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어둠속에서 풍선의 꿈을 보았습니다” [시각장애 풍선아티스트 고홍석씨]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6.04.14 09:41:31
  • 조회: 307
“제가 최고가 될 수 없더라도 최고의 실력자를 키워낼 수는 있습니다.”

최고가 되기보다 최고의 실력자를 길러내는 스승을 자처하는 사람. 풍선아티스트 고홍석씨(33). 누구나 최고가 되어 그 영광을 누리고 싶어한다. 그러나 고씨는 스스로 영광을 누리기보다는 ‘영광을 누리는 자’를 만들어내는 사람, 한 발 물러나 ‘박수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말한다.



#조금씩 시력 잃어가는 ‘베체드증후군’ 앓아

이처럼 그가 최고가 아닌 최고의 스승을 자처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시각장애라는 한계 때문이다. 창작 활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눈’, 즉 시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원래 그도 남들처럼 잘 보이는 눈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나 초등학교 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베체드(면역결핍) 증후군’은 조금씩조금씩 그의 시력을 갉아먹고 있었다. 현재 그는 시각장애 1급. 주변에 있는 사물들이 모두 안개 속에 갇힌 듯 뿌연 물체로만 보이는 정도다.

“베체드 증후군에 대한 치료 방법이 현재로선 없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불치병인 셈이다. 그동안 그는 증상이 진전되지 않도록 투약을 해 왔으나 지금은 약물 복용을 중단한 상태다. 약 때문에 온 몸이 붓고, 눈이 튀어나오고, 위가 상하는 고통이 더 크기 때문이란다.

“1998년 처음 매직풍선을 접했습니다.” 우연히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배우게 된 풍선강좌는 건강상의 문제로 일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던 그에게 친구가 되고, 애인이 되고, 소일거리가 되었다.

“잘 보이지 않으니까 당연히 배우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렇지만 눈으로 보고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보이지 않으니까 오히려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그 부족함을 채우게 됐다”면서 “모방은 어려웠지만 창작에는 ‘보이지 않는 눈’이 도움이 되었다”며 웃었다.

아이들 생일잔치나 간단한 파티 장식을 위해 풍선을 배우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고씨처럼 풍선으로 할 수 있는 놀이나 더 좋은 풍선 작품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사람은 드물다.

고씨의 창작품 ‘크리스탈 하트’는 풍선 아트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전설적인 작품’으로 불린다. 크고 작은 비취빛 투명 풍선을 엮어 만든 이 작품은 풍선 아트의 격을 높였다는 찬사를 듣고 있다.



#8년전 매직풍선 접한후 40여작품 개발

최근 그는 풍선 아트의 영역을 조금 더 발전시켜 나가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풍선을 이용한 조형물이나 캐릭터 만들기가 그것. 사자, 앵무새, 돌고래, 펭귄, 자전거, 자동차, 해바라기, 크리스마스 트리, 도널드, 소녀, 앨비스 등 풍선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이미지만도 40여종을 개발해 두고 있다. 대형 신랑신부 풍선 인형은 예식장 장식물로 그만한 게 없어 보일 정도로 재미있고 귀엽다.

각종 풍선 캐릭터에 스토리를 입혀 마리오네트(줄인형)공연처럼 풍선 인형 공연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찰흙이나 밀가루처럼 아이들이 풍선을 가지고 놀 수 있는 ‘풍선 놀이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작업실은 풍선 아티스트의 작업실이라기보다는 발명가 공작실처럼 잡다한 기기와 재료들로 즐비하다. 칸칸이 들어있는 풍선과 장식물, 벽에는 색색 배경지가 커튼집 커튼처럼 펄럭거린다. 풍선 관련 자료들도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그가 곧 출판하게 될 책이 있다고 해서 목차가 궁금하다고 했더니 고씨는 그 많은 자료에서 정확하게 목차 부분을 찾아내 주었다.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찾아냈을까? 그는 두께로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놀라웠다. 그의 예민한 손의 감각은 잃어가는 그의 시력을 대신하고 있었다.



#상상력과 예민한 손감각으로 부족함 극복

“얼마후면 시력을 완전히 상실할지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주변에서는 조금이라도 보일 때 점자를 배워두라고 권한다. 그러나 그는 지금 당장 점자를 배울 생각은 없다. 미리부터 미래의 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가지고 최대한 누리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그가 ‘터진다’ ‘바람이 빠진다’ ‘그런 쓸데 없는 것을 왜 하느냐’는 말을 들으면서도 풍선에 몰두하는 이유도 간단하다. 풍선만큼 적은 비용으로 빠르고 쉽게 즐거움와 아름다움을 줄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란다. “터졌다구요. 또 불면 되죠 뭐!” 이처럼 그는 매사에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안 보이는 눈을 가지고도 별 불편이 없단다.

“이 눈으로 경비행기도 타고, 번지 점프도 했어요. 보이는 게 없으니까 무서운 것도 없더라구요. 하하하.” 시력을 잃어가는 것에 낙담하지 않고 상상력이란 또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는 고씨.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의 불편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하는 낙관주의자. 그의 얼굴에서 그늘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와 이야기를 하다보면 오히려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며 환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눈보다 밝은 미소의 위력인 것 같았다.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글수정
  • 글삭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