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돼지도 별을 품고 삽니다”[‘20년만의 휴가’ 최병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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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6.03.23 09:08:54
  • 조회: 289
최병수(46). 그의 이름을 떠올리자니 오랜 세월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작품에 입김을 훅 불어 보는 기분이다. 먼지가 날아가자 생생하게 드러나는 작품…. 그랬다. 우리가 세계화의 물결에 떠밀려 지내는 동안 최병수는 우리의 망각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 당시의 기억을 불러내면 그는 몰라도 그의 작품은 깃발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87년 6월항쟁의 상징인 걸개그림 ‘한열이를 살려내라’를 누가 잊으랴. ‘노동해방도’ ‘백두산’ ‘장산곶매’도 그의 작품이다. 화가이면서도 신문의 문화면이 아니라 사회면에 많이 오르내려 ‘사회면 화가’ ‘문제 화가’라는 우스개 소리도 곧잘 듣던 사람. 그런 그가 20년 만에 휴가를 맞았다.

재작년 10월, 위를 60%나 잘라내는 수술을 받고 병실에서도 그림을 그렸던 최병수. 위암 3기 선고도 그의 열정을 제지하지 못했다. 당장 마무리해줘야 할 작품이 있기도 했지만 20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온 가속도 때문에 금방 멈출 수가 없었단다. 그는 중독에 가까운 열정을 습관으로 돌리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의 겸손이 아닐까 싶다. ‘절대 안정’을 요하는 환자임에도 그는 반전, 반핵, 환경, 노동, 여성, 장애 등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그리고 울림이 멀리 퍼지는 큰북소리와도 같은 그림을 그렸다. 새만금 ‘생명 솟대’, 매향리 ‘무거운 땅 한반도…’ 대추리 ‘생명 그리고 희망’ 등이 그가 수술 후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해낸 작업들이다.

이처럼 위암 판정을 받고도 쉬지 않던 그가 휴가라니….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 백야리 폐교된 ‘화정초등학교’ 담장 밑에서 살고 있는 그를 찾아갔다. 학교와 맞붙은 초록색 대문이 그의 집이다.
“지난 9월, 강원도를 다녀오다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그때 처음으로 자신이 환자라는 사실을 자각했다는 그는 이제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여수로 내려왔다. 1986년 투쟁 현장에 뛰어든 이후 20년 만에 가져보는 휴식이자 혼자만의 시간이다. 1주일에 2~3번 병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것 외에는 문밖 출입을 하지 않는 편이다.

“조용히 쉬면서 지난 20년간의 작업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다시 보니 ‘미스’도 있고 당시에는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도 발견하게 된다면서 병마 끝에 얻은 쉼이지만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빡빡 밀어버린 머리카락, 허름한 작업복, 검정 고무신. 어느모로 보나 그의 외형은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에 이름이 오른 유명 화가라기보다는 ‘노가다’에 가깝다. 그의 이같은 외형은 어쩌면 그가 살아온 시간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난한 집안의 8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나 14살에 가출, 중국집 배달원·선반공·보일러공·목수·공사판 잡역부 등 밑바닥 직업을 전전하다가 미대생이던 친구를 도와 벽화 작업을 하던 중 경찰서에 붙들려가 졸지에 화가가 됐다. 목수에서 화가로, 국졸 학력을 트집잡아 무식한 불순분자로 몰아가는 공권력의 폭압을 겪으면서 사회의식에 눈을 떴다. 이후 반민주 독재타도, 반전, 반핵, 노동, 환경, 여성 등 각종 투쟁 현장의 최일선에서 정열을 바쳤다. 그 중에서도 환경 문제가 그를 더욱 잡아끌었다.
“1988년 원진레이온사건을 보면서 망치로 한대 얻어 맞은 것 같았습니다. 이 문제는 폐가 다 녹아내리는 노동자들에게 단순히 임금을 올려줘서 되는 일이 아니고, 함께 사는 세상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 ‘그럼 지구는 어떻게 되느냐’ 하는 문제로까지 의식을 넓혀가게 됐죠.”

야만적 자본과 인간의 이기심이 가져온 결과물이 환경 문제라는 그는 지구 정의와 생존 차원에서 환경 문제에 대항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내놓은 환경 관련 작품들은 금방 사람들의 뇌리에 박혔다. 1992년 리우 환경회의에서 지구를 일회용 취급하는 소비지향적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쓰레기들’, 97년 교토 세계환경회의 회의장 입구에 전시했던 ‘펭귄이 녹고 있다’, 2000년 헤이그 기후변화협약시 물에 잠긴 자유의 여신상을 그린 ‘투발로 프로젝트’는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
요즘 그는 환경 문제와 더불어 생명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그의 심리를 보여주듯 최근에 작업한 돼지, 닭 그림이 눈길을 끌었다. 별을 품고 있는 돼지와 닭의 모습은 바로 세상 어떤 생명도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그의 집 근처 학교를 찾았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공간이지만 마른 잡초만 무성했다. 허물어진 담장 사이로 여수의 쪽빛 바닷물이 금방이라도 밀려 들 것만 같았다. 이 좋은 환경에 썰렁한 학교라니….
“요즘 농촌에는 사람이 없어요. 빈집과 묵은 밭 투성이입니다. 농사를 지어서는 생계가 안돼 너도나도 도시로 몰려가기 때문이지요. 그러다 보니 도시는 날로 비대해 지고…나중에는 TV 삶아 먹고 휴대폰 집어 먹으며 살 건지 원….”
‘휴가’중이라고 했지만 그의 눈가엔 여전히 ‘세상걱정’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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