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마음과 마음 잇는 또 하나의 목소리[17년째 수화통역 신명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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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6.03.24 09:27:49
  • 조회: 424


#농인들과 동고동락 말대신 수화 먼저나와

신씨가 수화통역을 하게 된 것은 교회에 다니면서부터. 직장을 다니던 1989년 그는 교회에서 자원봉사로 청각장애인 목사의 수화통역을 맡게 됐다. 처음 배운 수화여서 서툴기도 했지만 열심히 배우고 통역을 했다. 목사가 가는 곳에는 어디든지 동행을 했다. 때로는 장례식장에도 동행하며 시신 곁에서 수화통역을 하기도 했다. 처음 겪어보는 일이어서 힘들고 무섭기도 했지만 봉사의 정신으로 이겨냈다.

“수화통역사는 농인이 부르면 어디든지 달려갑니다. 한번은 출산을 앞둔 임산부가 지원을 요청했어요. 그런데 산통이 아무리 심해도 이를 악물기만 할 뿐 소리를 지르지 않았어요. 왜 그랬느냐고 물었더니 ‘돼지나 개소리를 낼까봐’ 그랬다고 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얼마나 마음이 슬펐는지 몰라요.”

농인들은 한번도 개나 돼지가 짓는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동물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산통에 못이겨 신음소리를 낼 경우 동물의 울음소리로 들릴까봐 이를 악물고 속으로 고통을 삭인다고 한다.



#병원·경찰서등 필요한 곳 어디든 달려가

그동안 신씨가 가장 가슴이 아팠던 것은 아이들이 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거나 가정불화를 겪고 있는 농인을 봤을 때. 농인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청각장애를 대물림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이 때문에 아이들을 할머니댁에 보내 키우기도 하는데, 이 경우 오히려 부모자식간의 관계를 서먹서먹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는 것. 아이가 자라 부모와 함께 살게 되면 그때는 아이가 부모와 같이 살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는 “가능하면 함께 살면서 수화통역사의 도움과 유치원, 비디오테이프 등을 적절하게 이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한다.

수화통역사들은 경찰서와 법원을 제일 기피한다. 상황이 농인에게 불리하게 될 경우 자칫 수화통역사에게 화살이 돌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역시 수화통역을 해오면서 이같은 곤욕을 당하기도 했다. 한번은 경찰서에서 피의자 조사를 받고 있던 농인의 통역을 했다. 그런데 가족들이 “수화통역을 잘못해 불리한 판결을 받았다”면서 협박을 하더라는 것. “앞으로 수화통역을 못하게 얼굴에 상처를 내겠다”는 폭언도 서슴지 않았다. 마음의 상처를 받고 실망과 함께 회의가 들어 수화통역을 그만둘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남편의 위로가 큰 힘이 됐다.



#현실 열악해도 열정과 사명감으로 살지요

신씨가 수화통역을 하게 된 계기도 특수학교 교사인 남편의 권유 때문이다. 교회에서 만나 결혼한 이들 부부는 평생 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가기로 했다. 부부의 이런 모습에 자녀들도 닮아가고 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도 아빠와 엄마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고 한다. 특히 장애인들에 대해 편견을 가지지 않아 교육적인 효과도 자연스럽게 거두고 있단다.

신씨는 현재 서울농아인협회 소속으로 용산구청에 파견 근무중이다. 수화통역사는 한국농아인협회가 주관하는 시험에 합격하면 활동할 수 있다. 수화통역사는 600명 정도. 이중 150명 정도가 구청 등에서 일하고 있다. 자원봉사로 운영되어 오다 현재는 사회복지사 수준의 연봉(월 1백만원 안팎)을 받고 있다. 20, 30대 수화통역사들의 경우 열악한 처우로 인해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다.

신씨는 “수화통역사는 농아인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열정과 사명감이 없으면 견디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 역시 그동안 많이 울기도 했고 그만두고 싶은 생각도 많았다고 한다. 이제는 그런 생각보다 바보처럼 묵묵히 이들의 입과 귀 노릇을 하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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