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사진작가 김지연의 ‘공동체박물관 계남 정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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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6.06.08 09:08:22
  • 조회: 384
정미소(精米所)는 한때 ‘권력’이었다. 그곳엔 몇 가마니만 팔면 대학 등록금을 낼 수 있는 쌀가마니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정미소집 아들은 생일날에나 먹던 쌀밥을 매일 먹는다 했다. 하여, 한시절에 방앗간이라고도 불리던 정미소는 ‘밥과 꿈’이 무르익던 풍성한 공간이었다. 사진작가 김지연씨(58)에게도 ‘정미소’의 기억은 각별하다.
“어릴 적 정미소는 풍요의 상징이었죠. 할머니와의 유일한 외출장소였던 정미소는 가난한 현실과 달리 쌀이 펑펑 쏟아져 나오는 마술 공간이었어요.”

어린 시절 기억을 ○○○으며 시작된 김씨의 정미소 기록 작업은 1999년 시작돼 그동안 500여 곳을 훑었다. 나름의 아픈 역사의 실타래 같은 것이기에 사라져가는 것을 부여 잡고 싶었던 욕심에서 출발한 작업이었다.
“똑같이 생긴 정미소를 무슨 재미로 찍느냐며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시골 노인들께서 수상한 눈초리로 바라보시기도 했죠.”
그러나 김씨에게 ‘정미소 사진’은 자신의 삶 속에 묻혀있던 파편들을 하나씩 건져 올리는 작업이었다. 한 때는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고,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기계 소리는 역동적이며 거만스럽게까지 보였다. 그러나 의미를 잃고 뒤로 밀려나는 현실의 풍경은 삶을 반추하는 소재였다고 고백했다.

대략 3년 전부터 정미소가 급격하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김씨는 우리나라 근대 농업 발달의 견인차이자 얼마 전까지도 마을 공동체의 구심점이었던 정미소가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다. 보존 차원에서 ‘정미소’를 하나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때마침 전북 진안군 마령면 계남정미소가 폐업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단숨에 달려갔다. 28년 동안 지금 자리에서 정미소를 해 온 서정석씨 부부는 김씨에게 흔쾌히 정미소를 내줬다.
“정미소를 전시공간으로 개조해야겠다는 구상은 지난 해 가을부터 했어요. 정미소 지붕에 올라가 낡고 삭은 곳을 때우고 알록달록하게 정미소 외장을 칠하고 정미소 안 허드레 공간을 전시실로 꾸미면서 정말 행복했어요.”

60평 남짓한 정미소는 도심의 대규모 전시 공간 못지 않게 아늑하게 꾸며졌다. 그 옛날 ‘정미소’가 마을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한 만큼 이왕이면 마을 공통의 경험과 기억을 나누는 공간으로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름도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www.jungmiso.net)’로 붙였다.
타이틀이 ‘공동체…’인 만큼 지역 주민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다 보니 마을 사람들의 살아온 기록을 정리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형태와 주변환경, 마을의 역사 등 쉽게 지나치는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사진을 통해 만나게 해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사진을 수집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외지에서 온 낯선 여자가 사진첩을 좀 보자고 하는데 누가 그렇게 선선히 내놓겠는가?
“낡아빠진 남의 사진을 가져가서 뭐 할라꼬….” 마뜩찮은 표정들이 역력했다. “할머니, 이 사진 전시해 두면 객지에 있는 자식들이 한번 올 거 두번 오고, 두번 올 거 세번 와요.”

믿기지 않지만 자식들을 더 자주 볼 수 있다는 말에 할머니들은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고리짝을 열고 낡은 사진들을 꺼내줬다. 낡은 앨범에서 꺼내온 사진들은 계남마을 사람들의 혼례풍경, 마을잔치, 남매계 모임, 졸업사진, 수학여행 등 100여점. 대부분 30~50년은 지난 낡고 빛바랜 추억의 사진들이었다.
“사진들을 모아 보니까 참 재미있었어요. 마을사람들이 어떻게 연결되고 관계를 맺어가는지 한 눈에 볼 수 있었어요.” 김씨는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 개관전으로 ‘계남마을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달고 계남마을 사람들의 추억의 사진들을 전시했다.
마을 이장직을 맡아 16년이나 계남마을을 이끌어온 장진권씨(62)의 혼례 사진, 전동규씨(65)의 남매계 사진, 최정자씨의 초등학교 졸업식 사진 등을 내다 걸었다.

사진전이 열리면서 계남마을에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도통 사람 구경이라고는 하기 어려운 산골 마을에 솔솔 사람 냄새가 풍겨나고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객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이 부모나 가족 사진이 걸린 전시를 보기 위해 일부러 찾아왔다. 문 밖 나서기를 주저하던 어르신들이 정미소를 찾아와 곧잘 옛날이야기를 풀어놓고 돌아간다.
“예전에는 배가 고팠는데 요즘은 말이 고프다”는 87세의 한 할머니는 하루종일 말 한마디 할 데가 없다가 박물관에 나와 사람구경도 하고 말구경도 한다며 좋아했다. 전북 진안군 마령면 계남정미소. 이제 그곳은 쌀을 찧지는 않지만 이야기와 인정을 빻는 ‘아주 특별한 정미소’ 로 거듭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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