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시계수리 명장 이희영씨 3父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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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6.05.31 09:14:04
  • 조회: 781
‘시계수리공’이라는 직업에선 ‘굴뚝청소부’만큼이나 낡은 냄새가 난다. 눈만 들면 디지털시계가 반짝거리는 시대, 아날로그 시계를 수리하는 건 아무래도 사양(斜陽)이 짙다. 그것도 아버지와 아들이 대(代)를 이어 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시계수리의 명장 이희영씨(52) 3부자는 ‘천만의 말씀’이라고 말한다. 디지털시대에 멀미를 느끼는 사람들이 늘면서, 아날로그를 고집하는 시계 마니아가 증가하면서 그들의 직업이 갈수록 빛난다. 게다가 웬만한 손기술로는 고치기 힘든 명품시계가 늘면서 그들의 존재는 더욱 빛난다. 시계 수리가 사양사업이라는 통념을 깨고 전성시대보다 더 확고한 시장을 확보한 ‘3부자의 블루오션’ 이야기는 디지털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다.



#아버지와 아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읍내 시계점 앞에서 갖가지 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정신없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시계에 반한 아버지 이희영씨. 시계점 점원으로 들어가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우다가 더 좋은 기술을 익히려 서울에 있는 기술학원에 등록, 1974년 시계수리 1급 기능사 시험에 합격했다.

“그때는 국가적으로 기능을 장려했기 때문에 기능사 합격자 명단을 뉴스에서 발표할 정도였어요.” 귀갓길 버스 안에서 합격자 명단을 들었다는 이씨는 말할 수 없는 환희와 기쁨을 느껴 1급에 머물지 말고 기능올림픽에 출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국제대회 운은 따라주지 않아 국내 대회 수상에만 만족해야 했지만, 지난 2001년 시계 수리에 대한 탁월한 기술과 사회적 기여를 인정받아 우리나라에서 단 4명뿐인 시계 수리 명장으로 지정됐다.

“60~70년대는 시계를 착용하는 것 자체가 자랑스러운 때였어요. 80년대부터 시계 착용 인구가 증가하면서 그 만큼 시계 수리도 많아서 황금기를 맞았죠. 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 시계수리업은 내리막길로 돌아섰어요.” 태엽을 돌려 시계를 움직이던 시대에서 전지를 사용해 시계가 돌아가게 하는 전지 시계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또 1만원 안팎의 저가 ‘일회용 시계’가 넘쳐나면서 고장 난 시계를 수리해서 다시 사용하는 시대는 끝나는 듯 보였다. 이명장은 가장 어려웠던 그때를 떠올리며 그래도 시계 수리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오늘이 있었음을 확신한다고 말한다.

“태어나서 눈으로 뭔가를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본 것이 아버지가 시계를 수리하는 모습이었어요.” 장남 윤호씨(30)에게 시계 수리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시계 수리에 입문한 윤호씨는 96년 시계 수리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 지난해에는 스위스 산업시찰연수까지 다녀왔다. “시계의 뒤 뚜껑을 열어보면 같은 브랜드의 같은 제품이어도 다 달라요.” 다 같은 시계인데 뭐가 다를 게 있을까 싶어도 윤호씨는 하나도 같은 시계가 없단다. 늘 새로운 얼굴, 새로운 문제로 다가오는 시계가 신기하고, 그러한 문제를 고치고 해결하는 일이 즐겁다.

“아버지가 교육보다 경험을 통해 기술을 배웠다면, 저는 아버지의 경험에다 이론을 보완해 시계수리 분야에 학문적 체계를 정립하고 싶습니다.” 과묵하고 조용한 윤호씨는 평소에는 별 말이 없다가 시계 이야기만 나오면 눈이 반짝거린다.

둘째 인호씨(28) 역시 시계 명장의 아들답게 일찌감치 이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 전기 기술관련 자격증을 모두 취득했다. 활발하고 영업 마인드가 확실한 그는 최근 구미에 따로 매장을 낼 정도로 적극적이다.

“밖에서 볼 때는 잘 몰랐는데 이 분야에 들어오니 아버지가 정말 대단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명장이 거저 되는 게 아니구나! 싶을 정도로 아버지의 한치 오차도 없는 기술과 끈기, 집념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인호씨는 “저도 이 일을 계속하겠지만 나중에 제 아들에게도 물려주겠다”며 자신했다.



#아름다운 대물림-한 분야의 최고가 되어라!

두 아들에게 아버지는 가장 혹독한 스승이자 후견인이다. 원칙에 충실하고 내 물건이라 생각하며 고치라고 가르친다. 기술자가 기술이 없는 것은 죄악이라는 이명장은 자격없이 남의 물건에 손을 대 피해를 주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지금도 이명장은 아들들이 고친 시계를 자신이 다시 확인하고, 또 자신이 고친 시계는 아들들과 돌려보면서 무엇이 잘 됐고, 부족한지 이야기를 나눈다.

32년 시계 수리 외길 인생, 우리나라에서 단 4명뿐인 시계 명장. 그의 살림살이는 어떤지 궁금했다. “큰 돈은 못 벌었어도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어제는 한 손님이 아버지에게 물려받았다면서 1967년산 롤렉스 시계를 가지고 왔습니다. 깨지고, 상처가 나 엉망인 시계였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깨끗하더라고요. 수리하면 40년 정도 더 찰 수 있다고 했더니 그 손님이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신 것처럼 좋아하더라고요.” 이명장은 시계 수리의 보람은 집 곳간을 채우는 것보다 마음의 곳간을 채우는 일인 것 같다고 웃었다.

우직하게 한 길을 걸어가는 아버지. 그 아버지의 뒤를 따라 걸어가는 두 아들의 모습이 정겹고 든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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