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늙은 대통령’ 몰락 ‘뚱뚱한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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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6.06.21 09:36:16
  • 조회: 335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위대한 왕국이 퇴색해 가는 것은 후진 공화국이 붕괴되는 것보다 훨씬 더 서글프다”고 했다. 왕국과 공화국의 정치적 의미는 아무래도 좋다. 당대 최고의 스타가, 이 세상 누구보다 축구를 엄청나게 잘한다고 여겼던 위대한 선수가 퇴색해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서글프다. 4년 만에 만난 옛 사랑. 한명은 이제 늙었고, 또 한명은 배가 나왔다.



◇아트의 몰락, 지네딘 지단

유로 2004 B조 조별리그 프랑스-크로아티아전.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은 앙리의 짧은 코너킥을 보지도 않은 채 발뒤꿈치로 툭 쳐서 수비수 키를 넘겼다. 갈라스의 헤딩이 아슬아슬하게 빗나갔지만 이를 지켜보던 모든 축구팬은 지단의 ‘아트’에 경악했다.

지단의 ‘아트 사커’는 축구를 예술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1998년 월드컵에서 우승했을 때 지단은 ‘대통령 지단’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그는 축구 왕국의 대통령이었다.

그랬던 지단이 2006 독일월드컵에서 초라해졌다. 19일 한국전에서 교체된 뒤 팔에서 빼낸 보호대를 바닥에 팽개치는 장면은 ‘아트’의 몰락을 상징했다.

김영철을 거칠게 밀쳐 경고를 받은 지단은 경기가 끝난 뒤 “심판이 경기운영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트집을 잡았다. 14일 스위스전에서는 경기 도중 튀랑과 설전을 벌이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아트’의 지단은 ‘트집’의 지단이 됐다.

은퇴를 번복해가며 위기에 빠진 프랑스를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킨 지단이지만 2경기에서 ‘공격포인트 0’으 기록했을 뿐이다. 설상가상 경고 누적으로 24일 토고전에는 출전도 못한다. 내분 조짐을 보이는 프랑스가 토고에 이기지 못하면 더이상 이번 월드컵에서 지단을 볼 수 없다.



◇황제의 몰락, 호나우두

98년 프랑스 월드컵. 5명쯤 제치는 것은 신기한 일도 아니었다. 호나우두가 페널티에어리어 안에서 공을 잡고 움직이면 어느새 5명의 수비수가 그의 동작에 속아 자빠졌다. 수비수들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호나우두는 골키퍼마저 제치고 유유히 슛. 자일징요는 “호나우두가 공을 가지고 있을 때는 이미 골을 반쯤 기록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호나우두는 이미 98 월드컵에서 4골, 2002 한·일월드컵에서 8골을 터뜨려 월드컵 통산 골 기록(게르트 뮐러·14골)을 갈아치울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그러나 배 나온 ‘황제’는 이전의 호나우두가 아니었다. 19일 호주전에서 어시스트를 1개 기록했지만 크로아티아·호주와의 2경기에서 슈팅 3개가 모두 골문을 빗나갔다. 유효슈팅은 0. 심지어 슛 기회에서 헛발질을 하는 ‘민망한’ 모습까지 보였다.

파헤이라 감독은 “여전히 건재하다”고 주장하지만 나머지 경기에서 선발 출전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브라질 룰라 대통령마저 “호나우두가 뚱뚱하다”고 비꼬았다. 뚱뚱한 축구 황제는 초라하게 입을 다물고 있다. 황제의 몰락은 그래서 더욱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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