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디지털 행자 길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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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6.07.26 09:37:34
  • 조회: 262
전문가 수준의 디카, 초소형 노트북은 그들의 생존무기, 닳고닳은 배낭과 굶어죽지 않을 만큼의 영어실력은 필수다. 길이 있는 곳은 어디든 간다. 때로 고독한 표범처럼 킬리만자로를 오르고, 고행을 자처한 낙타가 되어 사하라를 걷는다.
직장생활 10년을 마무리하고 아프리카로 떠난 은행원, 배낭을 메고 세계일주에 나선 50대 부부, 7개월째 자전거 여행 중인 대학생들도 있다. 이밖에도 트럭을 타고 아프리카 대륙을 누빈 50대 아줌마, 방콕 레스토랑에서 여행경비를 모으고 있는 여대생, 인도로 떠난 여고생 등…. 가위 신인류의 등장이 아닐 수 없다.
사이버 세상에선 그들을 ‘디지털 행자’(Digital 行者)로 칭한다. 그들은 전시대의 여행자들과 분명 다르다. 깃발여행을 거부하고, 남과 다른 길을 추구한다. 사진찍기와 글쓰기에 자유로우며, 어디든 두려움없이 발을 내딛는다.
이 때문에 ‘디지털 행자’가 쓴 에세이류의 여행서적이 앞다투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인터넷서점 YES24의 경우 작년 대비 여행분야 도서의 매출은 43%, 신간 등록은 53% 증가했다. 교보문고 매장에는 그들의 뒤를 따르려는 또다른 ‘(여)행자’들로 매일 북적인다. 그들의 기록은 새로운 땅에 대한 견문록이자, 선험자의 생생한 체험담이다.
그들은 왜 떠나는가. 남들은 생존을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고, 자식을 키우기 위해 뼈빠지게 일하고 있는데…. 서울 광화문의 오피스텔에서 고양이 두 마리와 살면서 여행이 직업인 전지영씨(36)는 “자외선 차단제와 워터스프레이, 두툼한 오리털 점퍼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면서 “여행은 자유를 주지만 이를 쟁취하기 위해 수많은 날들 동안 꿀꿀함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직딩여행가로 불러달라는 조은정씨(32)는 “죽을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고 말했다.
20세기 미디어 이론가인 마셜 맥루한은 30년 전 ‘미래 사람들은 매우 빠르게 움직이면서 전자제품을 이용하는 유목민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 유목민은 유럽 철학자들에 의해 프랑스 학술용어 ‘노마드(Nomad)’로 정리됐다. 이제 유목민은 공간적인 이동뿐 아니라 특정한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가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새로운 생존전략을 통틀어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프랑스 최고의 석학 자크 아탈리도 1998년 펴낸 ‘21세기 사전’에서 디지털 장비로 무장하고 지구를 떠도는 ‘디지털 유목민’의 등장을 예견했다.
‘디지털 행자’들에게 비행기 타고 해외여행에 간다 해서 공항까지 전송나오던 풍경은 쌍팔년도의 추억일 뿐이다. 그들의 이웃도 그들의 존재를 바다 건너 멀리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디지털 행자’들은 또 초원을 순식간에 사막으로 만드는 메뚜기떼의 식욕처럼 닥치는 대로 찍고, 기록한다. 행자들은 실시간으로 그들이 점심때 먹은 음식, 오후에 탔던 낙타의 눈망울을 찍어 사이트에 올린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 기록들을 모아 책으로 내서 스테디셀러 목록에 올린다. 책의 인세는 곧 그들의 여행경비가 된다.
대부분의 디지털 행자들은 어김없이 ‘잡노마드족’이다. 필요할 때 돈을 벌고, 언제든지 떠날 수 있도록 직업까지도 맞춰서 선택한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디자이너, 출장요리사, 건축설계사가 있는가 하면 사전답사를 위해 스튜어디스 생활을 거쳤다는 행자도 있다. 취업포털 ‘스카우트’의 설문조사(2006년 7월, 1,000명 대상)에 따르면 응답자 중 75.9%가 ‘잡노마드족이 되고 싶다’면서 ‘자유로운 삶이 부럽다’고 답했다. 이렇듯 디지털 행자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여러 계층의 사람들 사이에서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떠나야만 ‘행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떠나는 것과 머무는 것이 진정한 ‘행자’와 ‘비행자’의 구분선이 될 수 없다. 첨단 디지털 기기를 창조적으로 사용하면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창의적인 삶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 그야말로 참다운 ‘디지털 행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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