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그냥 좋아 ‘그리는 인생’[ 그냥 좋아 ‘그리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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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6.07.04 09:25:14
  • 조회: 349
올해 서른 여덟인 송상훈씨의 신분은 ‘만화가 문하생’이다. 만화가 마냥 좋아 뛰어든 만화바닥에서 그는 혹독한 시간을 견뎌왔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문하생으로 뽑힌 뒤 지우개질부터 시작했다. 지우개질을 한 지 2년만에 배경만 그리는 배경맨이 될 수 있었고 다시 3년을 기다려 캐릭터의 몸 선을 그리는 ‘몸터치’를 할 수 있었다. 몸터치 2년과 마스크맨 2년을 거쳐 데생맨이 됐다. 데생맨이 되어서야 비로소 연필로 밑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고 본격적인 작가 수업에 들어갔다. 상훈씨가 문하생으로 입문한 것이 1987년이니 벌써 20년이 다 되어간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혼자 만화연습을 하느라 몇블록 떨어진 집에도 안가고 코피를 쏟아온 그는 ‘만화가 송상훈’으로서 데뷔를 앞두고 있다.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에 홀로 작업중인 순정만화 ‘세인트 마리’ 의 작가 양여진씨.
‘만화가가 말하는 만화가(도서출판 부키)’는 송씨처럼 하필이면 만화에 빠져 만화에 인생을 건 사람들의 이야기다. 문하생부터 순정만화가, 학습만화가, 소년만화가, 성인만화가, 인터넷 만화가, 시사 만화가, 만화 기자, 만화평론가 등 만화로 먹고 사는 17명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만화 때문에 학교를 중퇴하고, 만화 때문에 병(신경성 위염 등)에 걸리고, 만화 때문에 생계에 위협을 느끼기도 하는 이들이지만 “왜 꼭 만화냐?”는 질문에는 “그냥 좋아서”라는 대답이 전부다. 어릴 적부터 ‘당연히’ 만화가 좋았고, ‘자연스레’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으며 큰 결심보다는 ‘그저 좋아서’ 만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좋아하는 일은 일로 하지 말라지만 이들은 스트레스마저 만화로 푼다. 하루 종일 만화 생각만하고 만화 때문에 고생하면서도 만화를 그릴 때가 제일 신나고, 펄떡펄떡 살아있는 것 같단다. 그냥 좋은 것만큼 확실한 이유가 있을까. 알을 깨고 나왔다거나 용이 승천하는 태몽으로 태어났다는 설화속 영웅들만큼이나 ‘운명적’이다.
고생담은 역시 눈물겹다. ‘흑신’과 ‘나우’로 잘 알려진 만화가 박성우씨는 신인시절 마감에 맞춰 만화를 그려내다 신경성 위염에 걸렸다. 먹기만 하면 토하고 스트레스로 잠도 못 자 군입대 신체검사에서 키 170㎝에 몸무게 47㎏가 나왔다. 그의 어머니는 군대 가는 아들에게 “가서 좀 쉬다 오라”고 말했다. 양볼이 깊게 파이도록 몸을 해친 그가 정말 싫었던 건 육체적 고통이 아니라 “재미없네”라는 편집자의 한마디였다.
성인만화 ‘대털’의 작가 김성모씨는 몸을 아끼지 않는 취재로 유명하다. 조폭만화를 그리기 위해 술값을 내가며 조폭들의 술자리까지 찾아다녔다. 그는 “내 수법 다 들통났다”며 “포장마차라도 차리게 도와줘야 할 것 아니냐”는 조폭의 협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주로 야간 작업을 하다보니 햇빛 쬔 적이 가물가물하고 병원에서는 그에게 오십견에 식도염, 지방간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교사가 되기를 바라셨던 부모님의 기대를 뒤로 한 채 오직 만화가의 꿈을 지켜온 박수인씨는 ‘달나무의 고양이방’으로 인기를 끈 인터넷 만화가다. 박씨는 수많은 공모전과 출판사 문을 두드리다 원고료도 못받는 연재 만화가로 데뷔했지만 내 그림을 알아봐주는 곳이 있다는 기쁨에 행복했다. 박씨는 악플에 시달리고 조회 수로 평가받는 인터넷 만화가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독자들의 반응이 실시간으로 확인되는 전쟁터에서 “너무 웃겨요! 진짜 재밌다”는 리플을 직접 단 적도 있다고 ‘귀여운 고백’을 하기도 했다.
시작은 맹목적인 애정이었지만 만화에 대한 주관과 비전은 뚜렷하다. ‘애욕전선 이상없다’ 등으로 인터넷에서 돌풍을 일으킨 고필헌씨는 ‘즐거움’ 이상 가는 에너지가 세상천지에 또 있느냐고 묻는다. 내가 즐겁고 다른 사람도 즐겁기 위해 만화를 그린다는 그의 꿈은 최고가 아닌 ‘유일한 만화가’가 되는 것이다. 순정만화 ‘네 멋대로 해라’의 작가 나예리씨는 “디지털 시대라도 창조적인 만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날로그적 신호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여성과 장애’를 주제로 그리는 장차현실씨는 “만화를 보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는 독자들의 한마디에 마감 스트레스도, 연재의 압박감도 다 날아간다”고 말한다.
쉽지 않은 길, 고생을 마다 않는 만화가들은 꿈이라는 주술에 걸려 아파하는 이들에게 말한다. “목숨보다 만화가 더 좋은데 어쩌죠? 라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답은 간단합니다. 그럼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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