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공공미술 실천하는 샘표스페이스 큐레이터 홍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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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6.03.22 09:35:13
  • 조회: 650
“샘표 스페이스 미술학원 보내 주세요.” “더 놀다 가면 안돼요?” “여기서 자고 간다고 전화해 주세요.”

재잘대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자그마한 체구의 여성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샘표스페이스 큐레이터 홍서희씨(36)다. 홍씨는 지난달 22일부터 24일까지 사흘을 꼬박 경기 이천 샘표식품 간장공장 안의 미술관 샘표스페이스에서 초등학생 30명과 보냈다. 오는 17일까지 계속되는 전시 ‘간장공장 미술수업-HM231 아지트를 건설하라’의 작업과정이었다. HM231은 간장공장이 있는 호법면 매곡리 231번지라는 뜻. 이천 지역의 아이들과 간장병과 뚜껑, 각종 포장상자, 포대 등 공장에서 나온 재활용폐기물들을 이용해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고 작업과정 동영상과 아이들의 작품을 전시하자는 기발한 기획. 단칸방에 살거나 자기방이 없는 아이들은 특히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이번 전시는 샘표스페이스가 연속으로 기획하고 있는 ‘동네친구 만들기 프로젝트’ 2탄. 지난 1월 큰 호응을 받았던 공장내의 노동자들에게 명함만들어주기 작업도 역시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여성, 노동자, 청소년, …

이런 재미난 기획을 연속으로 내는 홍씨는 어떤 사람일까. 그의 이력을 보곤 한번 더 놀랐다. 신림동 공부방 프로젝트, 뚝섬 우리들 공부방 프로젝트, 부엌 프로젝트 ‘세 개의 고무장갑’, 아하 청소년 성문화센터, 경기여성실학축제, 유쾌한 치맛바람, 여성영화제, 프린지 페스티벌,….

한국에 들어온 2002년 이후 그리 길지 않은 시간동안 참여했던 작업들이 A4 용지를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이 많은 작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공공성. 좀더 대중에게 다가가는 예술적이면서도 진실한 소통을 위해 그는 때론 큐레이터로, 때론 공간연출과 전시기획으로, 때론 미술작가로 영역을 넘나들며 작업한다.

인터뷰한 날은 마침 세계여성의날. 이날도 여성영화제 준비회의를 마치고 강남에서 부리나케 달려온 참이었다.



#‘지금’ ‘하고싶은 일’

초등학생때부터 그림이 좋아 화가가 되고 싶었던 소녀. 고등학교 졸업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입시학원은 다니지 않고 혼자서 이 전시 저 전시 구경다니고 학교 선생님이나 마음에 드는 작가들을 찾아다니며 그림공부하다가 미대입시에서 보기 좋게 낙방한 후였다. 프랑스에선 언어도 잘 안 통해 겨우 석달 떠듬떠듬 준비해 시험을 쳤는데 미술대학 2곳에 합격했다. 한국에선 그렇게 힘들었는데 프랑스에선 ‘어이없을 만큼’ 쉽게 합격했다.

대학에서 동급생으로 만난 남편 브뤼노 파이앵(36)은 가장 말이 잘 통하는 친구이자 예술적인 동지다. 부부의 모토는 ‘지금’ ‘하고싶은 일’을 하자는 것. 1년, 2년씩 교대로 한사람은 돈을 벌고, 한사람은 하고 싶은 작업을 하며 부부는 프랑스와 네덜란드, 영국을 거치며 자유롭게 살았다. 여러 나라에서 공부도 하고 일도 하며 다양한 삶의 모습을 목격하다 보니 그때그때 들었던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미술에도 배어들었다.

남편과 삶의 질에 대한 문제를 토론하면서 홍씨는 순수 미술을 전공했지만, 문화를 접할 기회가 없는 사람들에게 찾아가는 공공미술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샘표스페이스

한국에 와서도 자연스럽게 공공미술 쪽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 빛이 나는 일도, 돈을 버는 일도 아니었지만 대중과 소통할 때 가장 행복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샘표스페이스라는 공간을 알게 됐고 ‘딱 이거’라는 생각에 앞도 뒤도 안 보고 지원했다. 평소 품고 있던 생각과 공간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장소. 공장 한복판의 갤러리에서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홍씨는 가슴이 뛰었다.

그런데 막상 와 보니 노동자들은 이 갤러리의 주인이 자신들이라는 생각, 자신들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전시회 전에 공장직원들에게 설문지를 돌리고 전시 중간중간에도 의견을 물어보자 반응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건 난해하다” “이건 아름답지 않다”고 나름대로의 생각을 전하는 노동자들의 얘기를 들으며 홍씨는 요즘 무척 즐겁다.

“제가 특별히 의식있는 페미니스트이거나 봉사정신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이런 작업이 가장 즐거워서 하는 일인데….” 인터뷰 내내 쑥스럽다고 머뭇거린 홍씨. 그러나 여성관련 전시회의 주부관객들을 공장 안으로 끌어들이고, 공장 안에서 여성영화제도, 샘표 60주년을 맞는 8월엔 한층 더 재미있는 축제도 하고 싶다는 앞으로의 구상을 말하면서 언제 쑥스러워 했느냐는 듯 동글동글한 눈이 한층 더 빛난다.

기획자가 이렇게 즐겁게 일을 꾸미니 관객들도 흥이 날 수밖에 없다. 홍씨의 현재 바람은 샘표에서 시작된 공장내 미술바람이 다른 공장들에도 들불처럼 전파돼 신나는 일터가 자꾸자꾸 늘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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