번에도 나는 그들에게 어리석은 질문을 했다. 도대체 왜 이곳에서 살고 있느냐고. 그들의 대답은 너무 간단했다. “우리는 노마드니까요.” 물고기에게 왜 물에서 사느냐고 물은 격이었다. 그들의 삶이 너무 힘들고 낙후에보여 해본 우문이었지만 사실 나 자신도 그들이 도시에서 노동자로, 혹은 거리에 좌판을 벌리고, 더 나쁘게는 소매치기로 살아가는 것을 상상하고 싶지 않다. 사막에서는 지도도 없이 밤에도 길을 찾아가지만 도시의 골목에서 너무 쉽게 길을 잃고 헤맨다는 그들에겐 도시의 삶이 두렵기까지 할 것이다. 하지만 많은 노마드들이 도시로 떠났다. 수십 년째 계속된 극심한 가뭄과 연중 강우량 감소로 그나마 살 만한 땅을 잃어가고 가축에게 먹일 물과 풀을 구하기 힘들어져 노마드의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데 지구촌 곳곳의 이상기후 현상은 그곳도 예외가 아니었는지 그 사막에 얼마 전에 폭우가 내렸다. 여행자들이 사륜구동 자동차로 와서 낙타로 갈아타는 지역에 흙으로 지어놨던 집이 반이나 내려앉아 있었다. 사상자도 많이 나고 피해도 심했던 천재지변인데도 그들은 너무나 담담했다. 그들이 겪어온 시련에 비하면 그런 일쯤이야 아무것도 아닌지, 아니면 순한 가축들처럼 주인에게 불평할 줄 모르는 것인지….
정말로 사하라의 주인은 대자연이었다. 때로는 돌풍을 일으켜 어느 누구도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는 사하라는 그 어떤 ‘흔적’도 허락하지 않는다. 지난 세기 유럽인들의 탐험과 약탈로 얼룩진 역사가 지나갔지만 어디에도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다. 수많은 모험과 생존과 죽음의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모두 햇볕에 바래버리고 바람에 날아가버렸다. 그것이 바로 사하라의 매력이다.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글수정
  • 글삭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