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평범을 추구해 더 특별한 조각가 강신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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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6.04.21 08:50:23
  • 조회: 366
길을 가다가도 문득 일탈의 유혹에 멈칫 서버릴 때가 있다. 가지고 있는 것, 누리고 있는 것들이 모두 안전한 상태에서의 일탈은 누구나 꿈꾸는 일이다. 하지만 흔한 것, 평범한 것들에 대한 동경으로 치열하게 삶을 다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조각가로 안보여요?”
고운 얼굴에 적당한 주름, 세련된 차림새에 어울리는 반지와 브로치, 상냥한 웃음, 거기에 차 한잔 하며 얘기 나누기 딱 알맞은 거실같은 작업실…. 조각가의 작업실에 들어선다는 선입견이 만들어낸 작은 긴장감마저 완전 해제시켜 버리는 힘. 작품이라거나 예술세계같은 것들은 모두 날아가버리고 두런두런 얘기가 꼬리를 물자 생각에 잠겨 있던 그의 돌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옹기종기 얘기에 끼어든다.

“산책을 하다보면 시냇물 속에서 이끼가 끼어 미끈거리는 작은 돌들을 만나죠. 흙더미에 반쯤은 묻혀 있는 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 흔적들을 꺼내어 조금만 다듬어주면 사람들이 쳐다보며 말을 걸어주지요.”
그의 돌들은 모두 얘기를 하고 있다. 웃고 있다. 따뜻하다. 수줍어도 한다. 거만, 차가움, 단단함과는 거리가 멀다. 거친 표면에 비, 바람, 흙, 발길에 깎이고, 떨어져나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는 천진한 아이처럼 앞으로, 뒤로, 거꾸로, 옆으로 여기저기 어울려 있다.
“뭐든지 오래 묵으면 자라나지요. 생각도 자라고 나쁜 맘도 자라고, 큰 마음도 자라고…. 모두들 고개들고 나보란듯 사는 세상에 작은 돌이라도 겸손해서 작아져 있는 거예요. 구부리고 웅크리고 있어서 그렇지 펼치면 얼마나 클지 모르죠. 사람들이 그러죠. 왠지 내 돌 앞에 서면 고백하고 싶어진다고.”

그의 돌들은 겸손해서 작아져 있다. 따로 떼내어도, 끼워 맞춰도 언제나 전체 같기도 하고 조각 같기도 한, 퍼즐 같은 그의 ‘집적’시리즈는 가장 흔한 돌, 화강암이 얼마나 작게 웅크리는지, 또 무한히 펼쳐지는지를 보여주는 단면들이다.
‘자라나는 돌’이라는 이름을 붙여 22번째 개인전(진화랑, 11~21일)을 열고 있는 조각가 강신덕(53).
“내가 매일 나를 놀려요. 1백만등이라고. 그러면서 욕심을 줄이죠. 5개 할 수 있으면 4개만 하죠. 그래도 1백만등 안에 들기 힘든데…. 최선을 다해 주부노릇, 엄마노릇, 선생노릇 하면서 작업도 쉬지 않으려 하죠. 예술가들 특별하게 사는 사람으로 보지만 평범하게 사는 예술가도 한 명쯤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좀 더디게 느리게 하죠. 두 가지 노선 모두 어긋나지 않으려다보니 세월이 너무 많이 흘렀네요. 가끔 마음이 급해질 때도 있죠. 모차르트는 30대에 타계했는데도 작품이 600곡이 넘잖아요. 난 이제 겨우 이백 몇십개밖에 안되는데….”
4년 전, 청담동 작업실 자리에 아담한 건물을 짓고 갤러리(피시, PICI)를 열었다. 건축설계를 전공하는 딸과 함께 설계하고 디자인했다. 해외 작가전 때마다 전시를 담당하는 한지민씨(28)는 큐레이터 경험을 쌓으며 장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갤러리 관장들 회의에 나가면 처음엔 그랬죠. 조각가 그 강신덕이잖아. 작가가 갤러리를 잘 운영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좀체 안드나 봐요.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도 사실 별로 없고…. 한 사람쯤 있어도 괜찮겠다 싶어요. 의외로 제가 잘 하고 있는 것 같고…. 저도 지금 제 자신을 실험하는 거죠. 22번 개인전을 열었으니 적어도 22명의 갤러리 관장과 인연이 있죠. 이제는 고백할 수 있는 눈물나는 얘기도 많죠. 갤러리 관장 노릇을 잘 하면 정말 좋은 선배가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가끔 대선배가 전화하시죠. 좋은 자리에 작품 놔달라고…. 그럴 때 더 열심히 하게 되죠. 사실 좋은 작품은 어느 구석에 놔도 돋보이게 마련이지만 그 마음이 애절하잖아요.”

속으로는 매일 자신을 놀리면서 작업하고, 겉으로는 매일 자신의 능력을 실험하며 선배노릇, 엄마노릇, 선생노릇 하려는 그의 삶은 한없이 작아지고 한없이 펼쳐지는 그의 돌들과 닮아 있다. 특별함이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사랑받는 시대다. 특히 예술가들은 특별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적어도 예술가가 아닌 사람들에게 예술가는 그렇게 각인되어 있다.
“사람과 사람도 그렇고 내가 만지는 돌도 그렇고 언젠가 다 만남이 정해져 있는 거예요. 언젠가 만날 인연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그게 전시가 되고, 인연이 되고…. 그렇게 지금까지 온 것이지요.”

누구 한 명이 우뚝 서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며, 더불어 함께 사는 것에 온 힘을 바치는 그를 닮은 돌들은 산길에 흐트러진 돌들처럼 ‘언제나 헤쳐 모여’ 자세로 누군가 걸어오는 말에 마음을 열고 몸을 움직인다. 한명 정도는 필요할 것 같은 모범생이 꿈이라며 치열한 작가의 작업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그의 말이 부드럽게 마음을 휘감는다.
“작품은 자기가 자기한테 체면 걸어서 스스로에게서 뽑아내는 거지. 주변 사람 괴롭힐 일은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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