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쓰르라미 9년 울음 詩가 되었소 [치악산 정착 9년 세월 시집으로 낸 김백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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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6.05.01 10:20:18
  • 조회: 241
여름이면 사방에서 쓰르라미 울어대는 소리에 밤잠 이루기 힘든 치악산 동남편 해발 400m의 작은 골짜기. 김백헌씨(50)가 그곳에 스며든 지도 어느덧 9년이 흘렀다. 그의 집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은 주천강물이 되어 영월 청령포를 돌아, 정선 아우라지를 돌아온 동강과 합쳐진다.
아랫마을 사람들은 그가 살고 있는 골짜기를 ‘샛골’이라 불렀다. 그러나 그는 골짜기에 ‘우화치(羽化峙)’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 아는 이들이 그의 집에 술타령 와서는 ‘색꼴’에 오니 술맛이 좋다는 등 농을 하는 것이, 그보다 이곳에 먼저 와 살고 있는 나무며 들풀을 희롱하는 것같아 미안해서다.
‘우화(羽化): 번데기가 날개있는 벌레로 변하는 것’. 쓰르라미는 우화과정이 제일 긴 매미과이다. 그는 쓰르라미와 함께 보낸, 지난 9년간의 우화과정을 얼마전 ‘쓰르라미 울어 울더니’란 시집으로 엮어냈다.

<font size=2><b>#우화치(羽化峙)의 우화(寓話) </b></font>
반짝이는 별은 밤에 뒷간 갈 때 길을 밝혀주는 벗. 알록달록 야생화는 아는 이들이 놀러와 감탄하면 그제서야 ‘이게 언제 폈나’ 싶은 공기같은 존재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면 고라니가 후다닥 도망가는 평온한 자연. 단조로울 만큼 고요한 일상이다.
이곳에 정착할 때 그가 직접 흙으로 벽돌을 만들고, 나무를 다듬어 지은 황톳집. 그 옆의 뒷간은 아내와 돌을 날라 ‘푸세식’으로 지었다. 엉덩이는 좀 시리지만, 덕분에 분뇨는 거름으로 쓰고 계곡을 흐르는 개울물은 아침 산책에서 돌아올 때 손으로 한모금씩 시원하게 떠마실 정도로 맑다.
그가 규칙적으로 하는 유일한 노동은 돌담과 돌탑을 쌓는 일이다. 아내와 단둘이 먹을 만큼만 짓는 농사야 일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 2년전 쓰르라미가 유난히도 꺽꺽 울어댔던 그날부터 돌담을 쌓기 시작했다. 그의 아내가 유방암 진단을 받은 날이다.
그의 시에는 유난히 아내가 자주 등장한다. 우화치 골짜기에 단 둘이 살다보니 등장인물이 빈곤할 수밖에 없는 탓도 있지만, 미안하면서도 고마워서다. 산에 가 살자고 했을 때 밭만 갈아주면 나락심고 화초심어 살겠다며 말없이 먼저 이삿짐을 챙기던 아내였다. ‘남자가 아픈 건 하늘의 뜻이고 여자가 아픈 건 남자 탓’이라며 그는 돌탑을 쌓기 시작했다.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한 돌탑은 이젠 그의 집으로 이어지는 골짜기 언덕길에 긴 행렬을 이뤘다. 다행히 까까머리였던 아내는 이제 파마를 할 수 있을 만큼 머리카락이 자랐지만 지금도 그는 돌탑과 돌담을 쌓는다. “참 신기하죠? 돌담의 이 자리엔 이 돌이 아니면 아귀가 맞지 않아요. 계곡에 굴러다니는 하찮은 돌들도 다 제 자리가 있답니다.”

<font size=2><b>#날개를 달고 세상으로 나가다 </b></font>
9년전 잘 나가던 사업을 접고 치악산으로 들어온 건 서른에 했던 자신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섣불리 사업에 손을 댔다 쫄딱 망해 맨주먹으로 새출발을 해야 했던 그해, 그는 ‘앞으로 딱 10년만 죽어라 일하고, 마흔이 되면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다짐했다. 귀걸이 이미테이션 오퍼상, 개량한복 회사, 출판회사…. 장사치로 황금기에 접어들자 곧 마흔이었다. 미련없이 사업을 정리했다.
그리고 쉰이 된 지금. 고추모를 심다 말고 졸졸 흐르는 도랑가에서 흙 묻은 손으로 메모하고, 장작불 피우다 시커멓게 재묻은 손으로 쓴 글과 사진들을 시집으로 엮었다. 시집 한권 없는 그가 시집을 낸 것은 이제 40대의 우화를 끝내고, 다시 세상에 나아가며 던지는 조심스러운 인사말이다. 50대에 접어든 그는 날개를 단 번데기처럼 자유롭게 세상과 부대끼며 마주할 준비가 돼 있다.
그 새로운 도전의 시작은 ‘문화 생활협동조합’. 출판업을 한 덕분인지 유난히 문화에 관심이 많은 그는, 치악산 자신의 황톳집 옆에 가난한 문인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작품구상을 할 수 있는 공간을 한채 더 짓고 있다.
문화생협이란 생소한 개념은 문화의 유통과정을 언론매체가 독점하면서 문화 소비자가 소외받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 문화 생산자와 문화 소비자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자는 게 그의 목표다. 소설가 원재길씨, 시인 이상희씨, 판화가 정비파씨 등이 발기인으로 참여한다. 그는 “이상하게 나이를 먹었는데도 세상 돌아가는 모양이 여전히 못마땅하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문화생협은 오는 28일 발기인 대회를 거쳐 5월20일 창립행사를 갖는다.
쉰살이 된 지금도 내일이 안올 것처럼, 어제를 잊고 씩씩하게 오늘을 살아가는 백씨. 그는 마치 치악산 계곡의 쓰르라미처럼, 9년간의 길고긴 제2의 우화를 마친 후 갓 뻗은 날개를 달고 세상을 향해 조심스레 목청을 돋워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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