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한국에서 키우는 ‘여성1호’의 꿈[이대 제3세계 개도국 네명의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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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6.05.12 08:48:45
  • 조회: 301
머리에 스카프를 두른 모슬렘 소녀, 낯선 피부색의 이국적인 아프리카 소녀들. 그러나 왠지 모를 이질감은 이들의 활기찬 첫 인사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안녕하세요, 숙제가 너무 많아요.” 서툰 한국어로 재잘대는 4명의 소녀들. 이들은 이화여대 EGPP(이화 글로벌 파트너십) 장학생으로 선발돼 머나먼 한국까지 찾아온 아프가니스탄, 케냐, 모잠비크의 학생들이다.
칠레와 라이베리아의 첫 여성대통령, 독일의 첫 여성총리….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헌정 58년 만에 첫 여성총리가 탄생하면서 한동안 ‘여풍이 전지구를 휩쓸고 있다’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이얼을 한번 돌려보자. 바로 그 옆 채널에선 아프리카의 ‘여성할례’, 아랍국가의 ‘명예살인’을 다룬 다큐멘터리들이 방송되고 있다. 동시대, 같은 행성에 살고 있는 여성들이지만 그들의 인권은 마치 다른 시대, 다른 별에 사는 것처럼 격차가 심하다. ‘여풍’이 거세다지만 지구촌 한쪽에선 복지와 교육받을 권리에서 소외된 여성들이 많다.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는 곳곳에 널려 있다.
이화여대에서 제3세계 개발도상국 소녀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키로 한 것도 그런 취지에서다. 80~90여년 전, 우리나라의 ‘여성 1호’들이 다른 나라로부터 받았던 도움을 이젠 돌려줘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첫 여성대통령을 꿈꾸는 라솔리 자하라(22·사회과학부)는 스스로를 ‘운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은 교육 전과정이 무료지만 그 기회를 누리는 것은 대부분 남학생들뿐이죠. 어차피 여자는 결혼하면 그만인데 뭐하러 공부하느냐는 거예요.”
초등학생 여학생 비율은 20~30%에 불과하다. 게다가 학년이 올라갈수록 급격하게 줄어든다. 이르면 10살부터 시작해 보통 14~15살이면 결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자하라는 개방적인 부모님을 만나 다른 3명의 오빠들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며 고등학교까지 졸업할 수 있었다. “다른 부모님 같았더라면 아마 지금쯤 저도 친구들처럼 아이를 둘 셋씩 낳았겠지요.” 아프간에서 자신은 이미 엄청난 ‘노처녀’라는 그녀의 너스레에 모잠비크와 케냐의 친구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그러나 모잠비크도 크게 다르진 않다. 우투이 나디아(18·건축학과)는 “양극화 현상이 심해서 시골의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설명했다. 도심의 학교는 모든 아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지만, 시골 아이들은 학교가 너무 멀어 다닐 수가 없다. 농사일을 돕고 물건을 내다파느라 중학교조차도 마치지 못한다. “특히 여자는 이른 출산 때문에 공부하기가 더욱 쉽지 않죠.” 아프리카 역시 아직 조혼 풍습이 남아 있다. 심지어 5살때 결혼하는 경우도 있어 꿈을 펼쳐보기도 전에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그러나 케냐 등 아프리카엔 최근 원치 않는 결혼을 당하는 경우, 신고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센터들이 늘어나고 있다. EGPP 장학생으로 수석 입학한 케냐의 무틴다 아델라이드는 이대를 졸업한 후 UNDP 같은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게 꿈이다. 무틴다는 “열심히 공부해서 꿈을 이룬 후 결혼은 28살 때쯤 하고 싶다”며 웃었다. 당차게 포부를 밝히는 그 모습은 여느 여대생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이들 모두는 본격적인 전공 공부에 앞서 이번 학기 동안은 한국말을 배우느라 정신없이 바쁘다. 새벽 2시를 넘겨 잠자리에 들기도 일쑤. 이날도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숙제를 하러 바쁜 걸음으로 기숙사에 돌아갔다.
아프가니스탄의 첫 여성대통령, 내전으로 파괴된 도시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모잠비크의 여성건축가, 케냐의 IT 산업을 책임지는 여성 컴퓨터 전문가…. 언젠가 이들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각각 ‘여성 1호’로 꿈을 펼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우리는 그들이 우리나라를 거쳐갔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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