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고집은 지키고 욕심은 버렸다[무공해 수제 전통차 만드는 정소암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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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6.05.26 08:54:19
  • 조회: 316
정소암씨(41). 경남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 주차장에서 오르는 맨 꼭대기 집에 살면서 전통차를 덖는 여인이다. 철저히 무농약을 고집하고 차 나뭇가지 전지를 일일이 손으로 하는 고집쟁이이기도 하다.
오로지 땅심과 손맛에 의지해 농사를 짓는다. 그가 만드는 차는 무공해, 100% 수제차다. 녹차의 상품화, 대량생산의 길이 열리면서 수제차는 힘만 들뿐 돈이 안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정씨는 수제차만을 생산한다.
“딸 하나 공부만 시킬 수 있으면 돼요. 특별히 수제차에 대한 철학이나 고집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부모님이 해 오신 대로 하다보니 그렇다”며 웃음을 지었다.

말이 그렇지 주변에서 모두 손쉬운 기계차를 만들고 농약과 비료를 뿌려대면 흔들릴 법도 할 텐데…. 더군다나 “남들 다 기계차 하는데 뭐 그리 잘났다고 혼자만 수제차야!”하는 질시와 비난도 적지 않았을 텐데.
“‘세상이 술에 취해 돌아가면 술찌끼라도 먹고 취해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나중에 보자 하는 오기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땅심을 믿고 무공해 수제 농법만을 고집해 온 정씨의 믿음이 최근 결실을 맺고 있다.

“곡우(穀雨) 무렵에 따는 우전이 최고인데 올해는 날씨가 쌀쌀해서 곡우가 지나도 다른 차밭에는 움조차 트지 않았어요. 그런데 우리 차 밭에는 곡우 1주일 전부터 잎을 따기 시작해 그 후에도 웃자란 잎들을 몇 차례나 걷어 내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동네사람들이 어떻게 된 거냐고 궁금해하며 구경하러 몰려들 정도였어요. 그게 바로 오염되지 않은 건강한 땅의 힘이 아닐까 싶어요.”

수제차는 농사만 아니라 제다에도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400도의 고온에서 손으로 차를 덖어야 하니까 손톱 밑이 헐고 벌어지기 일쑤. 또 차를 덖을 때는 화장실도 못가고 비누 세수는 물론 고기, 마늘 등 강한 향이나 음식은 피해야 한다. 차의 맛과 향을 가늠하는 후각을 지키기 위해서다. 어디 그뿐인가. 여러차례 차를 덖어 나쁜 기운을 빼내면서도 잎이 바스라지지 않도록 솜털 날리듯 조심스럽게 덖어야 한다. 한번 작업장에 들어가면 20시간 이상 서 있어야 하고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정씨에게 작업장은 구도의 장처럼 경건하고 송곳처럼 날카롭게 정신을 세워야 하는 곳이다.

정씨는 12년 전 남편을 암으로 잃고 두 돌이 지난 딸아이 손을 잡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어릴 때부터 차농사를 거들고 구경해서 차라면 지긋지긋했는데 차농사에 인생을 걸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느 때인가 차농사가 숙명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다면 내가 만드는 차는 뭔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정씨는 차(茶)의 한자를 가만히 뜯어 보았다. ‘艸+人+木’. 풀과 사람과 나무가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하니까 차나무에 주는 손길이 아이에게 주는 손길과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리고 그는 “차는 마음으로 가는 음식”이라고 주장한다. 정씨는 차가 정말 좋은 것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며 차를 통해 화를 삭이고 분노를 다스린 이야기 하나를 소개했다.

“예전에 신용카드로 냉장고를 할부로 구입했다가 대금을 갚지 못해 독촉을 받은 적이 있어요. 카드사 직원이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과 저주를 퍼부었어요. 빚을 진 건 잘못이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본사로 전화를 해 항의를 했어요. 그날 밤, 자정이 되어갈 무렵에 제게 욕설을 퍼부었던 그 직원이 서울에서 하동까지 사과하겠다며 찾아왔어요. 정말이지 그 사람의 얼굴을 대한다는 것 자체가 소름끼치고 싫었어요. 잠깐 기다리시라면서 찻물을 올려놓고 차를 끓이는데 그 사이 나도 모르게 분노가 가라앉더군요.”
정씨가 수제차를 고집하는 이유는 우리 조상들이 해오던 수제차의 전통과 역사를 지키고 싶어서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의 차문화는 주로 향유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되어 왔으나 생산자의 측면에서도 지키고 계승해야 할 것이 있다”고 말했다.

수제로 하다보니 소량 생산을 할 수밖에 없어 더 많은 사람에게 좋은 차를 공급할 수 없는 것이 아쉽지만 욕심내지 않을 생각이다. 사시사철 밭두렁에서 차나무를 보살피고, 인대가 늘어날 정도로 육체를 쓰지만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정씨의 모습에서 깊고 은은한 차의 향기가 배어났다. 어쩌면 세상은 정씨처럼 우직하고 묵묵하게 자기 길을 걷는 사람들 때문에 변화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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