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왕릉[역사가 있는 능, 궁금증 풀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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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6.05.26 08:55:09
  • 조회: 228
한나절 가족 나들이 코스로는 왕릉이 딱이다. 한데, 왕릉에 대해 혹시 궁금한 점은 없으시던가? 왜 정자각 정면에는 계단이 없는지, 넓적돌(박석)을 깔아놓은 길은 두 줄로 돼 있는지, 왕릉 주변의 숲은 소나무가 그리 많은지…? 모두 이유가 있다. 혹시 왕릉에 가거든 아이들과 재미있게 역사이야기나 한 번 해보자.



-왕릉 앞엔 왜 붉은 문이 있을까?

여기부터 성역입니다

매표소를 지나 왕릉에 들어서면 제일 처음 만나는 게 홍살문(붉은 칠을 한 문)이다. 여기서부터는 성역이라는 뜻. 한데 홍살문은 왕릉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충신, 효자, 열녀 유적지에도 홍살문이 있다. 성현을 모신 사당에도 있고, 향교에도 있다. 홍살문에는 태극문양이 걸려 있다. 태극문양은 신라 때부터 유래했다. 어가 행렬에서도 지금과 똑같은 모양은 아니지만 태극모양의 깃발을 걸었단다. 홍살문 바로 옆에는 4각형의 돌판이 있는데 이 돌판을 배위(拜位)라고 한다. 왕이 돌아가신 선왕을 위해 절하는 장소. 여기서 퀴즈 하나. 왕에게는 절을 몇 번이나 했을까? 죽은 사람은 두 번, 부처에게는 세 번, 왕에게는 네 번이다. 왕에게 예를 갖추고 절을 하는 것을 국궁사배(鞠躬四拜)라고 한다. 살아있는 임금의 권세가 내세의 부처 권세보다 높다니…. 이래서 대권, 대권 하나 보다.



-홍살문~정자각 길은 왜 두 줄로 되어 있을까?

왼쪽은 영혼길, 오른쪽은 참뱃길

홍살문을 지나 펼쳐진 길은 넓적한 박석을 깔아 놓은 길이 정자각까지 뻗어있다. 그런데 왼쪽은 조금 높고, 오른쪽은 조금 낫다. 그리고 정자각 바로 앞에는 계단이 없고 오른쪽으로 돌아가야 계단이 보인다. 이 길이 참도(參道), 즉 참뱃길이다. 이중 높은 왼쪽 길은 영혼이 다니는 신도(神道)다. 하여, 참배하러 온 임금도 이 길로 다니지 않았단다. 오른쪽 낮은 길이 임금이 다닌 길, 어도(御道)다. 참도는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가게 돼있다. 신도에는 돌난간이 있지만 그 옆에는 돌난간이 없고 계단만 있다. 오른쪽으로 들어가 왼쪽으로 나가는 동입서출(東入西出)이 일종의 규칙. 서원도 이와 비슷하다. 위패를 모신 사당도 문이 세 개. 가운데 길은 영혼이 다니는 길이고, 오른쪽으로 들어가 왼쪽으로 나온다. 참고로 정자각은 정(丁)자 모양으로 돼있기 때문에 정자각이라고 한단다.



-왕릉 앞에 서있는 돌기둥과 조각은 무슨 뜻을 담고 있을까?

왕을 호위하는 호랑이· 양· 신하…

왕릉을 꾸미는 데도 다 격식이 있다. 조선시대는 예(禮)를 중시하던 시대. 왕릉 주변에는 호랑이상, 양과 말의 모습을 한 석상, 문인상과 무인상을 세웠다. 호랑이는 산을 지킨다는 의미, 양은 사악함을 물리치고 영혼을 위로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문인상, 무인상은 왕을 호위하는 신하. 진시황릉에서 나온 병사와 말처럼 내세에서도 언제든 왕의 부름을 받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뒤에 담장은 굽어있어서 곡담이라고 한다. 그리고 돌기둥을 망주석이라고 하는데 옛날 사람들은 죽은 영혼이 망주석을 보고 찾아온다고 생각했다. 그럼 왕만 이런 석상을 세웠을까? 양반들도 양과 말의 석상을 세우기는 했지만 호랑이는 왕만 했단다. 장명등(長明燈)이란 석등도 있는데 빛이 사악한 어둠을 물리친다는 의미다. 여기서 퀴즈 둘. 구리 동구릉의 경릉(헌종의 능)은 2명의 왕비와 함께 묻혀 봉분이 3개나 있는데 왕이 누운 자리는? 답은 제일 왼쪽이다.



-왕릉 주위에는 왜 소나무가 많지?

위엄·긴 수명 ‘나무의 어른’

조선시대때 가장 품격이 높은 나무가 바로 소나무였기 때문이다. 사시사철 푸른 빛을 띠고 있어 왕실의 위엄을 보여주기 때문. 게다가 송충이 외에는 벌레도 없고 깨끗하며 수명도 길다. ‘본초강목’에는 ‘소나무는 모든 나무의 어른’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게다가 소나무는 우리 민족에게 가장 친근한 나무. 옛사람들은 소나무로 지은 집에 살고, 소나무 관에 들어가 죽을 정도로 소나무를 가까이 했다. 임금의 관은 소나무 중에서도 최상급인 황장목(黃腸木). 속이 노란 색을 띠어 이런 이름이 붙었단다. 왕실에서는 이런 목재를 보급하기 위해 산을 따로 관리했으며 다른 사람의 출입을 엄격히 금했다. 이런 제도를 봉산(封山)제도라고 한다. 민간에서도 마찬가지. 무덤 가에 심은 소나무를 가리켜 도래솔이라고 하는데 소나무가 시신을 쉽게 부패시키지 않으며 후손이 창성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또 음양오행설에 따라 음택 자리는 방위상 북현무(北玄武). 현무는 거북을 상징하는데 소나무 껍질이 거북등처럼 갈라져 있어 음택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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